프랑스 유학 : 한국어를 잠식하는 불어
헝가리에서 태어나 스위스로 망명한 이후 제1외국어인 프랑스어로 글을 썼던 아고타 크리스토프. 그녀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문맹>에서 헝가리 영토를 침투했던 언어들, 독일어, 러시아어를 ‘적들의 언어’라고 명명한다. 망명으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된 언어, 오랜 시간 동안 말해오고 글을 써왔지만 여전히 불완전한 프랑스어도 ‘적들의 언어’다. 끊임없이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언어가 내 모국어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오래 지낸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늘지 않는 불어, 잃어버린 한국어, (돌이킬 수 없는 영어)”라는 웃픈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건 이미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언어는 사용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유학 초기에는 자신이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한다고 생각했고, 그토록 익숙한 한국어가 나에게서 멀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어는 나를 기다려 줄 거라고. 일단은 불어가 시급했다.
프랑스 유학 초반, 나의 모든 활동은 불어 능력을 향상하는 것과 관련되었다. 스테이크 집에서 알바를 하기, 영화 보기, 라디오를 듣기, 독서 등 모든 활동에 언어에 대한 강박감이 함께했다. 처음 워킹 홀리데이로 파리에 머물렀을 때 한국 문화원에서 책을 자주 빌려 읽었지만, 유학을 시작하고 나니 더는 한국어로 읽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불어로 읽어야 할 것 같았다.
학교에서 온종일 불어를 듣고, 지하철에서, 도서관에서, 그리고 집에서 불어로 된 책을 읽었다. 더 이상 독서는 휴식에 어울리는 활동이 아니었다. 모르는 단어, 애매하게 아는 단어들이 자꾸 차이는 외국어 독서는 항상 불편한 집중력을 요구했다. 매번 단어를 찾는 것도 답답해서 대충 이해하며 넘어간 적이 많았으니, 지식을 습득하거나 공감하는 재미도 좀 멀게 느껴졌다.
그렇게 불어에 너무 피로해지면 한국 책들을 빌려 읽었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항상 문제없이 원어로 책을 읽어가는 나의 모습을 꿈꾸었다. 언제 한 번은 하루키의 <1Q84>를 한국어로 읽다가 불어로 갈아타기도 했다. 책이 잘 읽히기 시작하면, 이걸 불어로 읽어서 조금이라도 언어에 더 익숙해져야 하는데, 하는 죄책감이 드는 거다. 문화원 도서관에 놓여 있던 한국어로 번역된 프랑스권 작가의 책들은 웬만하면 손대지 않았다. 언젠가 원어로 꼭 읽고 말겠다고 되뇌기만 했다.
불어라는 강박관념에 싸여 보낸 학사 3년. 불어는 익숙해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언어에 소요되는 에너지 때문에 독서에 탄력이 떨어졌고, 그동안 내가 받아들인 정보의 양이 매우 적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다가 생긴 호기심과 열정은 지식으로 금방 채워주지 않으면 금세 떠나버리기 일쑤였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불어에 집중하면서 한국어를 잃어버리는 게 된다는 거다. 어느 순간부터, 불어 명사, 형용사에 기대지 않고서는 파리에 있는 한국 친구들과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가끔 한국에 들어가 가족들과 친구들을 마주할 때면, 잃어버린 한국어 표현들을 찾으며 헤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국어 다 잃어버렸니?”라는 말을 칭찬 섞인 농담으로 받아들였지만, 학년을 더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더 많은 것을 깊게 배운다고 프랑스에 왔지만, 그 지식과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면 그동안 배운 것은 말짱 도루묵이었다. 학교에서 열심히 썼던 불어로 쓴 영화에 대한 글들은, 아무리 정당한 논거로 쓰였다고 해도 언어적으로 미숙할 수밖에 없었다. 사전을 뒤지면서 써간 그 글들은, 현지인의 손을 거쳐 수정되지 않으면 대중에게 갈 수 없는, 홀로 우뚝 설 수 없는 글들이었다. 어휘를 잃어버린, 한국어로 하는 생각들은 멀리 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도는 듯했다. 학사를 끝낼 때쯤, 세상을 싸워갈 마땅한 무기를 찾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불어도 한국어도, 그 어떤 언어도 완전한 내 언어가 아니었다. 그 둘 사이에서 우왕좌왕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