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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May 26. 2023

외모와 실제 성격의 간극에 대하여

마흔 이후는 정말로 얼굴에 책임질 나이일까

누구나 사회생활을 할 때 자기만의 '페르소나'가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다소 예민하고 까다로운 실제 성격과는 달리, 동글동글하고 친근한 외모와 이미지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편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모르는 사람이 길을 묻는다거나 '도를 아십니까'의 타겟이 되는 일은 외출할 때마다 있었고, 어르신들이 참한 맏며느리상이라고 칭찬해주신다거나 선생님을 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이야기도 흔히 들었다.


결혼 전 내게 호감을 느끼던 남자들 역시 주로 겉모습만 보고 '귀엽고 여성스러운' 성격을 기대하며 다가왔다가, 생각외로 뾰족하고 불같은 성격에 화들짝 놀라는 경우를 많이 봤다.


정적이고 내향적인 성격이 꼭 착하고 순하다는 의미는 아닌데, 같은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또한 거리를 두고 싶은 상대에게(어차피 다시 볼 일 없으니) 더 친절하고 깍듯하게 대할 뿐인데, 자기 멋대로 나를 아랫 사람 대하듯 편히 대하는 사람들도 종종 본다.


특히 초면에 말을 쉽게 놓는 상대는 여전히 당혹스럽다. 습관처럼 슬쩍 반말을 섞어 말하는 것도 그리 좋아보이진 않는다.


그래서 나는 소위 '세보이는' 인상이 제일 부러웠다. 잘생기고 못생기고를 떠나, 사람들이 멋대로 나를 편하게 생각하지 못하게 인상이 강한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여자의 인생에서 타인에게 친근감과 호감을 주는 외모란... 과연 항상 좋은 것일까?


나는 선뜻 '그렇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호감가는 외모'를 가졌다는 건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크나큰 장점이고 어찌보면 축복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젊은' 여자이고, 결혼 전이고, 순하고 착해 보이는 인상에, 내성적인 성격이라면... 살아가면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일이 더 많을 것이다.


학교나 직장에서는 아무래도 외향적이고 활달한 사람이 더 주목받고, 대인관계에서도 유리하다. 그래서 나처럼 내성적인 사람은 서서히 '활발한' 면을 습득하여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기술을 터득하게 된다.


본래 내성적인 사람이 아무리 활발해지려고 노력해봤자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런 스킬도 시간이 지날수록 세련되지고 향상되기 마련이다.


그래도 내향적인 본성은 어쩔 수 없어서, 몇번 그렇게 '활발한 척'하고 나면 금세 에너지가 고갈되어 드러눕고 만다는 부작용이 있다.


흔히들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이제 인상에서도 내 연륜과 드라이한 성격이 드러나서인지 모르겠지만 예전보다는 억지로 외향성을 끌어내야 할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애초에 그런 상황을 내가 피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키우다보니 동네 엄마들과도 안면이 트이고 삼삼오오 친목이 형성되기도 하는데, 나는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는 쪽이다. 서로 연락처도 나이도 직업도 모르지만, 우연히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정도의 '산뜻한 타인'이고 싶다. 그 정도 거리가 가장 안심이 되고 편안하다.


내 성격을 잘 아는 남편은, 친해지자고 다가오는 동네 엄마들에게 거리를 두는 내 모습을 보고 뒤에서 쿡쿡 웃곤 한다. 당신의 실제 성격에 충격받지 않도록 미리 배려하는 현명한 처사라며... 참나.


어쨌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때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고민이 많아서 성격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다. 활발하고 외향적인 친구들을 동경하기도 했었다.


살아가면서 내린 결론은 내가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 내 MBTI가 뭔지, 남들은 내 이미지를 어떻게 보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성향에 맞는 삶이 어떤 것이냐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성격의 모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내 성격의 좋은 점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훨씬 빠르고 현명한 길이다.


우리 아이에게도 늘 이야기하는 부분이 그런 점이다. 누군가 아이에게 소심하다고 하면 나는 '신중한 성격'이라고 말해준다. 남들 앞에 서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그런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애써 이겨낼 필요 없다고, 크면서 자연스럽게 나아진다고 이야기해준다.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며 자신은 어떤 걸 못한다고 속상해하면, 너는 다른 걸 잘하니까 괜찮다고, 사람마다 잘 하는게 다르다고 이야기해준다. 사실은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아이에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 역시 다가오는 사람에게 벽을 치는 것같아 가끔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나만의 고요한 시간과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지금의 내게는 더 상위 가치이기 때문에 어깨 한번 으쓱 하고 말아버린다. 남들 눈치를 보는 것보다 내 마음을 잘 돌보는 것이 지금의 내게는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서서히 끝나가면서, 나와 같은 내향인들에게는 두렵고 성가신 상황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마스크를 고수하고 있다. 웃고 싶지 않을 때 눈만 웃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입꼬리까지 억지로 올리려니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럼에도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감사한 일이다. 다시 서서히 일상을 되찾아가기 시작한 것만 해도 정말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서서히 나도 마흔 이후, 그리고 쉰 이후에도 내 얼굴에 책임질 수 있는 준비를 해야겠다. 외향적이진 못하더라도,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걸 좋아하진 못하더라도, 타인에게 친절하면서도 내 마음의 평화도 지킬 수 있는 여유로운 얼굴과 내면을 모두 갖출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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