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질 체력인 내가 운동 예찬론자가 될 줄이야
예전 글에서 걷기 운동과 요가를 꾸준히 하고 있다고 쓴 적이 있었다. 특히 요가는 정말 나와 잘 맞아서 이대로 평생 해야지 생각했었다. 손목건초염이 심하게 오기 전까지는.
번역일을 하며 손목이 혹사당한 상태에서 손으로 바닥을 짚는 요가 동작을 많이 하다보니, 원래 약했던 오른쪽 손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져 병원에 갔더니 손목건초염이라고 했다. 약을 먹고 파라핀 마사지를 하고, 꽤 오랜 기간 손목 지지대를 착용하며 지낸 끝에 겨우 회복할 수 있었다.
마침 날도 점점 더워지고 비도 자주 내리기 시작해 걷기 운동도 어려워진 참이었다. 결국 아파트 단지 내 헬스클럽을 등록했다. 등록한 날부터 지금까지 최소 주 4회 이상 헬스를 하며, 그토록 저질 체력이었던 내가 운동 예찬론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다.
사실 나는 직장을 다니던 30대 초중반에 개인 PT를 꽤 오래 받았던 경험이 있다. 돈이 좀 아깝기도 했지만 그때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을 나라는 걸 알기에 기꺼이 투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비싼 돈을 내고 오래 지속할 필요는 없었지만, PT를 받은 것 자체는 잘한 선택이었다. 그때 배웠던 자세나 내 몸의 특징 및 약한 부분에 대해 잘 인지할 수 있었고, 기구 사용법을 다 파악했다는 것만으로도 혼자 운동을 시작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적어도 헬스클럽에 가서 러닝머신만 타고 오게 되진 않는다는 이야기다.
타고난 저질 체력인 내 기준에서 이야기하자면, 헬스클럽은 왠만큼 의지력이 강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처음부터 열심히 다니기가 쉽지 않다. 체중이 많이 늘었거나 체력이 너무 저하된 상태라면, 일단 걷기 운동을 통해 기본 체력을 올린 이후에 헬스클럽에 다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도 한 1년 정도는 걷기 운동과 요가만 했고, 약 5kg 정도 감량한 후에 헬스를 시작했다.
헬스를 시작한 첫 주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내 온몸의 근육이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는듯 했다. 가장 가벼운 무게로 기구 운동을 했는데도 온몸이 근육통으로 아우성쳤고, 의자에 앉았다 일어서기도 힘든 상태가 딱 일주일 지속됐다.
처음 헬스를 시작했을 때 가장 충격받았던 것은 내가 윗몸 일으키기를 다섯 개도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윗몸 일으키기 15회를 하는데 5개씩 나눠서 겨우 했고, 얼굴은 불타는 고구마가 되었다. (지금은 20회씩 3세트를 가뿐히 한다)
플랭크는 30초 버티기에서 시작했는데 이제 1분 정도는 쉽게 버틸 수 있게 되었다. 각종 기구와 덤벨을 오가며 상체와 하체의 근육을 골고루 조지는데(?) 드는 시간은 딱 1시간 정도다. 이후 30분 정도 러닝머신 위에서 인터벌로 걷기 뛰기를 반복한 이후에 운동을 마친다.
신기한 건 이런 운동 루틴이 습관화가 된지 벌써 몇 달이 됐는데도, 매일 아침 헬스클럽에 들어서는 순간 '아 운동하기 싫다'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ㅎㅎ 오늘도 하기 싫다는 마음을 안고 헬스클럽에 다녀왔다.
인간은 원래 나약한 동물이므로, 나만의 '자동화 시스템(거창하지만 사실 별거 아닌)'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나는 '오늘은 비가 오니 하루 제끼자'라는 변명을 막으려고 일부러 운전해서 가야 하는 헬스클럽에 등록했다.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주차장을 통해 갈 수 있고, 시원하게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갈 수 있으니 아주 아주 쬐금은(?) 운동 가는 길이 즐거워진다.
또한 운동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가버리기 위해, 아이를 등원시킨 후 곧장 차를 끌고 헬스클럽으로 '출근'한다. 아이를 등원시켜야 하니 밖으로 나올 수 밖에 없고, 일단 밖에 나오면 운동을 가는 루틴으로 자동화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에 가고 이를 닦듯이 그냥 하는 것으로 내 몸이 받아들이도록.
나는 애초에 다이어트가 아닌 체력과 근력 증진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식단은 따로 하지 않았다.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16시간 공복 시간만 철저히 지켰고, 점심과 저녁 두끼만 먹되 한 끼는 반드시 한식을 먹는 것으로 정했다. 예를 들어 파스타나 햄버거를 점심으로 먹었으면, 저녁은 반드시 한식으로 먹되 잡곡밥을 반공기만 먹는 식이다.
돌이켜보면 식단을 하지 않은 것은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식단을 너무 제한하면 오히려 음식에 대한 갈망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음식을 즐겁게 먹되 양을 점점 줄여가자, 라는 느낌만 유지하는 편이 훨씬 스트레스가 덜하고 폭식도 막을 수 있다.
헬스를 시작한 이후 가장 큰 긍정적인 변화는 역시 '체력'이다. 기본 체력이 좋아지니 확실히 생활의 질이 높아진다. 누워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일이나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졌다.
두 번째 변화는 '음식'이다. 운동한게 아까워서라도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은 점점 더 멀리하게 된다. 일단 술과 커피를 완전히 끊었고, 빵이나 파스타는 일주일에 한두번만 먹으려고 노력한다. 과일과 채소를 더 자주 먹게 되고,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찾다보니 직접 요리해서 먹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신체적인 변화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역시 정신적인 변화이다. 매일 헬스클럽에 '출근'하는 행위, 오늘도 땀을 쏟으며 정해진 운동을 해내는 것 자체가 매일 작은 성공을 맛보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나만의 '성공한 인생'을 잠시나마 살아보는 리허설인 셈이다.
40대에 들어선 성인이 매일 똑같은 일상을 쳇바퀴 굴리듯 살아가며, 인생의 작은 성취감을 맛볼 일이 얼마나 될까? 나 스스로에게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을 느낄 일이 얼마나 있을까?
운동은 내게 그런 성취감을 선사한다. 매일 소소하게 성공하는 느낌, '오늘도 해냈다'는 뿌듯한 느낌. 어느 순간 거울을 통해 확인하는 달라진 몸, 땀을 흘린 후의 상쾌함, 하루를 내 의지대로 시작했다는 자신감.
처음엔 건강을 위해 운동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내 정신을 단련하기 위해 운동을 하게 된다. 내가 내 몸뚱아리 하나 이끌고 가는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 무엇을 성취할 수 있을까? 나 자신도 컨트롤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창작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매일 나 자신을 극복하는 훈련을 한다는 생각으로 운동을 한다면, 그것이 또 다른 좋은 루틴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작게 성공하는 하루 하루를 쌓아가고 싶다. 매일 '성공한 사람'의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