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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 Dec 01. 2020

자발적 아침형 인간

한국에서 미국 팀과 일하기

'똥 띠리리 똥땅땅' x2


어두운 방안을 울려 퍼지는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깬다. 이불 밖은 아직 어둡고, 공기는 냉랭하다. 지금은 일찍 일어난 벌레는 잡아 먹힌다는 새벽 5시 15분, 15분 뒤면 미팅이 시작되기에 서둘러 일어난다. 커피를 내리고 사과를 잘라서 책상에 놓은 뒤, 화장실 가서 세수하고 머리 정리하고, 옷 정리하고 돌아와서 노트북의 카메라를 응시한다.



팀 일일 회의 (Team daily standup)


'띵똥' Zoom으로 회사 동료들이 들어온다. 원래 오전 9시 45분에 했던 daily standup (매일 같은 시간에 책상 근처에 서서 팀원들 각자 어제 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막힌 부분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 짧게 이야기하는 미팅)이었는데, 내가 한국으로 오게 되면서 감사하게도 시간을 조정해 주었다. 15분의 짧은 시간이지만, 매일 팀 동료들이 어떤 일을 하고 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이 프로덕트 팀에서 혼자 디자이너이다 보니, 팀이 일을 진행하는데 내 의견이 필요할 때가 왕왕 있다. 예를 들어, 내 디자인을 구현하다가 궁금한 부분들을 물어보기도 하고 내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엣지 케이스들을 말해주고 추가적인 디자인을 요청하기도 한다. 설명이 추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나 금방 해결될 것 같은 사안들은 모든 사람들의 업데이트가 끝나고 해당 사람들만 남아 이야기를 하여 조율한다.


돌담 너머 감귤 밭을 바라보며 제주도에서 일하기

추가적으로 자칫 외로울 수 있는 재택근무에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매일 이야기를 하니 그나마 소속감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사실, 대부분의 동료들이 Zoom의 가상 배경(virtual background)을 설정한 터라, 어디에서 접속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지난 11월 초 제주도에서 일할 때, 미팅에 조금 일찍 들어가게 된 날이 있었다. 먼저 들어온 동료들과 잡담을 하다가 모두가 다 원래 재택 하는 장소가 아닌 다른 장소에 있다는 것을 알고 서로 신기해했던 적이 있었다. 한 명은 캐나다 집에서, 다른 한 명은 엘에이의 에어비앤비에서, 또 다른 한 명은 친구 집에서 들어온 것이었다. 불과 올 초까지만 해도 얼굴 맞대고 점심도 같이 먹고, 탁구도 치고, 버블 티도 같이 먹었던 동료들인데,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게 달라졌고, 그 달라짐이 점차 일상처럼 돼가고 있는 게 씁쓸하다.




변동된 업무시간 (Shifted working hour)


내가 다니는 회사는 호주가 본사다. 자연히 미국 지사에서 일해도 자주 호주 본사 팀들과의 협업이 자주 있다. 그래서인지 내가 호주와 시차가 2시간밖에 나지 않는 한국으로 가서 일하겠다고 했을 때, 오히려 응원해주었다.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지 알고 있기에. 이미 대만으로 간 동료도 있었고, 매니저도 호주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처럼 미국과 반나절 겹치게 일하는 것을 약속하고 잠시 미국을 떠날 수 있었다.


팀과 공유한 내 변동된 업무시간

나의 공식적인 업무 시작 시간은 새벽 5시 반에 있는 daily standup부터 대략 오후 1시 반까지(지금은 미국이 daylight saving 이 끝나면서 새벽 6시 반부터  오후 2시 반) 이기는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내가 세운 규칙일 뿐, 그 누구도 내 업무 시간을 체크하지는 않는다. 나중에 다른 글에서 한국과 미국의 회사 문화가 어떻게 다른지를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간단히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미국 회사는 업무시간에 자유를 주는 대신 결과에 대해선 엄격하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한국에서 일하면서 아웃풋이 미국에서 일할 때 보다 안 나오면 미국으로 돌아오게 할 수 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자를 수 있다. 때문에, 오히려 한국에 와서 밤늦게까지 일하기도 하고, 악착같이 새벽 5시 반에 있는 daily standup에 빠짐없이 들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매니저와 면담 (1:1 meeting with manager)


호주에 있는 매니저와의 일대일 면담은 매주 화요일 미국 팀과의 모든 미팅을 마친 뒤 잡혀있다. (미국에서 매니저는 한국으로 치면 인사권을 가진 상사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딸 셋의 엄마이기도 한, 매니저 역시 미국 팀과 일하면서 일하는 시간을 오전 7시로 당겼다.


"찬, 별일 없지?"로 시작하는 대화는 서로의 가족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이어져 주말에는 무얼 했는지, 불편한 것은 없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원래대로 였으면, 지난 5월에 온 가족이 호주에서 미국으로 넘어와 진작에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데, 코로나의 여파로 매니저의 계획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매니저를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매주 적어도 2-3번은 여러 미팅에서 마주치고 이야기 나누었기에, 그리고 매니저의 막내딸들이 아인이와 같은 나이여서 육아에 대해 누구보다 공감을 해주는 사람이라, 나와는 특별한 라포(rapport)를 형성하고 있다.


매니저와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이 미팅은 내가 주도해서 진행된다. 먼저, 지난 한 주간 진행한 프로젝트 중에 잘 된 점(Win)을 공유어필한다. 그 주에 해결한 크고 작은 디자인 문제들. 같이 하는 프로젝트의 진행 사항들을 미리 꼼꼼히 작성하지만 실제 미팅에서는 간략하게 언급한다. 한껏 칭찬을 듣고 나면 그 주에 힘들었던 점(Frustration)을 말한다. 예를 들어, 중요한 디자인 결정에 있어서 나와 프로젝트 매니저(PM)와 리드 개발자 (Eng Lead) 사이에 이견이 있을 때 중재를 요청하기도 하고, 너무 많은 프로젝트가 내게 몰리면 조금 여유 있는 동료 디자이너에게 일을 대신 할당해주기도 한다. 그런 뒤, 금주에 해야 할 일(Focus)에 대해 같이 점검하고 서로에게 특별한 액션이 필요하면 따로 기록해 두어 다음 주에 만났을 때 실행이 되었는지 체크한다.


여담이지만, 보통 아시아 사람들이 'No'를 잘하지 못해, 일만 많이 떠안고 시간은 배로 쓰는데, 중간중간에 내용들을 공유하지 않아, 성과 평가 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나도 그랬다. 겸손이 미덕이며, 내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순진한 생각은 일을 시작하며 한 해 두 해를 지나가면서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대 포장은 하지 않되, 잘 한 부분에 있어선 이야기를 하여 어필하고,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는 당당히 요청을 해야 최소한 일한 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1:1 미팅 템플릿

이 모든 내용들은 일대일 미팅 템플릿을 이용하여 사전에 미리 작성해 둔다. 그렇게 해야 중요한 것들을 빠뜨리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이 문서들을 종합하면 반년마다 있는 성과 평가 항목들을 수월하게 채워 둘 수 있다.




지난 10월, 자가격리 숙소부터 시작된 한국에서의 재택근무. 벌써 2달이 지나갔다. 코로나 때문에 지인들도 많이 보지 못했지만, 만나면 꼭 듣는 질문이 있다. "어떻게 미국이랑 일을 해?"  위의 적은 내용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일지 모르겠다.


주변에 비슷한 시기에 한국으로 들어온 친구들이 미국과 일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회사마다 다 다르다. 아예 미국 시간(한국 시간으로 새벽 2시부터 오전 10시까지)으로 일하는 친구부터,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하는 친구, 오전 오후로 나눠서 일하는 친구까지. 그래도 이렇게 한국에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2달간 재택근무를 하면서 느꼈던 힘든 점은...

-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저녁 약속은 살짝 부담스럽다.
- 미국 팀과 겹치는 시간이 제한 적이라 정말 새벽 미팅 스케줄이 빽빽하다. 미팅이 길어지거나 하면, 뒤의 미팅들에도 영향이 있다.
- 미국 금요일에 중요한 미팅이 있거나 중요한 의사결정이 있는 경우, 하는 수 없이 토요일 오전에 일어나 참여한다.
- 일과 삶의 바운더리가 희미해지고, 계속 머릿속에 일할 것들이 남아 있어 유연한 오후 시간도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
- 하루를 일찍 시작함으로써 아침을 두 끼 먹을 때가 많은데, 결국 하루 4끼를 먹을 때가 있다.


반면에, 오히려 생각지 못한 좋은 점도 많았다.

- 반 강제로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토요일 일요일에도 5시 반에 눈이 떠지는 건 덤이다.
- 아침에 몰아서 미팅하고, 미국 팀이 퇴근한 점심 전후의 스케줄을 유연하게 가져갈 수 있다.
- 점심 이후에 운동을 하러 나가는데 특별한 제약이 없다.
- 월요병이 사라졌다. 월요일을 온전히 미팅 없이, 일에 몰두할 수 있다.
- 아이가 유치원 간 시간에 아내와 오붓하게 데이트할 때도 왕왕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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