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것이 힘들 때 떠오르는 글
썸이나 연애를 하면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기다림’. 썸을 탈 때는 상대로부터 언제 연락이 오나, 언제 내 카톡에 답장을 하나 애타게 기다리게 된다. 연애를 할 때는 썸을 탈 때 보다 내 사람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은 놓이곤 하지만, 다투고 난 후, 연락이 오지 않으면 초조해지기 마련이다.
지금 나 역시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무려 전 썸남의 연락을. 이미 부러진 관계지만 복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먼저 만나서 밥 먹자고 연락을 하고, 답이 오기를 바보같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내 모습이 안타깝기도, 그럼에도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게 나답다 싶기도 하다.
이 에피소드는 전 썸남과 헤어진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3주간 썸을 타고 그와 나는 사귀게 되었다. 시작부터 해피엔딩이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미저러블 하다. 사귀었다고 부르기도 쪽팔린 아주 짧은 연애. 초딩 중딩때도 경험하지 못했던, 26시간의 초 단기 연애를 한 건 처음이었다. 전 썸남이 새벽 1시에 전화로 고백을 한 것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고백을 받은 지 겨우 26시간 만에 남자친구로부터 모두 없었던 일로 하자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난 26시간 만에 다시 솔로가 되었다.
차라리 솔로인 게 더 편한 걸지도 모르겠다.
뭐, 타인의 마음이 어떤지. 어떤 생각으로 말을 내뱉는 건지 내가 알 방법이 없는 게 당연하지만. 내심 궁금하긴 하다. 도대체 나에게 어떤 기대를 했던 것이고,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제는 전 남자 친구(?)의 솔직한 본심이 궁금해졌다.
26시간 만에 차인 것도 억울한데, 그 말을 카톡으로 들어서 더 황당하고 기가 막힌다. 그래서 대면해서 만나서 얼굴 보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받아들이는 팀워크를 기대했는데, 과연 이게 생각대로 굴러갈지 모르겠다. 어찌 보면 이미 끝난 관계에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그럼에도 이 끈을 놓지 못하는 건 아직 끝내기에는 무언가 아쉽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 일테다.
거봐. 지금 스스로의 마음도 헷갈리면서 타인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니. 아무튼 난 지금 전 썸남의 답장을 기다리는 중이다. 바보같이 다음 주에 시간이 되면 저녁을 먹자는 내용의 메시지였다. 뭐라고 답이 올지 상상이 가지 않아서 더욱 답답하고, 마음이 뭉게구름 투성이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비슷한 백그라운드와, 생활 패턴의 사람이었다.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다정하고 따뜻하다고 느껴졌기에 그가 내 마음 속에 떠오르는 빈도가 점점 잦아졌다. 가랑비에 젖듯 내 일상에 조금씩 스며들었던 사람이라 가능하다면 만나서 오해를 풀고 다시 처음부터 알아가고 싶다. (는 내 희망사항이다.)
나 정말 어떡하지.
차였는데 만나자고 연락한 거,
너무 구질구질한 거 아니야?
창피하기도 하고, 거절의 회신을 받을까 봐 초조하고 걱정이 되지만 어차피 결과가 정해져 있는 거라면, 나중에 답답함에 이불 킥하거나,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하고 싶은 말은 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인연은 각자 만들어가는 거니까. 운명처럼 찾아왔을지라도 내가 놓아버리면 끝나는 관계는 인연이 아니기에. 이 관계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다시 한번 망가진 외양간을 고쳐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기다려보자.
원하는 대답이 오지 않는다 해도 슬퍼하지 말자.
이번 인연은 거기서 끝일 뿐인 거니까.
지독한 자만추인 나는 전썸남에 대한 환상이 있다. 발리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알게 된 사이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 동네에 살아서 지금 이 순간도 여전히 운명인가? 헛된 기대를 걸고 있다.
친구가 그런 말을 하더라. 비행기 열 번 타면 양쪽 사람 20명을 만날 수 있어. 그 역시 비행기 타다 옆에 앉은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야. 어쩌다 연락을 하게 되었다 해서 운명인 건 아니야. 인연은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고 지속해서 유지해 나가는 것이지.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잡지 말고 흘려보내.
비행기를 더 많이 타야 하는 것일까.
운명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것에는 200% 동의한다.
어쨌든 난 전썸남의 회신을 애타게 기다리는 중이다. 기다리기 심심하니까 최근 내 연애 가치관을 공유해야겠다.
나는 최근 남자건 여자건 친했던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다. 내가 그들을 소중히 여겼던 것에 비해, 그들은 한 없이 나를 얇은 종이장처럼 가볍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누구한테든 마음을 쉽사리 주고 싶지 않다. 나중에 보면 또다시 나 혼자 진심이었을까 봐. 그게 몹시 두렵다.
그래서 썸을 타건, 연애를 시작하건, 최대한 스킨십은 천천히 하고 싶었다. 스킨십을 하게 되면 상대와 더 친밀한 관계가 된 것 같고, 상대를 향한 애정도 커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신뢰를 쌓은 후에 (상대가 나를 가볍게 여기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스킨십을 하고 싶었다. 나 혼자 마음을 키워가면서 상처받게 될까 봐 무서웠나 보다.
그래서 앞으로는 정말 상처받기 싫다. 나란 사람과 스킨십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나의 불완전한 모습까지 안아 줄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방황하던 저녁, 로꼬의 ‘주지 마’라는 노래를 알게 되었다.
술을 주지 말라는 주제로 부른 곡. 지극히도 요즘 내 마음을 대변한 가사이다. 나 역시 맨 정신에 온전히 사랑을 주는 상대를 만나고 싶다. 술기운에 사랑한다 고백하는 사람 말고, 온전한 정신으로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 욕구나 본능에 의존하기보다는 나라는 사람을 깊게 알아가는 것이 우선시 되는 사람. 정서적 교감이 기반인 감수성 넘치되, 이성적인 연애를 하고 싶다.
그러니까 술대신 물 마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