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무의 <<고독의 능력>> 중에서
한여름 피는 꽃에는
호박꽃, 박꽃이 있어요.
호박꽃은 담벼락에 피고요,
박꽃은 지붕 위에 피어요.
낮에 핀 호박꽃은 노랗고요,
밤에 핀 박꽃은 하얘요.
호박꽃은 별 모양으로 피고요,
박꽃은 달 모양으로 피어요.
호박꽃 보면 절로 불끈 힘이 솟구치고요,
박꽃 보면 까닭 없이 마음이 애잔해져요.
호박꽃은 태양 훔쳐 애를 배고요,
박꽃은 달빛 품어 애를 배어요.
낮에는 호박꽃처럼 악착 떨며 살다가
밤에는 박꽃처럼 그리운 이
기다리다 지친 몸 잠에 먹혀요.
- 이재무 (1958~ )
동요같이 리듬 타며 쉽게 읽히는 시 한 편을 감상하느라 포털 사이트와 식물도감까지 동원했다. 이름만 들으면 친숙하디 친숙한데 떠올리려니 아는 것이 아니었다. 호박꽃을 본 적이 있긴 한데 별을 닮았었던가? 네이버에서 찾은 아래 이미지를 보니 오므린 모습이 과연 시인이 말한 그대로였다. '우리나라 자연의 나무와 풀꽃을 모두 모았다는' 내 식물도감에는 호박은 실려 있는데 박은 없었다.
흥부가 초가지붕 위에 자란 박을 타니 보물이 쏟아져 나왔다는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들어서 익숙하건만 정작 덩굴에 달린 박 열매와 꽃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상상해 볼 밖에.
박꽃은 초저녁에 피어 이른 아침에 시든단다. 밤에 만개하는 꽃이라! 나들이 나서는 처녀의 너울 같이 생긴 청순한 하얀 꽃이 창백한 달빛을 받으면 더위 물러간 여름밤은 신비로움이 가득할 것이다. 그리운 이를 기다려 열매를 맺는다니(애를 배니) 박꽃은 애잔하기만 하다.
한여름 황금색 태양 아래 금꽃 같은 호박꽃은 생동과 정열이 넘친다. 태양을 훔쳐 열매를 맺을(애를 밸) 만큼 악착스러운 호박꽃. 그래서 시인은 호박꽃을 보면 생명력을 느껴 불끈 힘이 솟구친다.
호박은 박과에 속하는 덩굴식물이다. 둘은 그렇게나 유전적으로 가까운데 꽃 생김새도, 색도, 피는 때도 그렇게 다른지 몰랐다. 한여름밤 만개한 박꽃을 실물 접견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여행 한 번 가야겠다.
시 한 편 읽는 동안 어린 시절 동무 같이 불리던 꽃들을 공부하며 보낸 주말 밤이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