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생전에 키우시던 고무나무 화분과 아프리카 제비꽃 화분을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애연가였던 아버지 방의 자연 공기청정기 노릇을 하라고 고무나무 화분을 사다드렸었다. 어버이날에 선물해드린 카네이션이 수명을 다하자 아버지는 빈 화분에 작은 이파리 하나를 꽂아 놓고 물을 주며 애지중지하셨다. 휘묻이, 접붙이기는 들어봤어도 잎꽂이로도 식물이 번성한다는 것을 나는 그제야 처음 알았다. 그 아이가 바로 이 아프리카 제비꽃이다.
봄에는 제 알아서 만개한 제비꽃이 기특해서 창가에서 거실 테이블로 옮겨 놓았다. 보라색 꽃들은 가까이서 보 면 앙증맞지만 멀리서 보면 숭얼숭얼 덩어리져 보여서 마치 커다란 꽃 한 송이처럼 보였다.
가을이 되었다. 고무나무는 새 가지가 튼실하게 뻗어나고, 뒤집어쓰고 나온 적갈색 포를 벗어던지고 떡 벌어진 진녹색 잎들이 무성해졌다. 비죽이 홀로 올라선 가지가 수형을 망치는 것 같았다. 부엌가위를 가져다 잘라주니 우유 같은 나무 진액이 뚝뚝 떨어져서 깜짝 놀랐다. 자른 가지를 물이 든 투명 텀블러에 꽂아 놓았다. 꽃병처럼 식탁 위에 올려두니 아기 고무나무가 되어 귀여웠다. 이대로 물속에서 뿌리가 생겨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아프리카 제비꽃은 포기가 많아져서 화분 밖으로 넘쳐 늘어지고 있었다. 꽃도 몇 송이 되지 않고 잎도 생기를 잃었다. 가만 보니 포기를 나눠주고 내려앉은 흙도 채워줘야 할 것 같았다. 두 식물 모두 새 화분과 흙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베란다 가림막 용으로 화분 몇 개를 키우기도 했지만, 흙을 사러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닐하우스 형태로 줄지어 있는 화원들을 흘끗 거리며 지나쳐 걷는데 그 중 하나에서 까만 테 안경을 쓴 긴 생머리 아가씨가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니 방긋 웃어주었다. 난생 처음 분갈이라 하니 젊은 사장은 식물의 종류와 상태를 묻고 자기가 주로 쓰고 있다는 배양토 8리터짜리를 권해주었다. 가격은 3000원. 배수가 잘 되라고 섞어주는 흙이라고 자갈과 마사토, 펄라이트 등을 보여주며 그 특징을 일일이 설명해 주었다.
“마사토에는 김해 마사토하고 경주 마사토가 있는데, 그냥 이 김해 마사토로 섞어 쓰시면 돼요. ”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얼른 마무리를 지었다.
마사토 한 봉은 2000원. 분(盆)을 고를 차례다. 고무나무용으로는 화분 깊이가 25센티미터 이상은 돼야 한다고 했다. 토분, 플라스틱분, 도자 화분, 고무 화분 등이 있다는데, 사장은 자기는 플라스틱은 취급을 하지 않는단다. 깨지면 자연으로 돌아가서 친환경적이라기에 색도 따뜻한 민무늬 토분을 골랐다. 가격은 20,000원.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 싶었다. 발 앞에 흙과 화분을 받아 놓고 내가 주뼛거리자 가게 한쪽 코너로 가서 자기가 분갈이하는 것을 보여줬다. 검고 촉촉한 배양토와 마사토를 꽃삽으로 퍼서 설레설레 섞어 흙을 깔고 작은 행운목을 능숙하게 심어 조리로 물을 주는 일련의 과정 동안 그녀의 작은 두 손이 나비처럼 춤을 추는 듯 했다.
집에 돌아와 거실에 신문지를 넓게 깔았다. 눈으로 외워온 과정을 떠올리며 배양토를 쏟아 놓고 소량의 마사토를 섞었다. 아프리카 제비꽃 포기를 살살 갈라서 뿌리를 부엌가위로 조금 정리해 주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주워서 씻어 놓았던 하얀 화분에 옮기기로 했다. 휜 줄기가 옆으로 누워 자라서 넉넉한 깊이로 심기가 쉽지 않았다. 흙을 채웠는데도 전체 몸통이 흔들흔들해서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걱정이 되었다. 고무나무를 옮겨 심는 토분은 바닥 물구멍이 커서 거름망이 필요했다. 화원 주인이 알려준 대로 양파망을 네모나게 잘라서 밑에 깔았다. 흙이 반쯤 채워진 분에 고무나무를 세우고 남은 부분에 흙을 채우는데, 왜 그리 서툰지 흙은 흘리고 나무는 휘청휘청,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됐을 때 컵으로 여러 차례 나누어 두 화분에 물을 주었다. 위 흙이 물에 뜨고 물빠짐이 그리 원활하지는 않았다. 마사토를 너무 조금 섞은 건 아니었는지.
포기 나눈 제비꽃 화분은 주방 창가에 놓아주었다. 환경만 맞으면 사철 실내에서 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이 설렜다. 고무나무 화분은 창가 화분 선반 맨 위층에 올려놓았다. 어엿해 보여 흐뭇했다. 꽃삽, 전지가위도 장만하고 싶어졌다. 화분 키우는 사람은 다 한다는 분갈이에 하루를 바쳤다. 아버지의 분신인 양 이 아이들에게 깊은 정이 샘솟았다. 서로 위로를 주고 성장을 보면 기뻐하고, 호흡을 같이 하며 언제나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동무. 그들은 나의 첫 식물 반려가 되어 줄 수 있을 거 같다.
고무나무에게 처음 말을 걸어 본다. 아버지는 잘 계실까?
‘그럼, 영원히 행복하시지.’
제 꽃말과 꼭 같이 대답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