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반짝 May 18. 2022

게임 너 무 좋 아  

원래 게임을 잘 안했다. 마비노기도 하고 던파도 했었는데, 마비노기가 유행하던 시절 나는 초등학생-중학생 정도였고 우리집에 있는 컴퓨터는 사무용이었고 나는 피씨방에 갈 엄두가 안났다. 그냥, 거기 혼자 가서 게임을 하는 게 너무 낯선 행동이었다. 던파는 대학때 했는데 난이도가 낮고 옷이 귀엽고 뭐 ... 대충 그렇게 할 만 했지만 이제 진짜 레이드를 가야 할 때가 오자 나는 자연스럽게 탈락했다. 모르는 사람과의 협동 플레이에서 1인분을 해야 하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도 게임을 아주 안한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한 번씩 했다. 포탈도 하고 데메크도 깔짝깔짝 했는데, 나한테 게임은 보통 두 가지였다. 


1. 내가 하기엔 너무 어렵다. 


난 천하의 발컨이라서.... 게임이 너무 어렵다. 내가 데메크를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다들 '그건 전투 쉽지 않아?'라고 말하는데... 안 쉬웠다. 나중에 알게된 건 데메크 무기 중에 총이 있었다는 건데... 몰랐어 나는... 젤 처음에 가진 칼만 갖고 스테이지 3 보스에서 죽었어... 그리고 가장 어려운 것은 내가 어디 있는가. 난 2d인 던파를 하면서도 나를 못 찾았다. 타격 효과가 펑펑퍼펑 터지는데 나는 어디있는가 으아아아 뭘 피하라고요? 끄아아악!! 보통 그랬음. 3D게임은 말할 것도 없고. 친구가 디아 3 같이 하자고 해서 했는데, 수도사 렙 50에 도저히 딜이 안나와서 때려쳤다... 게임이 끝나지 않아 적도 나도 죽지 않아... 진행이 되지 않아... 근데 ...난...파티가 싫어..


니어 오토마타도 좀 해보고 컵헤드도 해봤는데 (유행하는 건 찍먹하는 편) 니어 오토마타는 뭔가 좀 지루했고 컵헤드는 너무 어려워서 못 깼다. 컵헤드 스테이지 1 보스 못 깸. 그리고 ㅋㅋㅋ 솔직히 ㅋㅋㅋㅋㅋ 가지도 못했어... 적들 죽이면서 앞으로 가는것부터가 너무 힘들었다... 점프 이런거... 


2. 1인분을 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무언가 


현실의 내가 극 외향인이라 맨날 사람 모아서 놀고 그러지만, 그건 아-무 의무감이 없다. 내가 1인분어치 토크를 해야 하거나 1인분 어치 술과 음식을 먹어야 하거나 그런 게 아니잖아! 근데 게임은 내가 맡은 바 임무를 잘 해야 한다고... 그리고 채팅으로 의사소통도 해야 하는데, 나는 전투만도 엄청 버거운 인간이었다. 그래서 안했음. 


오버워치 첨 나왔을 때 친구네 집에 갔다가 한 3판쯤 했는데, 알고보니 그게 사람들이랑 한 게임이었던 것이다. 난...걍.. 컴퓨터랑 노는 건 줄 알았지. 그때 나는 내가 그런 짓을 했다는 게 너무 싫어섴ㅋㅋㅋㅋㅋ "으아악 안해 사람이랑 게임을 했다니 너무 징그러워!"라고 말했음... 모니터 너머에 있을 사람들의 미적지근한 체온이 불쾌하게 상상되어서, 뭔가 께름칙했다. 무엇보다 아까는 그냥 즐겁게 했지만 사람들과 하는 것이라는 걸 알고 나니까 그럼 또 1인분의 압박이 너무 커져서 다시는 게임에 손대고 싶지 않았다. 




근데 최근에 친구가 스타듀밸리를 같이 하자고 했다. 농사.. 농사 좋지. 농사 게임은 이것저것 했었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닭을 키워서 계란을 얻고 소에서 우유를 짜서 뭘 만들어서 도시에 내다 파는 게임도 재밌게 했었고 쉽팝인슈가랜드도 했었고 포도 키워서 와인 파는 그 게임도 했었다. 주에 한 번씩 온라인에서 만나서 근황 토크도 하고 작물도 기르고 낚시도 하는데, 너무 좋았다. 이게 메타버스구나. 나는 채팅이고 줌이고 사람을 실제 만나는 거에 비하면 너무너무 기운 안 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데 게임은 제법 좋았다. 진짜로 만나서 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엔 스듀의 모든 콘텐츠를 다 해보고 우리는 휴먼 폴 플랫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혼자 별의 커비를 시작했는데, 체험판 받고 너무 좋아서 체험판만 세 번이나 플레이 했다. 그리고 스듀 같이 하는 그 친구가 자기 커비 샀다고 빌려줘서 어제부터 하는 중이다. 너무 좋다. 게임 진짜 최고다. 

원래도 콘솔겜은 혼자 잘 하면 재밌다는 건 알았지만... 실제로는 잘 안하게 됐었다. 스위치 사서 링피트랑 동숲만 했었는데 모험하는 게임이 진짜 좋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너무 신난다. 


'난 게임이 별로야'라고 하기엔 게임 시장이 엄청 넓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중에 내가 원하는 경험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치만 어떤 것은 알아도 잘 안 하게 된다. 그리고 언제나 보급형 컴퓨터만 써서, 그리고 게임 살 돈이 없어서 못했었던 것도 있다. 맞는 게임을 찾게 된 건 아마 최근에 그나마 여유가 좀 생겨서일 것도 같다. 


가장 좋은 점은 SNS를 덜 들어가는 거랑,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 쓸지 전전긍긍하지 않는 것, 그리고 몰입감이다. 진짜로 속세의 시름을 잊고 머리를 쉬게 할 수 있는데 능동적인 취미라는 점이 매우 맘에 든다. 게임을 하면 머리를 쓰는데 왜 머리가 쉬나요? 라고 할 수도 있지만, 독서도 비슷하다. 머리를 써서 어딘가에 능동적으로 몰입해야 불안하거나 쓸데없는 생각을 안 하고 진짜 쉴 수가 있다. 암튼 그래서 게임 좋다. 역시 사람은 실패를 해보면서 자기 취향을 찾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건강이란 얼마나 인위적인 상태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