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나래 Oct 26. 2023

말씀을 수면제 삼던 날

오래전에 우연히 길에서 만났던 선배 언니와 시작했던 말씀 묵상이 어느덧 15년이 되었다. 우연히 길을 가다가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 마련해 두신 필연이었다. 어찌 보면 긴 시간이었지만 덕분에 화가 나도 좀 참을 수 있게 되었고 요동치듯 불안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이 생겨나고 있다. 15년 동안 주께서 나를 훈련시키는 중이시다. 아직 멀었겠지만, 성령의 바람이 오랜 시간 나를 향해 불고 있다는 것도 알아 가는 중이다.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하나님의 계획 아래 비로소 나의 나 됨이 가능해진다. 그것을 깨닫는 은혜의 순간이다. 때로 우연이라 여기던 일들이 하나님 안에서 필연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오면 하나님께서 나를 한 걸음 더 바짝 끌어당기시는 걸 느낀다. 이 이끌림을 감지할 수 있어 감사하다. 오랜 기간 반응이 없던 나를 침착하게 기다려 주신 분은 바로 ‘우리 아버지’시다. ‘우리 아버지’라고 불리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도 말씀으로 알려주시는 우리 하늘 아버지, 이 느낌과 깨달음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처음 말씀을 읽기 시작하던 때의 나는 한 문장의 말씀도 읽을 수가 없었다. 처음 읽기 시작한 책은 『시대의 소망』이었는데 읽히지도 않을뿐더러 읽어도 해득이 안 되었다. 읽다 보면 앞에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 모르겠고 그러다가 졸리고 또 머리는 깨질 듯 아팠다. 말씀만 열면 나는 한글이 한글로 보이지 않는 ‘예언의 신 불해득병’ 같은 게 걸린 듯했다.

그렇게 한동안 씨름을 하다가 세상 이해 안 되는 그 책을 노트에 정리하면 좀 나을까 싶어 노트 정리를 시작했다.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4장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에서 그토록 해득하기 위해 애쓰며 읽어 나가던 나의 눈을 뜨게 해 주는 문장을 발견했다.


오늘날 하늘과 땅은 목자들이

천사들의 노래를 듣던 그때보다

더 멀리 떨어진 것은 아니다.

인간은 옛날 일반적인 직업을 가진

보통 사람들이 대낮에 천사들을 만나

포도원과 밭에서 이야기하던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하늘의 권고(眷顧)의 대상이다.  

평범한 인생길을 걷는 우리에게도

천국은 매우 가까울 수 있다 (DA, 48).



오늘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인 하늘과 땅이 목자들 시대의 그 하늘과 땅과 같다는 말씀이, 더 멀리 떨어진 다른 세상이 아니라 같은 공간이라는 그 문장이 나에게 현실로 ‘훅’ 들어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은 똑같이 하나님의 보살핌의 대상이라고 하니, 같은 지구촌에 세월만 지나갔다는 생각과 수많은 인간의 삶이 그 위를 스쳐 갔다는 시공간을 좁혀 주는 말씀에 새로운 감동이 밀려왔다. 그 시간의 흐름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인생의 이야기로 좁혀지면서 드디어 해득되기 시작했다.

 그날 그 깨달음은 주께서 나를 이끌어 주셨음이다. 한 페이지, 한 문장도 읽기 힘들었던 책이다. 조금만 읽어도 눈이 스르르 감기는 등 나에게 수면제가 따로 필요 없는 그런 책이었다. 낮잠이나 자고 싶을 때 펴 들면 딱일 그런 책이었으나 평범한 인생길을 걷는 우리에게도 천국은 매우 가까울 수 있다는 말씀이 들어온 그 순간부터 오늘까지 『대쟁투 총서』는 읽고 또 읽고 반복해서 읽어도 늘 새로운 깨달음이 있는 내 인생의 신묘막측한 책이 되었다.

예수님이 초림 하셨던 베들레헴의 이야기가 나의 잠자는 영적 세포를 깨워 준 것 같았다. 그 후 여러 우여곡절과 수많은 인생의 풍랑 속에서 매일 넘어지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모든 위로와 해법을 말씀에서 찾으려 노력한다.

살면서 만나는 미운 사람들, 그들 때문에 겪는 나의 인생고를 하나님께 가져간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고백한다. 태풍이 올라오는 바다의 너울과도 같았던 순간들, 주인의 허락도 없이 툭하면 나대기 일쑤였던 내 심장에 평안을 주시는 그분의 안위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내 능력으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벌여 놓고도 그 일을 해결하고자 하나님을 붙잡고 떼쓴다. 그래도 우리 하나님은 그걸 들어주는 분이셨다. 말씀을 수면제로 삼았던 그날에서 건져 주신 그분은 너무나 의리 있게 오랜 시간 나를 이끌어 주신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입장은 우리가 받은 빛의 분량에 달린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을 활용하는 여하에 달려 있다 (DA, 239).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빛을 받았으면 즉 이끌림을 감지했고 깨달음이 있었으면 그것을 나누어야 한다. 간증으로든 말씀 묵상으로든 글로든 말이다. 나에게 필연적 만남을 허락하셨던  하나님의 계획에 이끌리며 예수께로 가는 중이다.


https://www.sijosa.com/?bbseGoods=310


매거진의 이전글 한 걸음 더 이끌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