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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팔룡 Jun 12. 2021

영점조정이 안되면 백 번을 사격해도 실패한다

백전백승하는 최팔룡의 영업일기(18)

총기 다루는데 젬병이었지만 사격이라는 것에서 영점조절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알고 있다. M16 소총을 제대로 쏘려면 총기 소제도 잘해야 하고 기준선 정렬을 잘 해야 실제 사격에서 쓸모가 있다. 적에 대한 치 떨리는 적개심이 있어봤자 총이 엉뚱한 방향으로 발사되면 사격한 사람이 목숨을 잃을 것이다. 영점조정이 안 된 총을 전선에서 난사한다면 사격자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모친을 비롯하여 불안 증세를 가진 분들을 가끔 목격하는데, 상당수 환자들은 현실에 대응해서 살아가기 보다는 어떤 가능성에 대응해서 살아간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처음에는 현실에서 언젠가 벌어질 법한 가능성에 준비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짐짓 능동적이고 준비성 있는 사람들로 여겨지기도 한다. 가능성은 가능성일 뿐인데 그것에 과민하게 반응한다. 개연성이라는 것에 녹아 있는 필연성의 농도가 점차 옅어지면 결국 망상, 환각으로 이어지고 중증환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개연성을 현실과 대비해보고 현실과 맞지 않는 추측은 빨리 버리는 것이 정상인의 행동이다. 사건의 구조나 개념을 파악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보편적인 원리를 적용해서 새로운 가설을 세워본다. 새로운 가설과 현실을 대조해보면 이제 얼추 맞다. 그러면 안도하게 되고 스스로에 대해 긍정적인 느낌을 받아 평범한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과 개연성을 맞춰보려는 노력 자체가 잘 안되어서 결국 포기하는 사람들은 점차 나락에 빠진다. 영점조정을 안하고 사격을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난사를 해서라도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적으로 볼 때는 위험 행동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은 오래된 중고차를 가지고 있다. A는 이 차의 연식이 오래됐고 실제 사용빈도가 거의 없어 빨리 처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믿을 만한 사람한테 확인 전화를 해보더니 이런 차를 사 줄 사람도 없고 이제 쓸데없이 보험료만 지출되는 골칫덩이가 된 것 같다고 한탄을 한다. 뭔가 세상일이 잘 안되고 있다는 푸념까지 곧바로 직행한다. 반면 B는 다르다. 인터넷에서 해당 차량과 연식을 입력해서 찾아보고 중고차 처리 업자 1~2명과 직접 통화해서 현실을 확인한다. 구매를 해 줄 사람과 연락이 잘 안되면 메모를 해 두었다가 다음에 전화통화를 한다. 그렇게 해서 중고차를 처분한다. A와 B의 차이는 언뜻 보면 성격의 차이 같아 보이지만 불안과 강박이라는 거대한 강의 반대쪽에 서 있다는 점에서 우열 관계가 명확하다.     


한국사회가 거대한 우울, 강박, 불안의 도가니에 빠져 있다. 집단적인 광란에 빠져 있다 보니 정상인들이 도리어 이상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 광란의 직접적인 계기는 역시 코로나이지만 경고신호는 그 전부터 계속 들렸다. 1년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다른 질병과 중복하여 집계한 사망자 2천명도 안 되는 질병에 대해 미친 듯이 대응하는 사태는 진정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맹수를 잡듯 뛰어다니며 바이러스를 퇴치하겠다는 만용이 K-방역의 성공이라며 자화자찬을 아끼지 않는다. 스스로 설치한 올가미에 걸려 넘어지면서도 그나마 K-방역 때문에 덜 다쳤다고 기뻐한다.     


대자연의 신비와 섭리에 경외하지 않는 태도는 결국 화를 불러온다. 바이러스라는 미물도 엄연히 생태계의 일부다. 이것을 박멸하겠다면서 멀쩡한 사람들 수천만 명의 혈관에 불완전한 약물을 투여하는 상황이 과연 정상일까? 바이러스 때문에 사회 존립 자체가 어려웠던 구미 각국에서 허겁지겁 취한 조치는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자구책이라고 본다. 하지만 우리는 전혀 아니다. 보건 체계가 붕괴한 것도 아니었고 멀쩡한 사람이 실려 나가는 일도 거의 없었다. 단지 불안하니까 주사를 맞아서 그 불안을 해결하겠다는 것뿐이다.    

 

밟히면 지렁이도 꿈틀한다고 했다. 단지 개체 한 마리도 그러한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 종 전체를 군사적인 방식으로 다루면 어떻게 되겠는가. 틀림없이 스스로 내성을 키워서 인류가 만든 조잡한 체계에 대응을 한다. 영국발, 인도발 변이라는 말이 이미 나오고 있지만 강력한 내성으로 인간에게 복수를 할 것이다. 설령 바이러스 1개를 이렇게 통제하는데 성공했다고 쳐도 앞으로 더욱 큰 문제가 생긴다. 불안할 때마다 계속 이런 방식의 통제를 하려고 들 것이다. 자연과의 조화가 아니라 박멸과 통제를 하려 들면 필시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마스크라는 것도 공중보건의 만병통치약은 결코 아니다. 꼭 필요한 곳에 긴요하게 사용했을 때 무슨 물건이든 윤이 나게 되어 있다. 마스크는 꼭 필요한 필수품이지만 지금처럼 통제, 강박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청소년들의 코와 입을 막으면 자연스럽게 미생물이 드나들고 스스로 면역력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빼앗게 되는 것이다. 단 며칠도 아니고 2년 정도 이렇게 강박적으로 입과 코를 막아놓으면 아이들의 성장에는 치명적이다. 서울의 학생들은 여전히 학교 수업도 파행적으로 운영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실체 없는 집단 불안증 난동에서 어린이, 청소년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되었다.     


애초에 영점조정을 안하고 브레이크 없이 질주한 것이 심각한 오류였다. 추적, 박멸, 통제의 문제점이 나타났다면 즉시 중앙임상위원장의 충고에 따라 문제점을 개선했어야 했는데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영점조정을 안 했다. 관료적인 시스템을 맹목적으로 추종해서는 안 되었다. 매일 확진자수를 보도하여 그것이 대단한 의미라도 있는 것처럼 떠들 필요가 없었다. 현실과 맞지 않는 대처방식을 1년 이상 고집할 것이 아니라 중환자들만 챙기는 방향으로 선회했어야 마땅했다.      


변이 바이러스로 괴질이 발생했다는 보도는 묻혀서 보이지도 않는다. 유통기한이 다된 백신을 구걸하면서도 부끄럽지 않다. 한국전쟁 후 ‘부대찌개’라는 말의 유례가 떠오를 지경이다. 온통 난장판, 미국의 오염된 백신 생산 현장 보도까지 나왔는데도 미친 듯이 백신으로 질주하고 있는 지금의 기현상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바로 마스크 강제와 통제적 방역 행위에서 벗어나고 싶어 몸서리치는 절규가 아니겠는가. 정부에 대해 신뢰하기 보다는 당장의 불안과 공포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전국민적인 몸부림이 아니겠는가.     


코로나19 사태의 가장 심각한 피해는 다름 아니라 강박증, 이로 인한 불안증을 전국민에게 강요한 것이라고 정리한다. 돌봄이 어려운 소상공인은 물론이고 일반 가정과 일터에까지 그 해악은 끝간데없이 뻗었다. 개인의 강박증은 의사라도 있지만 집단적인 강박증은 고쳐줄 의사가 없다. 집단적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집단 강박 행동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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