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팔룡 Jan 23. 2021

소득주도성장 논란의 뒤안길

자본론의 개념을 적용한 생활경제(12)

처음부터 소득주도성장 이라는 것은 허구일 뿐이라고 시인했어야 마땅했다. 소득이란 경제활동을 통해서 개인이나 법인이 최종적으로 나눠 가지는 몫을 말한다. 경제적 부는 선행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경제적 시스템에 따라 분배를 하게 되면 소득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물론 그 분배를 잘 하게 되면 사회적인 조화 상태가 개선되어서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소득이 성장을 주도하게 만들 수는 없다. 세상만사 좋은 게 좋은 거라지만 이렇게 앞뒤를 바꾸어 놓으면 상식적인 가치관마저 위기에 처한다.

     

최저임금 상승을 마르크스의 개념으로 살펴보면 사회전체의 필요노동 부분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공장이나 서비스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재화나 용역을 생산하는 시간들은 필요노동과 잉여노동 시간으로 분할할 수 있는데 최저임금이 상승하게 되면 잉여노동 시간은 감소하고 필요노동 시간이 증가한다. 산업 생산에서 공장에서 생산을 해서 유통을 하는 목적이 잉여가치(이윤)의 획득에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것이다. 잉여노동 시간이 감소하면 잉여가치의 창출은 정비례로 감소한다. 자본주의 경제활동의 중추를 이루는 산업 생산으로 보면 분명히 최저임금 상승은 잉여가치를 삭감하는 것은 분명하다. 소위 말하는 성장 개념으로 보면 이것은 성장이 아니다.

  

필자가 집필한 <진중권 유시민 디톡스>라는 책에서도 유시민을 비롯한 여권 정치인들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였다. 거짓말이라기보다는 홍보문구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이런 홍보문구는 처음 들어보면 참 그럴싸한 어감을 풍긴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주어 소비를 진작하고 그 힘으로 경제성장을 하겠다는 말이니까 이걸 직접적으로 반대하기는 어렵다. 진실이 없는 말의 잔치, 이것이 참 무섭다. 미사여구로 세상을 현혹하던 유시민 씨가 이번에는 명예훼손 관련해서 된통 곤욕을 치르게 됐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위험에 처하면 능수능란한 처세술을 써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왔는데 이번에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좀 두고 볼 일이다. 

   

소득 하위 계층의 소득을 조정하는 문제는 명백히 성장 정책이 아니라 분배 정책에 속한다. 하이브리드 시대에 좋은 거는 섞어놓고 적당히 살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우리 사회는 애당초 사회과학에서 개념화한 논증에 대해 존중하는 자세가 매우 빈약하다. 분배 정책에 요사스러운 수식어를 갖다 붙이면 성장 정책이 되는 것이 지식인이나 관료집단의 수준이다. 집단 지성이라는 것이 대단히 현명한 것이라고 하지만 한편으로 이렇게 허망하게 전락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학자로서의 양심을 버리고 자신의 유명세를 내세워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는 사람이 일약 진보의 아이콘 행세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우연하지 않다.

      

최저임금 상승은 경제성장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분배정의를 실현하고 지속가능한 경제체제를 형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노동자에게 필요노동으로 인정되는 몫이 늘어나면 그들의 의식주의 수준이 높아진다. 최저임금을 높이게 되면 가장 밑바닥에 있는 근로자들의 생활수준이 개선된다. 밑바닥을 돋우면 그 상층을 이루는 근로자들의 형편도 도미노처럼 개선된다. 쇠고기 일 주일에 한 번 먹을 것을 두 번 먹으면 그들의 삶이 개선되고 근로 현장에서의 생산성도 높아질 것이다. 총체적인 삶의 질이 향상됨에 따라 하향하던 우리네 살림살이가 조금이라도 버틸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소득주도’성장’은 불필요하고 소득주도’분배’만 인정돼도 충분하다.     


고소득층의 수입이 늘어나는 것은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만 저소득층의 수입이 늘어나면 소비할 가능성이 많아서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논리는 진지하고 소박한 희망 사항으로 경청할 만하다. 가치 형성이 분배에 선행한다는 고전적인 이론을 일단 제쳐두고 일단 그 주장의 순수함이야 이해 못 할 것이 아니다. 하지만 최저임금 상승으로 영세 소상공인의 인건비 지출이 증가하여 그만큼 마이너스 효과도 생긴다. 소상공인의 지출 감소 효과는 검증해보지는 못했지만 사회적 구성 비율로 볼 때 상당한 수준임을 예상할 수 있다. 성장 효과는 고사하고 소비 진작의 효과마저 의심스럽다. 코로나 덕분에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말 자체가 사라진지 오래지만 앞으로는 근거도 없고 현실성도 없는 말은 안했으면 좋겠다. 최저임금 인상은 나도 찬성한다. 그렇다면 단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서 인상하자고 하면 좋겠다.     


소비자에게 소비쿠폰을 지급하게 되면 지금까지의 상황과는 다른 판도가 열린다. 노동자의 가처분소득이 일시적이나마 증가하게 되므로 전체 노동시간 중에 차지하는 필요노동의 시간이 증가하는 폭이 억제된다. 물론 노동자 자신의 자산 형성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예를 들어 최근에 내가 10% 할인해서 산 소비쿠폰은 3월 말까지 써야 하기 때문에 화폐로서의 기능은 결여되어 있다. 오히려 임금인상을 안 해도 되니까 기업의 비용 절감 효과는 확실하다. 재정지출로 쿠폰을 지급하면 근로자보다는 자본 측에게 훨씬 큰 도움이 된다. 그 중에서도 소위 비대면 기업들은 2020년, 2021년 막대한 자산을 곳간에 쌓아 올리게 된다. 개인들에게 주어진 소비쿠폰들은 유효기간이 있어 신기루와 같지만 대기업 재벌의 수중에 들어오면 한국은행권으로, 부동산으로, 주식으로 영구히 전환된다. 재주를 부린 곰과 그 주인이 생각나는 것은 서글프지만 분명 현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점조정이 안되면 백 번을 사격해도 실패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