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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팔룡 Sep 04. 2021

불안이라도 긍정해야 안정할 수 있을까?

10여 년 전 신종플루 사태가 벌어졌을 때 상황을 단시간 내에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과도한 불안을 잠재워야 한다는 대중적인 의지에서 나왔다. 기록에 따르면 확진자만 76만 명이었는데 사망자는 263명이었다고 한다. 질병청장의 보고에 따르면 매년 3천 명 정도의 독감 사망자가 발생한다고 하는데 그에 비하면 신종플루의 피해는 최소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당연히 보건 의료 시스템과 그 종사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그보다 더 큰 힘은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일상을 살았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본다. 바로 평범한 일상을 긍정하면서 사람들이 자강력을 가질 수 있었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된 것도 있지만 그것은 인간 역량의 일부분에 불과했다. 

정부에서는 11월이 되면 대량접종으로 집단면역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한 바 있다. 완벽한 평형상태는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정말 몰랐을까? 어쨌든 상당한 수준의 안정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화학물질을 몸에 여러 번 주입하는 방법으로 목표가 달성된다고 믿는다면 큰 오산이다. 집단면역 개념을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질병 대항력은 인간의 정신적 안녕, 일상을 긍정하는 태도까지 포괄하여 안정을 취했을 때에나 진정으로 성립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나 지금이나 정부에서는 불안해하지 말고 정부와 의료진을 믿으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그것은 09년과 21년의 공통점이다. 다만 그 믿음과 긍정의 대상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09년에는 인간을 다소나마 긍정하고 있었다면 21년에는 화학물질을 긍정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생겼다. 09년에도 인간의 불안이 확산될 여지가 있었지만 아슬아슬하게 그 불을 껐고 21년에는 그 불을 미처 끄지 못하고 연쇄 화재가 발생하고 있다.

일반 개인이면 몰라도 정부 기관에서, 특히 질병관리청 같은 기관에서 불필요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행위는 이제는 그만두어야 한다. 결국 위험하니까 주사를 맞고 마스크를 쓰라는 얘긴데 직접적으로 행위를 특정하면 될 일이다. 코로나19 환자의 52%가 병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공표가 있었는데 그 내용을 잘 살펴보면 집중력 저하, 피로감, 우울감 등이다. 결국 호흡기 질병으로서의 후유증 같은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것에 불과했으며 코로나 사태 초기의 공포와 불안을 지속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백신 접종자들 중 일부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으로 백혈병에 걸릴 수 있다는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핀잔은 일견 타당하다. 그렇다면 집중력 저하, 피로감, 우울감 같은 증상이 코로나19 후유증이라는 것에도 마찬가지 잣대를 대야 한다. 정부가 내세우는 수치 달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 증상에 대해서는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외국사례에서 발견되는 것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인과관계를 성립하여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것,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고도 전문가라는 간판을 달고 다닐 자격이 있나. 

불안, 불안, 불안. 그 불안이 장기화되어 결국 불안이 일상으로 되고 그것을 긍정하여 보편적으로 취하다보니 안정=불안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어버렸다. 완전히 반대되는 단어가 흐리멍텅하게 섞여버리는 세상이라니. 안정할 수 없게 되니 불안이라도 긍정해서 안정을 취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사회다.

꼭 필요한 곳에 약을 쓰는 것이 아니라 수천만 명의 멀쩡한 사람에게 검증되지 않은 약물을 투입하는 일은 실제로 사회가 붕괴할 때에나 가능할 거라고 봤는데 지금 그렇게 됐다. 백신은 다년간의 임상실험 결과를 토대로 엄격한 과정을 거쳐 승인되고 그 부작용을 충분히 설명하면서 진행되는 것이 정상인데 지금 그렇게 하고 있나? 이런 건 보건이나 의학을 몰라도 당연히 질문할 수 있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전문가가 권한다는 이유로, 외국에서 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화학물질을 대규모로 접종하는 것은 분명 잘못되었다.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어섰고 지금은 완전히 잘못된 길로 멀리 나갔다.

다수의 여성들이 산부인과 부작용을 호소하고 있고 단 이틀만에 접종자 중에서 사망 신고자가 20명이 넘는다. 이렇게 말하면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말한다. 월경 불순은 다른 이유로도 생길 수 있으며 접종자가 워낙 많다 보니 사망과의 연관성은 따져봐야 한다고.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코로나 환자의 사망 비율과 다른 호흡기 질환의 사망 비율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진지하게 연구하고 답변할 준비는 되어 있을까? 참으로 불성실, 태만한 자들이다. 접종 6개월 만에 800명 이상의 사망신고가 되는 접종에 대해 재고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 정상이다. 1년 후, 2년 후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인지 검증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레밍처럼 바다로 뛰어들어서 될 일인가.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개인적인 선택과 회피만 남았다. 그 어떤 집단도 피해자의 어려움에 따뜻한 손길을 내밀지 못한다. 여기에는 한국식 보수도 진보도 의미 없다. 그저 80% 접종률이라는 미신적인 주문 외기만 남았다. 미국, 영국, 이스라엘은 대규모 접종을 완료하고도 부족하여 3번씩 주사를 맞는데 그들을 쫓아가면 출구가 나오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들은 최악의 모델이다. 화학물질을 3번, 4번, 아니 링겔로 그냥 꽂고 다니면서 바이러스를 회피하는 것이 제약회사들을 가장 기쁘게 하며, 불안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들의 기호에도 맞다.

예방의학, 참 좋은 말이다. 병에 걸리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는 것이야말로 의학의 최고봉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근거도 없고 검증되지 않은 약물 투입이 예방의학의 전부라고 한다면 나는 코웃음을 치겠다. 더구나 불안을 강박하는 식의 예방의학이라면 단연코 거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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