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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통달 Aug 28. 2019

나는 회사에 공부하러 간다

<내 운명은 고객이 결정한다>를 읽고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을 때 책가방은 도서관에 있었지만 내 몸은 취업정보실에 있었다. 당시에 공무원은 지금처럼 인기가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나는 취업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으나 남들처럼 치열하게 준비는 하지 않았다. 취업정보실에 들락거린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취업공고 게시판에 붙어있는 어느 화장품 회사 모집공고를 확인하고 바로 원서를 작성했다. 요즘이야 대부분 인터넷으로 취업원서를 보내지만 그때는 수기로 취업원서를 작성해서 직접 회사로 제출하거나 우편으로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원서를 우편으로 보내고 한 달 안에 1,2차 면접을 후다닥 진행하고 나는 화장품 회사의 직원이 되었다. 그때 맡은 직무가 ‘영업관리’였다. ‘영업’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탓일까? 지금까지도 ‘영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직접 사업자등록을 내고 화장품 대리점과 소매점을 해보기도 하고 운 좋게 들어간 대기업에서는 ‘상권 담당’이라는 직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서울에 있는 친구가 사장으로 있던 광고 자재 회사에서는 영업과 함께 승합차로 배달도 했다.


방금 전 건강보험공단에 자격득실확인서를 확인해 보니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4대 보험이 되는 직장을 7개 다녔다. 또한 내 명의로 된 3개의 사업자등록을 등록하고 폐업했다. 돌이켜 보면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화장품 회사 말고는 좋았던 추억은 없다. 영업 직무이다 보니 사람에 치이고 실적에 치이고 조직 내 역학관계에 치였다. 최고의 성과로 우쭐대기도 했었지만 어떤 조직에서는 실적 저조와 보이지 않는 차별로 자존심이 처절하게 짓밟힌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영업을 경험했던 여러 조직에서 최고의 성과이든 초라한 실적이든 그건 나의 역량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다. 개인 역량이 아닌 내가 속한 조직의 인지도와 힘에 의해서 주요 성과가 나왔다.


내가 경험한 영업은 보험이나 자동차 영업처럼 고객과의 접점에서 맨파워를 발휘하기보다는 회사가 만들어 놓은 네트워크와 인지도를 활용하여 거래처에 잘 전달하는 중개인 역할이었다. 난 그런 영업에 익숙했다. 고객이 중심이 아닌 회사가 중심인 영업! 나 혼자 사업을 하면서 고객을 만났던 화장품 대리점과 소매점은 속된 말로 말아먹었다. 고객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설사 고객을 알았어도 그때는 대처할 능력도 없었다.


그렇게 여기 저기 회사에서 건강보험증을 받고 버리고 하다가 지금 회사까지 왔다. 화장품을 제조하고 유통을 하는 지방의 작은 중소기업이다. 내가 이 회사에 입사를 하고 나서 1억도 못하던 회사가 2017년에 20억의 매출을 올렸다. 작은 중소기업에서 매출을 올릴 곳은 대리점과 같은 중간 유통이 아니라 오로지 고객이었다. 회사의 대표는 고객 중심을 강조했다. 대표가 직접 고객과 소통했다. 대표가 고객과 소통하니 나는 고객과 소통하는 것에 더해 직접 만나러 다녔다. 밤늦게까지 고객과 소통하고 커뮤니티를 만들고 수시로 만나면서 의견을 들었다. 매출은 저절로 올라갔다.


그러다 암초를 만났다. 매출 상승기부터 회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던 고객 몇 명이 떠나갔다. 소위 Keyman이 떠나가자 그 파급효과는 생각보다 컸다. 고객 1인당 매출이 높았던 탓에 keyman과 함께 떠난 고객들의 매출 감소 효과는 엄청났다. 영업은 ‘바람’과 같다고들 한다.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것은 힘들지만 나쁜 영향력은 태풍과 같은 바람처럼 회사의 매출과 신뢰에 타격을 주었다. 인간관계는 넒은 백 명보다 깊은 두 세명이 좋지만 고객 관계는 깊은 열 사람보다 넒은 백 명이 낫다는 것을 처절하게 배웠다.


지금 내가 있는 회사는 태풍이 지나간 들판처럼 고요하다. 잘 나갈 때는 모르고 지나갔지만 힘들 때는 사소한 흠도 커 보이고 실망스럽기 마련이다. 아무리 내가 주인 의식을 갖고 열심히 한다지만 결국 나는 회사라는 조직의 구성원일 뿐 주인이 아니다. 주인과 주인 의식은 하늘과 땅 차이다. 요즘 나는 아프다. 이곳저곳 공격을 많이 받아서 아프다. 외부에서 공격을 받기도 하지만 수많은 잡념과 불안들이 나의 마음속에서 나를 공격하는 것이 더 아프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사무실은 고요하다. 컴퓨터 자판 치는 소리도 오토바이 소리처럼 들리고 가끔씩 오는 전화벨 소리는 천둥소리처럼 느껴진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 <내 운명은 고객이 결정한다>, <마케팅 불변의 법칙>, <인식의 싸움>등과 같은 책을 읽고 고객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공부한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광고홍보 방법을 공부하면서 새로운 고객과 만나고 있다. 다시 사무실이 독서실이 아니라 “영업”을 하는 전략기지가 될 날을 기대하며…


난 회사에 일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러 온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그래야 지금의 힘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끝으로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사족으로 붙이며 글을 마무리한다.


첫째, 회사는 결코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회사는 나를 이용할 뿐이다. 사장이 친구라도 내가 필요 없으면 버려지는 것이 회사라는 조직이다.


둘째, 회사가 잘되면 잘해준다는 오너의 말은 100% 거짓말이다. 오너의 입장에서 회사가 잘 될 때란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셋째,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가장 큰 착각이다. 내가 없어지면 회사는 오히려 더 잘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지금 회사에서 내가 걸림돌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해야 한다.   


넷째,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다가는 미칠 수 있다. 내가 열심히 북 치고 장구 치는 상황에서 오너가 외면하는 순간이 오면 그건 당신이 떠나야 할 때다.


다섯째, 지금 잘 나가든, 못 나가든 항상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잘나도 쫓겨날 수 있고, 못나도 쫓겨나는 것이 회사다. 지금 내가 공부를 하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내 운명은 고객이 결정한다> 박종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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