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잔함과 답답함, 애증이 교차하는 그에게
난 노무현을 좋아한다. 그 노무현이 대통령을 하던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을 좋아했다. 문재인이 대통령 선거운동을 하며 전국을 돌아다니던 때 함께 손잡고 찍었던 그 사진을 액자에 넣어 아직도 내 머리맡에 두고 있다. 그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던 날, 기뻐서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5년 내내 지지했다.
문재인을 지지하면 왜 빨갱이인지 아직 미스터리이고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내가 사는 이곳 대구에서는 나를 빨갱이라고 부른다.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는 문재인이 되어 그 빨갱이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싸우고 함께 살았다. 그렇게 문재인을 좋아했다. 그렇다. '좋아했다'라는 말은 과거형이다. 지금은? 솔직히 모르겠다.
"참 많은 분들이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분노,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의 저능하고 무능하고 무도한 패악질이 기승을 부릴수록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원망과 탄식도 깊어집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일찌감치 손절했다는 분들도 많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를 지지했던 분들의 심정은 지금 대부분 '애증'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말 그대로 사랑과 미움이 교차하는 것이지요. 저 역시 극단적 양가 감정 사이를 오가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고통스런 감정이 애증 아니던가요?"
얼마 전 류근 시인이 본인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그렇다. 내 마음이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게 아니었다. 사랑과 미움을 함께 담은 말 '애증(愛憎)'이란 말로는 지금의 문재인에 대한 내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애(愛)'의 농도는 '증(憎)'의 독함에 희석되어 갈수록 옅어진다. 거기에 원망의 마음 한 스푼, 배신감의 마음 두 스푼, 한심하고 답답한 마음 세 스푼이 추가되어 문재인에 대한 내 마음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실체가 없는 이런 미움과 원망과 배신감과 한심하고 답답한 마음에 요즘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사실 법무부와 검찰은 검찰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놓고 함께 협력해 가야 될 그런 관계인데 그 과정에서 갈등이 부각이 된 거 같아서 국민들께 정말 송구스럽다. 지금부터라도 법무부와 검찰이 함께 협력해서 검찰개혁이라는 대과제를 잘 마무리하고 또 더 발전시켜 나가기를 기대하겠다. 윤석열 총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들이 있지만 저는 저의 평가를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다,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윤석열 총장이 정치를 염두에 두고 정치할 생각을 하면서 검찰총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검찰의 개혁이라는 것이 워낙 오랫동안 이어졌던 검찰과 경찰과의 여러 가지 관계라든지 검찰의 수사 관행 문화, 이런 것을 다 이제 바꾸는 일이기 때문에 그 점에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사이의 관점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서로의 입장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것처럼 국민들 염려시키는 그런 갈등은 다시는 없으리라고 기대를 하고 있다." _ 윤석열 검찰총장 관련 문재인 대통령 답변 전문
2021년 1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평가하며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에 대해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공공연하게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정치놀음 중이었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선주자로 부상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치할 생각을 하면서 총장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갈등 상황에서 문재인은 윤석열의 손을 들어주었다. 최근 추미애 전 장관은 당시의 상황에 대해 본인의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추미애 전 장관은 청와대에 '사직서'를 제출한 적이 없으며, '사직'을 거부했고 사직서를 쓸 수가 없다고 말했다. 2020년 12월 16일 윤석열 총장에 대한 징계의결이 새벽에 이루어지고 아침에 출근 직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사직서를 내달라고 전화를 받았으나 명확하게 거절했다고 밝혔다.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를 추진하던 추미애 전 장관은 "오후에 제가 들고 간 징계의결서가 대통령 서명으로 집행된 직후 바로 대통령으로부터 '물러나 달라'라는 말을 들었다"라고 한 추미애 전 장관은 "그 순간 저는 해임당했다"라며 따라서 사직서를 낼 이유가 없어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추미애 전 장관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진실은 당사자 이외에 아무도 알 수 없다. 지금도 진실공방은 이어진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그 중심에 있으니 그에게 진실을 물어봐야 하겠지만 지금까지의 그의 발언과 행동을 생각하면 진실을 털어놓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치할 생각을 하면서 총장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던 윤석열은 대선에 출마했고 대통령이 되었다. 당시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윤석열이 대선의 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본인도 공공연하게 검찰총장 윤석열이 아니라 정치인 윤석열로 활동했건만 문재인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 아니 어쩌면 컨트롤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진 '정치인' 윤석열이 정치를 하지 않기를 바랐던 문재인의 소망이었을지 모르겠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검찰총장 윤석열이 대통령 윤석열이 되는 데에 문재인 전 대통령의 역할이 가장 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윤석열 정부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이 툭하면 문재인 정부 탓을 해도 어떤 미동도 없다. 문재인의 속마음은 모르겠지만 그저 평산마을에서 책방을 하면서 시민들을 만나고 유유자적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을 지지하고 좋아했지만 지금의 윤석열 정부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문재인의 행동은 답답함을 넘어 실망과 분노, 배신감으로 이어진다.
문재인은 퇴임한 대통령이다. 5년 동안 국정을 맡아 고생했으니 현실의 정치에는 이제 그만 발을 담그고 싶을 것이다. 문재인이 정치를 하게 된 것도 본인이 원한 것이 아니었다고 밝혔듯이 어쩌면 정치에 신물이 날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 화가 나고, 민주당의 정치행태에 실망한 국민들은 그의 말과 행동에서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도 그는 아무런 말이 없다. 벌에 쏘여 이마에 반창고를 붙이고, 임플란트 치료 때문에 얼굴이 붓고 멍이 든 모습이 보인다. 속된 말로 짠하다.
글을 쓰다 보니 다시 다시 애증이 교차하고 원망의 마음과 애잔한 마음이 함께 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답답함'이다. 솔직히 모르겠다.
이번 주말에는 봉하마을에 다녀와야겠다.
평산마을은?
내 책상에는 아직 읽을 책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