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백만보수행 2일
아침은 0도까지 내려가 쌀쌀하더니 3월이라는 옷을 갈아입은 태양이 햇살을 비추니 금방 15도 이상 공기를 따뜻하게 데워줍니다. 긴 연휴를 보내고 사무실 문을 여니 연분홍 제라늄 꽃이 곱게 피어 있습니다. 아파트 정원에는 매화가 만발하고 목련과 벚꽃 봉우리는 터질 듯 농염한 몸을 비틀고 있습니다.
아이들 개학하는 날입니다.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 아이들과 나왔습니다. 차로 태워줄까라고 물으니 이제부터는 자기들끼리 걸어가겠다고 하네요. 기특함과 뭔가 모를 허전함이 교차하면서 심장에 가까운 마음이라는 공간을 스쳐 지나갑니다.
누구나 같이 공유하는 시간의 흐름을 아이들에게는 ‘생물체가 세포의 증식으로 부분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점점 커지다’라는 뜻의 ‘자라다’라고 말하고, 어른들에게는 늙어간다라고 말합니다. ‘늙다’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사람이 나이를 많이 먹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합니다.
늙어간다라는 말에는 세포라는 뭔가 근사한 과학용어도 없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멋없는 일상용어로 짧게 정의를 내려버리니 또다시 뭔가 모를 허전함이 마음의 공간을 스쳐 아파옵니다.
노사연의 ‘바램’이라는 노래의 가사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라는 것을 노래 가사로 표현한 곡입니다. 잠깐 딴지를 걸면 곡명인 ‘바램’이라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는 뜻의 ‘바라다’의 명사형은 ‘바람’이며 모음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원래의 형태인 ‘바람’을 써야 합니다. 그냥 그렇다구요.
그럼 본론으로 돌아와 ‘익다’는 무슨 뜻일까요? 사과나 배와 같은 열매가 여무는 것, 날것이 뜨거운 열에 의해 그 성질의 맛과 성질이 달라지는 것, 김치나 술 따위가 맛이 드는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노래에서 익어간다라고 말한 것은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세상의 변화나 어려움에 적응하여 여물어 단단해진다는 뜻일 겁니다. 또한 상처받기 쉬운 푸릇함에서 웬만한 상처에도 잘 표시 나지 않는 원숙함과 세월에서 오는 여유로움을 ‘익어간다’라고 표현했을 겁니다.
아무튼 늙어가는 것이든 익어가는 것이든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자라다’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제 나이 이제 50. 같은 시간의 흐름에 아이들은 자라고 저는 늙어가고 익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