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김연아가 현역 시절, 한창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이 많이 나왔는데, PD가 물었다. 스트레칭을 할 때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고, 김연아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작가 역시 그랬다. 달리기를 할 때 발상이 튀어 올라서도 아니고 소설 구성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고 작가는 그냥 달렸다. 오늘도 역시 그는 달리는 하루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특히, 이 문단의 마지막 줄이 하이라이트다. 그중에서도 (36p.) 확실히 추운 날에는 어느 정도 추위에 대해 생각한다. 더운 날에는 어느 정도 더위에 대해 생각한다. 슬플 때는 어느 정도 슬픔에 대해 생각한다. 즐거울 때는 어느 정도 즐거움에 대해 생각한다. 앞에서도 썼듯이, 예전에 일어났던 사건을 두서없이 떠올릴 때도 있다. 때때로 소설의 괜찮은 아이디어가 문득 머릿속에 떠오를 때도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제대로 된 것은 거의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달리기에 관해 진짜 뭐라도 갖고 있어서 책을 쓴 게 아니라, 꾸준히 시간과 과정을 글로 쌓았다는 게 포인트다. 달리기 하나로 쓴 글이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와 면모를 배울 수 있는 책이라 필사하기 좋은 문장들이 무지 많았던 것 같다. 개수가 워낙 많아 노션에 따로 적어두었다. 요즘 책들은 달리기라는 주제로 꿀팁, 노하우 같이 방법론 적인 내용을 다루는 책들이 많은 반면, 하루키 작가의 글은 다르다. 달리는 행위 자체를 기록하고 그 과정을 남긴 책이라서 작가의 세밀한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는 책이다. 평소에도 인상 깊은 문장들을 표시하는 편인데, 한데 모아보니 꼭 나에게 필요한 말들이 비슷한 패턴이 있었다. 계속해 나가는 것, 내가 선택한 것을 주도적으로 해 나가는 힘, 무언가에 집중하는 자세나 태도에 관한 글에 눈길이 갔다.
예전에는 퇴사 후 여행과 같은 과감한 결정과 도전이 더 멋져 보였고 그걸 따라 했다. 요즘은 하루하루 작은 것들을 꾸준하게 이어가는 사람들이 더 대단해 보이고 단단해 보인다. 예전의 나라면 와닿지 않았을 문장인데, 이제는 안정적인 루틴을 가진 사람들을 따라 하고 싶어 진다.
(117p.)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돼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아주 그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256p.) 효능이 있든 없든, 멋이 있는 없든,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결국 갑작스러운 생각(작가 전향)과 꾸준한 실천(달리기)이 만났을 때의 이야기다. 내 인생에도 적용해 볼 만한 태도라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달리기에 관심 없는 나지만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다잡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