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4
이제 지겹도록 주변에서 들려오는 MBTI의 무한 굴레. 너는 어떤 유형이야? 나는 초딩때 담임 선생님이 MBTI 전문가셔서 ENFP라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았다. 스스로가 궁금해 끊임없이 자아를 탐구하고 매우 활기차고 낙천적인 나의 성격. 중학교 때는 산만하고 뭐든지 과해 보이는 내가 조금 이상해 보였고 고등학교 때는 공부하는 시간에 좀이 쑤셔서 그렇게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자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자유로움에 눈이 떠서 ENFP 본성 그대로 살 수 있어 좋았다. 무엇이든지 내가 선택하는 과목, 내가 선택한 친구들, 내가 만드는 스케줄, 내가 지원한 대외활동까지 재미있으니까 흘러넘치게 만족스러웠던 대학생활. 회사에 들어가니까 또다시 나의 틀이 갇히는 느낌. 나는 회사를 늘 작은 그릇이라 생각했고 나를 담아주는 큰 그릇의 회사에 갈 사람이라 스스로를 여겼다. 큰 그릇을 찾으려면 내가 더 자격을 갖춰야 한다며 끊임없이 자기 계발에 몰두하고 일 자체를 큰 재밋거리로 여겼다. 잘하는 자와 즐기는 자 중 누가 이겼는지 아는가? 결론은 그게 중요한 게 안다.
나는 스스로를 그 둘을 합친 일잘러 캐릭터라 생각할 정도로 자의식이 매우 커졌다가 풍선 마냥 푸슉 꺼졌다. 직장생활 5년 차가 넘길 즈음이었다. 지금은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뭐든 다 해결 가능한 사람이 됐다. 모든 사람이 내 마음 같지 않고 일은 원래 계획 꼼꼼하게 짜서 보고 받고 예쁨 받더라도, 실행은 그대로 되는 법이 없으며 변수를 잘 처리하고 좋은 성과를 하이라이트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회사맞춤형 인재였던 것이다.
얼마 전, 강점 검사와 직업 선호도 검사, MBTI를 다시 받을 일이 생겼다. 결과는 대반전이었다. 나는 ESTJ가 되어 있었다. 평소의 내 모습이 아닌 회사에서의 자아를 꺼낸 것이었다. 일부러 그랬다. 그래야 이력서와 일치하는 캐릭터가 나오는 거니까. 조별활동을 할 때, 진짜 내 모습을 꺼내야 할지 일 할 때 내 모습을 말해야 할지 혼동이 왔다. 그런데 둘 다 내 모습이긴 했다. 일할 때의 온도차가 있다는 뜻이었다. 일에 대해서는 진심, 몰입, 집중 그리고 진지한 나였으니까.
강사님은 ESTJ가 일잘러가 많다고 했다. 일을 그만큼 많이 하고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반은 끄덕. 반은 절레. 왜냐면 일이 좋으면서도 일을 편하게 하고 싶은 사람도 나이기도 하니까. 사람들이 나를 반장으로 추천했고 나에게 말을 잘한다고 칭찬해주고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유능한 동료로 비치기 시작했다. ENFP였을 때는 말괄량이, 분위기메이커 정도였는데 사뭇 달랐다.
급기야 나 스스로도 헷갈렸다. 내가 진짜 바뀐 것인지, 진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인지. 어느 정도는 맞았다. 위클리 플래너를 사용하고 매일 전날 밤 하루 계획을 짜고, 특히 일어나는 시간을 잘 짜고, 요즘 들어 약속에 잘 늦는 법이 없다. 하기로 한 것은 무조건 그날 끝내고 거의 매일 유산소 운동을 챙기다시피 살았으니까. 그러자 이렇게 사는 것이 참 편해졌다. 이전의 나라면 금세 지루해했을 텐데.
Gemini에게 말을 걸었다. ENFP였는데 ESTJ로 바뀌었는 데 나 스스로 헷갈린다고 어떻게 된 일일까? 이 정도 수다에 제법 마음에 드는 답변을 받아서 기록해두고자 한다. (진위 여부는 굳이 가리고 싶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답이었을 뿐)
1. 당신은 특정 상황에서 효과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 ESTJ적인 특성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개발했을 수 있다. ENFP의 가점이 뛰어난 적응력과 유연성이 발휘된 것. 이는 당신이 필요할 때 자신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역량을 습득할 수 있는 역량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줌
2.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을 수도 있음. 이성적 판단과 계획적 실행이 당신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이 방식들이 나에게도 편안함을 줄 수 있구나 느끼게 된 것
3. MBTI는 한 사람의 모든 면을 담지 못한다. 삶의 경험과 성장을 통해 다른 유형의 강점들을 내면화하고 통합했을 수 있다. 당신은 이제 ENFP의 창의성과 열정뿐 아니라 ESTJ의 계획성과 실력까지 겸비한 더욱 입체적인 사람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AI는 확신의 문장을 적지 않는다. 가능성을 말한다. 그렇다, 나도 절대적으로 대단한 사람이 된 게 아니라 제법 괜찮은 사람인 상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래도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면 누가 MBTI가 뭐냐고 물었을 때 ENFP가 좋을까? ESTJ가 좋을까? 사적으로 만난 친구라면 ENFP, 공적으로 만난 친구라면 ESTJ라고 선택할 것이다. 유형 별 포지셔닝이 딱 나오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