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5
표류. 일하지 않는 일상이 비일상인가.
나인투식스에서 벗어난 지 어언 4개월 채워간다. 평일을 열심히 살고 있는 듯싶지만 필요한 만큼의 머리만 쓰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계속되는 패배감으로 합격에 목말라있을 때쯤. 무기력이 찾아왔다. 무기력이란 게 에너지를 갖고 있어도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르는 상태라 하는데, 모든 것이 다 귀찮은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들 중 해야 하는 것. 잘해야 하는 것. 잘하고 싶은데 패배의 리스크도 감수해야 하는 것에서 특히 겁이 났다. 그냥 시작하는 장점을 가진 나인데, 시작하는 게 어려울 줄이야. 계속되는 불합격과 계속 시도해야 하는 투지가 소진되고 나니까 자신감도 줄었다. 바짝 쫄아있는 요즘이다.
2년 전, 나는 반 자유로운 형태로 일하기를 선택했다. 좋은 간판은 달아보고 나오되, 내가 그곳에 종속되지 않음으로써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로 기꺼이 일을 배우고 들어오는 게 좋았다. 그 상태로 1년 간 심플한 일상을 살았다. 아무 생각 없이 일-회사-일-회사 그리고 즐거운 취미 하나면 됐다. 그런데 연애라는 필요가 생긴 후, 나는 내 사회적 지위에 갈등을 하게 됐다. 남자친구와 오래가기로 잠정적인 약속을 하면서부터다. 처음에는 내가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서 수원역에서 사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다. 그런데 사업, 프리랜서 보다 월급 받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남자친구의 말과 간판을 한번 달아보니 저절로 들어오는 높은 대접들이 나를 꿀맛의 세계로 이끌었다. 나도 높은 간판을 달고서 높이 찍어봐야 나중에도 그 이력을 활용해서 살 수 있다. 정도의 이력이었다. 나의 실력보다는 어디에 몸 담아보았냐는 그것. 사실 오래된 생각인데, 생각이 후퇴해 버렸다. 1인 출판으로의 삶, 칼럼의 삶, 글 쓰며 사는 삶으로부터 벗어나 일반 회사 생활을 다시 시작하답 보니까 보통의 삶으로의 회귀가 당연한 수순 같았다.
나는 어떤 환경에서 일해야 잘 맞는 사람일까. 이것은 육아휴직이라는 기점에 맞춰서 결정하기로 잠시 유보를 한다. 보통으로 살기 위해서 큰 회사로의 도전. 빈 삽질을 가지고 사는 삶이, 이게 맞는 것인지 아니면 못 오르는 것인지 아직 모르기 때문에 마구 던지고 있는 건데. 나 다운 선택은 무엇일까. 이것이 우리를 위한 선택이지 않을까. 남친에게 신뢰를 주기 위한 선택인 걸까. 어지럽다. 나는 잠시 길을 잃은 것 같다. 내가 온전히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선택. 그것이 무엇일까 잠시 불투명해져 본다.
지금은 위기일까 표류일까 진짜를 깨닫기까지의 잠시 쉼표일까. 모르겠다는 말만 백번은 되뇌인다.
면접을 보러 가면 회사에서 충성심을 본다. 오래 근무하지 않았던 경력 때문에 약한 부분을 설득해야 하는 데서 움츠러든다. 근데 그냥 설득하면 되는 것이었잖아. 회사원은 나의 개인 활동이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면접관들은 나의 개인 활동이 조직의 로열티에 방해가 되는 리스크라고 바라본다. 그래서 더 날카롭게 물어보지만 나는 내가 가진 무기를 언젠가는 꺼낼 생각이다. 남의 돈을 받고 살기와 남의 돈을 안 받고 살기의 바운더리가 참으로 냉정스럽다.
아유 진짜 겁나 어렵다. 이 애매함을 견디는 것도 능력이라는데, 나는 오늘 저녁에는 더욱 침잠하는 상황을 맞딱드리러 가야 한다. 아 어렵고 무섭다. 평범한 삶이라는 게 뭔지 나도 평범함의 범주에 있는 건지 평범함의 범주에 굳이 들어서 무엇하나 싶지만 안 평범한데 평범함을 바라보려니 되게 어렵다. 나다움의 정의도, 나다운 선택도, 나의 앞길도 어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