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 뮤지컬 예술센터를 아세요?
1,700원의 포카칩 한 봉지, 3,500 원하는 디카페인 라테 한 잔 그리고 2,000원의 로또 복권. 일주일 한번 꼴로 꼭 사게 되는 것들이다. 이왕 공짜로 행운을 낚으려면 누군가는 너무 적게 거는 게 아니냐 물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은 아예 낭비하는 돈으로 볼 수도 있다. 습관적으로 복권을 사는 나만의 행위는 누구한테 자랑삼아 말해본 적도 없는 꾸준한 취미다.
이상한 꿈을 꾸는 날에는 무료 꿈해몽을 불러 의미를 찾고 재물복이 온다며 복권 살 구실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 날은 불행한 일의 액땜을 떼어내는 비용으로 복권 값으로 교환하기도 한다. 회사에 다닐 적엔 출장 지역에 가서 복권을 사모으는 게 나만의 소소한 재밋거리였고 야근할 때는 회사에 버린 2시간을 내 몫으로 돌리고 싶어서 복권을 샀다. 그것도 직장 생활 내내 꾸준히.
생계에 허덕이거나 빚을 급하게 탕감하는 상황에 놓인 것도 아닌데 우리는 막연하게 큰돈이 내 통장에 꽂히기를 바라며 산다. 만약 진짜 복권에 당첨된다면 어떻게 될까? 진짜가 현실이 되어야만 하는 그런 집착이 있는 것은 아니고 막연한 희망이 한 줌 생길 뿐이다. 큰돈으로 딱히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마음의 여유와 선택의 자유가 생기니까 살다 보면 돈은 많을수록 좋아 보이는 게 있다.
매달 로또명당을 찾는 내게 눈이 쏙 들어온 것은 제13회 GAF(Glocal Acting Festival) 공연예술제의 <철수의 로또분투기> 작품이다. 제목에서 풍기는 예측 가능한 줄거리가 느껴졌지만 막연히 로또당첨을 기대하는 나 같은 사람들이 또 있다는 동질감에 이끌려 예매했다. 금천뮤지컬센터에서 내가 본 작품은 100% 순수 창작 뮤지컬로 딱 한 시간을 채운 짧은 공연이었다. 친구와 가족들이 와서 그런지 존재만으로도 배우에게 응원이 됐을 것 같고 객석 호응도 가까이서 바로바로 느껴지는 소극장 공연이라 보는 내내 마음이 푸근했다. 졸업 작품 전시회였는 지 관객들도 알음알음 지인들로 보였다. 나같이 작품이 궁금해서 직접 예매해서 온 관객은 많이 없는 것 같았다.
취업 면접에 낙방하고 편의점 알바와 행정고시 준비를 병행하는 주인공 철수. 엄마는 그런 철수를 밥값을 못 한다며 한심해하고 여동생은 나잇값을 못한다며 병신이라 부른다. 취업도 잘 안 되고 손님의 뒤치다꺼리에 지친 철수가 집에서 쉬는 동안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심난해한다. 하필이면 그날은 엄마가 진상 손님과 싸운 뒤 회사에서 잘린 날이라서 가족들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심에 빠진다. 돈 벌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고 싶은 철수 앞에 병철이가 나타나 로또를 제안한다. 이 둘은 로또 당첨 비법에 몰두한다.
어떻게 보면 철수는 로또 당첨일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희망적으로 보내게 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철수가 곧 죽을 수 있다는 병원의 전화에 집안이 발칵 뒤집어진다. 종양이 온몸으로 퍼져 곧 죽을 수도 있다는 철수는 복통을 고통스러워하다가 정신을 잃고 병원에 실려간다. 가족들은 가장 노릇하던 철수마저 가버리면 어떡하냐며 애통해하는 사이 간호사가 오진이었다는 말과 함께 철수를 퇴원시킨다.
철수네 가족은 한심한 첫째가 그저 살아있기만 하면 바랄 것 없다고 전 보다 다정하게 철수를 대하게 된다. 철수는 죽을 줄 알았던 자신이 새 삶을 얻은 거라 받아들이며 건강한 몸 하나로 충분하다는 마인드로 예전보다 더욱 희망을 갖고 살게 된다. 철수가 연구한 그 숫자, 과연 로또는 1등이 됐을까? 열린 결말로 막을 내린다. 중간중간에 앙상블로 감초 역할을 받은 병철이가 나를 크게 웃겨주었다. 모든 엑스트라에 잘 어울리는 배우였다.
로또, 나도 한 주의 소소한 희망이 큰돈으로 바뀔 수 있다는 막연한 상상으로 매주 사고 있다. 아무것도 가진 사람 없는 사람들에겐 로또도 굉장한 희망이라고. 그런데 이 뮤지컬을 보고 뭉클한 감동을 느낀 이상 문장으로 다시 고쳐 써야 한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보이는 우리들은 복권의 커다란 인생 역전을 꿈꾸지만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의 전환점이 된다.
아직 우리는 돈 주고 살 수 없는 건강한 몸과 젊고 창창한 나이(가능성)가 있다. 고통과 행복을 함께 짊어질 가족이 있고 나라는 존재에 효도로 보답할 부모님이 아직 살아 계신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가진 자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엄청나게 중요한 그런 것들.
현실적으로 철수는 여전히 돈이 없는 백수다. 병원의 오진 때문에 별안간 죽을 고비에 놓였다가 한순간 무탈한 상태로 돌아왔으니 철수는 백수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건강한 성인 남자로서 본인의 위치를 다시 보고 일어서게 한다. 철수는 이제 현재에 대한 한탄 대신 자신감 있는 내일을 기대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 뮤지컬 공연이나 교육은 혜화동에서만 가능한 줄 알았는데 금천뮤지컬센터의 존재를 이제야 알아볼 수 있었다. 이곳은 가산중학교 바로 옆에 위치했는데 중학생 친구들은 뮤지컬 수업이 정규 수업으로 짜여 있나 보다. 건물끼리 통로가 연결되어 있었고 수업 후기로 보이는 메모들이 포스트잇으로 철문에 한가득 붙어있었다. 금천구에? 이런 곳에? 궁금한 마음으로 건물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뮤지컬 레슨받는 곳, 공연 연습하는 곳, 실제 공연장까지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 생긴 지 5년도 안 된 신축 건물 같은데 동네와 가까운 곳에 있는 만큼 직장인 뮤지컬 교실이 개설된다면 생긴다면 꼭 한 번 멤버가 무대에 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