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도 않을 거면서
함께 떠나지 않겠다고만 말을 하고
울지도 않으면서 눈은 안 멀고 있어서
혼인은 언제 하나 지켜보면서
자리를 빛내주세요
청첩장에 씌인 초대문은
홀로가 남기는 유언이라고
그러니 그것을 잘 기억해달라고
청첩은 말 그대로 부탁하는 편지인데
무엇을 빛내달라는 부탁인거니
뷔페의 하얀 쟁반만으로
있지도 않은 무한을 잠시나마 믿는 것처럼
예식장만 떠나도 마주치는 무한함과의 이별처럼
잊을 수 없는 것들
무엇이길래 어쩜 이렇게 잊을 수가 없지
사라지는 거 까지는 바라지도 않을 테니
찾아오지만 말아달라고 부탁해보는
그마저 거절하는 매정함
올 것만 같은 올 것만 같은 것들
올 것만 같은 울 것만 같은 것들
울지 말라는 말을 하다가 지쳐 포기할 때쯤
울음을 그치며 하얗게 웃는데
웃는 것들은 웃을 거면서 어째서 떠나는 걸까요
웃음이 떠나겠다는 약속인 건지
그럼 나는 이제 영영 웃을 수가 없는데
모른다는 말로 너무 쉽게 흐려지고
흐려질 수 있어서 흐려지는 짙음
고작 반짝임 한 번으로
영원히 선명함으로 남겠다는 사진
당신도 사진이 되겠다고
안녕히 가세요
어디라고 방향은 가리키지는 못하고 가라고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