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를 담은 전통주
'맥주, 와인, 황주'
인류역사에서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고대술을 꼽으라면 대표적으로 이렇게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모두 곡류나 과일을 이용한 술들이죠.
중국 '황주黄酒'는 약 2500년에서 300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중국술 '바이주'라고 하는 ‘백주白酒’는 이보다 역사가 짧죠.
황주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221년)에 이미 소비되었다고 기록되었는데, 이에 비해서 백주는 약 1,000년의 역사를 가진 술로 증류 기술이 고대 아랍에서 중국으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예전 중국 무협영화를 보거나 삼국지를 영상화한 내용들을 보면 항아리를 통째로 들고 벌컥벌컥 마시는 영웅들의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당시에 “아니 저 독한 술을 어떻게 저렇게 마시고 살 수 있지?"라는 의심이 들기도 했었죠. 지나고 보니 그 술이 높은 도수의 바이주가 아닐 것이라고 보입니다.
최근에 '황주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샤오싱(绍兴소흥)에 다녀왔습니다.
샤오싱은 과거 춘추전국시대의 월나라의 수도였습니다. 그래서 여러 고사古史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곳이죠. 특히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성어인 와신상담(臥薪嘗膽), 오월동주(吳越同舟), 토사구팽(兔死狗烹)등이 이 월나라를 배경으로 나온 이야기죠. 월나라와 함께 바로 위쪽에 위치해 있던 오나라와의 오랜 대결과정에서 나온 말들입니다.
샤오싱에는 중국의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명인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루쉰(鲁迅Lu xun 노신 1881-1936)이 있습니다.
중국 '근현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작가이자 사상가, 혁명가로서 중국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당시 중국사회에 사상적 계몽의 필요함을 느껴 문학 활동을 통해 대중들에게 깨우침을 주고자 노력했습니다. 소설작품으로 대표작인 '아큐정전(阿Q正伝)', '광인일기(狂人日記)'가 있는데 많이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근데 계속 루쉰으로만 알고 있었던 이 분의 본명은 루쉰이 아니더군요. 작가의 필명이었고 본명은 저우수런(주수인周树人zhou shu ren)입니다.
샤오싱이란 도시가 루쉰의 고향이란 사실을 홍보하고자 샤오싱에는 루쉰이 살던 옛 가옥을 기념관으로 잘 꾸며놨습니다. 이번에 기회가 닿아 방문을 해봤는데요, 생가라고 하는데 루쉰 이름은 없고 온통 周 씨 성을 가진 사람들만 이야기해서 처음엔 잘못 왔나 싶었죠. 근데 알고 보니 루쉰의 성이 周 씨였습니다.
이렇게 멋모르고 여기저기 다니다가 얻어걸리는 지식이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루쉰 외에도 여러 인물들이 샤오싱과 연이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 정치사의 중요인물인 주은래와 우리가 명필로 알고 있는 왕희지, 그리고 양명학을 만든 왕수인(왕양명은 호를 사용한 이름)등이 이곳 샤오싱과 관련이 있습니다. (주은래는 이곳 태생인 듯싶은데, 왕수인은 샤오싱 근처사람이고 묘지가 이곳에 있습니다. 왕희지는 어떤 연유로 기념관이 있는지 아직 파악 못했습니다.)
이렇게 샤오싱엔 여러 시대를 이어서 많은 유명인들이 거쳐간 유서 깊은 도시죠.
통틀어 약 500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인 샤오싱은 중국 도시 등급으로 봤을 때 4선급도시(?)라고 볼 수 있는데요(개인적 판단) 유구한 역사와 배출된 인물들에 의해서인지 다른 비슷한 급의 도시와 비교해서는 도시의 무게감이 있어 보입니다. 방문을 원하신다면 항저우와 가까워서 항저우를 여행하면서 같이 둘러볼 수 있는 도시라고 여겨지네요.
요새는 중국어로된 기사들을 인터넷에서 볼 때, 웹브라우저에 있는 번역기능이 꽤 유용하게 쓰입니다. 저도 자주 사용하곤 하는데요. 이 때문에 중국어 실력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도 됩니다만, 편리함에 자주 이용하게 됩니다. 이 번역기능을 사용해서 '황주'와 관련된 내용을 보니 번역기에서는 '황주'를 '막걸리'로 번역을 하더군요.
참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실제로 황주는 찹쌀등의 곡류를 이용해서 빚는 술이기에 우리의 막걸리와 매우 유사합니다. 우리의 동동주나 막걸리, 일본의 청주, 중국의 황주 등은 빚는 방법이나 속성이 기본적으로 비슷합니다. 쓰는 곡물과 누룩의 종류, 담는 그릇의 재료 등등의 차이로 인해 다르게 분류되고 있는 거죠. 술이라는 것이 인류와 함께한 오래된 음식인데, 각 지역의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전되어 왔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어쨌든 중국은 '황주'라는 중국만의 독특한 맛과 향을 갖는 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옛이야기의 영웅호걸들이 마시는 술이 실은 알코올 도수 14~18% 정도의 황주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와인이 13% 정도의 도수라고 했을 때, 비슷한 알코올 성분이 되겠죠. 그나마 도수가 낮으니 저리 항아리째로 마셔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국 술은 색으로 분류를 하곤 합니다.
황주는 색이 탁한 갈색을 띠는데 이 색으로 인해 '황주'라고 불립니다, 시간이 오래될수록 색은 점점 짙어지는데 짙은 커피색으로 바뀌기도 하죠. 처음엔 우리네 막걸리 윗부분의 투명색을 띠지만 점차 숙성기간을 거치면서 색이 찐해집니다. 황주가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곳이 중국 전역에 분포되어 있지만, 그래도 가장 으뜸으로 치는 것은 바로 '샤오싱황주'입니다. ‘샤오싱황주’가 주는 깊은 맛과 향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죠.
황주는 중국요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마오쩌둥도 즐겼다는 홍샤오로우(红烧肉홍소육)가 있는데요, 고기에 황주를 넣어서 쪄낸 요리이며, 고급요리로 뽑히는 포탸오창(佛跳墙불도장)이라고 하는 요리도 있는데 산해진미에 황주와 간장을 넣고 고아낸 요리입니다. 황주를 넣어 쪄낸 새우나 털게도 매우 맛있습니다. 이 외에 일반가정식요리에 많이 사용하기에 황주는 중국요리에서 일종의 '맛술'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장인어르신이 '황주'를 무척 즐기십니다.
술을 워낙 좋아하셔서 저녁에 반주로 황주 반 병이나 한 병은 금방 뚝딱이시죠. 그렇게 같이 식탁에 앉게 되면 자연스럽게 권하시는 술잔을 몇 잔 받아 들곤 했습니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황주의 향과 맛에 어색한 맛이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조금 익숙해지다 보니 중국음식을 먹을 땐 생각나는 술이기도 합니다.
간혹 일본지인을 만나거나 할 때 이 '황주'를 선물하면 좋아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물어봤지만, 공통적으로 추출할 수 있는 내용은 일본인들이 중국 황주를 매우 좋아한다는 겁니다. 앞서 속성을 이야기했듯이 아마도 일본 청주, 샤케와 연관성이 있어서 맛이 익숙하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황주의 도수가 낮기는 하지만, 흔히 말하는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합니다. 낮은 도수에 앉아서 기분 따라 마구 들이켰다간 나중에 큰 일을 치르게 되죠. 대부분 곡주가 그러하듯이 다음날 숙취가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샌 기술이 좋아져서 많이 개선되고 있는 거 같기도 하고요.
황주박물관에는 황주가 여기저기 건강에 좋다는 말들이 쓰여있더군요.
건강에도 좋고 일종의 '약주'로서 병도 낫게 한다는 어쩌고 저쩌고...
근데 그런 걸 보면서도 믿진 못하겠네요. ‘술은 술이기에 많이 먹으면 병나는 건 맞을 텐데 참 이율배반적인 글들이 적혀있네...’라는 말이 맴돌았습니다.
어쨌든 몸에 좋다니 한 번 맛을 보시는 게 어떠실지요?
샤오싱에 지인을 만나러 갔다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나 가져왔습니다.
술을 저장하는 창고의 공간디자인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디자인 방향설정을 하는 일에 같이 참여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요새 시간이 좀 있기도 하고 이 일이 매우 재미있을 듯싶어 바로 승낙을 하고 며칠 연구를 하다가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황주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의미들을 찾아보고 있는 중이죠.
더 나아가 술이 우리에게 주는 소비문화적 의미들도 엿보려 합니다. 근데 공부할게 참 많네요.
그만큼이나 인류역사와 술이 같이 해왔기에 관련내용들이 많을 겁니다.
프로젝트와 관련이 된지라 시간을 쪼개 샤오싱에 간 김에 황주박물관을 하루에 두 곳이나 가봤습니다. 처음에 들린 곳은 숙박한 곳에서 가까운 박물관으로 도심 관광지에 위치에 있어 부담 없이 갔습니다. 이곳은 구위에롱산(古越龙山)이라는 샤오싱황주 브랜드에서 만든 기업박물관 이더군요. 도심에 있어 다들 이곳이 국가 박물관이라고 여길 듯싶습니다. 근데 나름 잘해놨습니다. 내부 콘텐츠도 업그레이드하려는 노력이 많이 보이고, 실제 술을 제조하는 장인이 황주를 담그는 곳이 있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실물을 탐방할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한 곳은 역시나 기업박물관인데, 콰이지산(会稽山)이라는 브랜드의 박물관이었습니다. 약간 외곽에 위치해 있지만, 앞선 곳보다는 새로 지어서인지 규모나 시설면에서 훨씬 잘해놨습니다.
전 상하이에 살고 있어서 황주하면 그냥 스쿠먼(石库门 상하이 황주브랜드)이 있구나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한국방문할 때 몇 병 사들고 가곤 했었죠. 근데 실제 샤오싱황주의 큰 축은 바로 이 두 회사 구위에롱산(古越龙山)과 콰이지산(会稽山)이 대표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국영기업이고 나머진 민간기업인데 시장에선 국영기업이 여러모로 앞서가고 있고 민간기업이 그 뒤를 바짝 쫓는 상황입니다.
제가 참여하게 된 브랜드는 콰이지산(会稽山)입니다. 실제로는 구위에롱산보다도 더 오래된 브랜드로 현지인들은 이 브랜드를 더 선호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는 구위에롱산이 더 알려져서 거의 두 배정도의 역량차이가 나는 듯싶습니다.
항주는 중국의 전체 주류시장에서 약 2.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역사와 전통성에도 불구하고 현대 소비자들은 외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를 타파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젊은 고객들을 잡아야 황주의 미래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이들의 인식을 바꾸기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전통적으로 황주는 나이 드신 분들, 집안 분들 행사에서 식탁에 내놓는 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죠. 게다가 집에서 요리에 쓰듯 싸고 예스러운 술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고급화시키기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마오타이가 우리나라 삼성의 시가총액을 넘어섰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요 바이주가 이렇게 고속 성장하는 데엔 마케팅의 영향이 매우 컸습니다.
국빈을 모시는 술. 중국을 대표하는 술이 되어버린 거죠.
그런데 점차 낮은 도수를 선호하는 젊은 술문화와 독특하고 다른 분위기와 맛을 추구하는 취향이 트렌드가 될 수 있기에 전통주의 도약이 그렇게 암울하지만은 않을 듯싶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술을 즐기는 술문화를 엿보면서 중국도 비슷한 기회가 충분히 있을 듯싶거든요.
여러모로 황주는 우리의 막걸리를 닮아 있습니다.
만드는 법이나 그 문화에서의 인식이나 최근의 맞닥뜨린 시장에서의 입장에서나……
앞으로 어떤 변화가 생길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