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적 건축작품들이 가진 한계와 공간마케팅의 중요성
상하이 푸동엔 큰 전시장이 하나 있습니다.
매년 다양한 전시회가 열리고 해외에서도 많이들 참여하죠. 그래서 이곳을 아시는 분들이 꽤 있을 듯합니다. ‘SNIEC 上海新国际博览中心’ 상해신국제무역중심이라고 불리는 곳이죠.
이 전시장 서쪽에 마주 보고 있는 묘하게 생긴 건물이 하나 있죠. ‘히말리아중심喜玛拉雅中心’이라 불리는 건물입니다. 정식명칭은 上海证大喜玛拉雅中心입니다.
이 건물은 2010년에 완공된 복합용도의 건물입니다. 오피스, 상업시설, 호텔, 미술관이 한데 어울려져 있습니다. 연면적 약 16만 제곱미터의 30층 건물입니다. 이 건물을 설계한 이는 최근 작고한 일본 건축계의 거장 아라타 이소자키(ARATA ISOZAKI)입니다. 이 분은 2019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이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비교적 최근인 2022년 12월 말에 생을 마치셨습니다. 1931년 생인데 92살에 돌아가셨으니 늦게까지 정말 왕성한 활동을 하셨네요.
프리츠커상이 한두 개의 작품으로 상을 주는 것이 아닌 건축가의 사상과 건축관을 중시하기에 대부분 나이가 드신 분들이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 상을 받았다면 이 사람의 건축세계를 면밀히 엿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소자키는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한 건축가이기도 합니다. 현재와 미래를 잇는 새로운 시도는 후학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죠. 초기 '메타볼리즘 Metabolism'이라 불리는 도시와 건축을 유기체처럼 보는 철학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1960년 도코 세계 디자인 회의에서 당시 일본 젊은 건축가들이 들고 나온 새로운 건축철학. 신진대사라는 뜻을 갖고 있는 단어로서 도시와 건축은 하나의 생명체로써 신진대사 시스템과 같이 서로 관계를 맺고 생존한다는 개념. 1970년대 중후반 오일쇼크로 인해 낙관적 기술론에 기반을 둔 이 사상은 빛을 잃게 됨. 하지만, 현대 일본 건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론으로 평가받음. ) 이와 같이 건축물이 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많이 연구한 분으로서 이 분의 작품을 볼 땐 건축과 사회와의 상관관계를 엿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분이 설계하고 구축된 건축물인 이 히말라야중심은 최근 그 명성을 찾아볼 수 없는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상업공간 운영이 전혀 안되다 보니 여기저기 관리가 되지 않아 회색으로 둘러싸인 건축물은 으스스한 분위기까지 느껴집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초기 건물이 완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여기저기 언론에서 찬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중국 9대 대표건축', '최신 트렌드의 관광건축물', '중국당대 10대 건축'....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개발상의 사장은 비리혐의로 잡혀 들어가게 되고 건물은 주인을 잃고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급속도로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개념을 강조하는 건축이다 보니 애초에 상업공간을 위한 공간설계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철저한 공간 마케팅의 분석에 소홀했다고 보입니다.
’ 작품’을 추구하는 건물들이 흔히 경험하는 문제들이기도 하죠.
건물을 만들 때는 어떤 가치를 넣어야 할까요?
건축가들은 다양한 자신의 건축관을 가지고 설계를 합니다. 설계과정의 모든 하나하나가 선택의 과정입니다. 어떤 이들은 아직 보지 못했던 새 개념을, 어떤 이들은 무조건적인 고객의 요구를, 어떤 이들은 장소와 사회와의 맥락적 관계를, 어떤 이들은 시장과 이용자들의 요구를 면밀히 분석해서 반영하기도 하죠. 이러한 선택은 건축가의 개성 혹은 철학적 접근과 많은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고, 개발의 성격에 따라서 방향이 달라지죠. 누가 어떤 목적으로 개발을 하냐의 차이이기도 하고요.
제 개인적으로는 이런 다양한 시도들을 학습하고 경험하면서 이 또한 어떤 시대적인 ‘대중의 인식’과도 관련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시대적 화두에 영향을 받습니다. 환경문제, 전쟁, 질병, 문화, 정치등 다양한 당시 논쟁적 주제들은 우리가 사회를 인식하고 해석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되죠.
건축역사에서의 변화라고 한다면, 신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장인적 예술세계에서 현대의 개념적 예술 가치, 그리고 이어서 대중의 소비가치의 중심으로 변화하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정리해 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소비재로써의 공간의 성격이 대두되고 '공간 마케팅'이 중시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보입니다.
喜玛拉雅中心히말라야중심, 이 건물은 이름이 왜 히말라야 일까?
'히말라야'는 세계에서 높은 산으로 유명하죠. 이 건물 이름의 유래는 건물의 높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높이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예술, 삶의 감정, 상상의 체험을 전하는 공간 같은 물질의 수준을 넘어 정신적 수준도 올려준다는 개념으로서, 앞으로 히말라야 센터가 중국 예술과 문화, 문명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플랫폼이 되길 바란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애초에 시작부터 참 대단한 개념을 품고 개발이 된 프로젝트네요.
그러하기에 스타 건축가이기도 한 이소자키가 진행했고, 투자금액만 해도 30억 인민폐에 달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남경에도 같은 개발회사의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이름은 南京证大喜马拉雅中心이라 불리는 프로젝트입니다. 중국의 유명 건축가인 马岩松 Ma Yansong의 MAD 설계사무소에서 설계한 작품이죠. 이 건축가는 우리 '동대문플라자 DDP'를 설계한 자하하디드 설계사무실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습니다. 자국에 돌아와선 유선형의 과감한 건축으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이러한 유명 건축물이 현재는 그 빛을 정말 잃고 갈피를 못 잡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초기부터 몇 번 방문했던 터라 이 건물의 변화를 조금이나마 알고는 있었지만. 최근 업무차 방문을 해보면서 현재의 심각성을 많이 느꼈습니다.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으며, 어떤 변화로 이 건물을 살릴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잠시 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최근 경기가 안 좋아서 모든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다고는 말하지만, 어쩌면 중국의 급진적 개발단계에서의 당연한 병폐현상일 수도 있다고 보입니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부동산 건설기획에 참여해 보면서 개발에 참여하는 이들의 관점과 자세, 그리고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고도성장기보다는 오히려 정체기 때 건축은 진정한 발전이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날림으로 건물을 짓고, 건물의 내구성보다는 일단 뻔지르하게 보이는데 집중하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는 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의 드러나지 못하는 고민과 결정들이 빛을 발할 수 없죠. 영양가 없는 비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중국 대도시의 그 높은 호사스러운 빌딩들을 가보더라도 비상계단이나 지하 주차장의 거의 돈을 쓰지 않은 허술한 모습을 맞닥뜨리고 놀라기도 하죠. 일단 지어지고 나면 관리는 뒤로 밀려납니다. 그 결과가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 여기저기서 민낯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결론적으로는 사회, 문화적 환경에 대한 여러 복합요소들이 작용하게 됩니다. 이런 모습들이 그 나라의 현재를 반영하는 거죠.
본격적으로 건물이야기를 해볼까요?
이미지에서 보듯, 저층부에는 알지 못하는 복잡한 문양이 양쪽으로 있으며 가운덴 비정형의 입체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양쪽을 둘러싼 박스형태의 문양은 일종의 '문자'라고 합니다. 실제 존재하는 문자는 아니고 건축가가 직접 디자인한 하늘의 문자 즉 '天文‘을 이야기 합니다. 전통 중국문화와 현대 도시 정신 간의 소통을 이야기한다는 개념입니다. 가운데의 비정형 디자인은 땅으로부터 자라나는 자연을 표현해 생명력과 예술적 매력을 표현하는 의미입니다. 이런 특이한 형태는 자연, 즉 아날로그를 상징하며 박스형태의 이미지는 디지털을 상징하여 자연을 바탕으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는 흐름을 보여주는 건축개념입니다.
주 기능 중의 하나로 미술관을 염두에 두었던 터라 여러 부분에서 중국문화를 예술적으로 표현한다는 개념들이 녹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런데 이런 강한 개념적 공간이 그 역할을 지속적으로 해낼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지금과 같이 의미를 상실하고 쓰임을 찾지 못할 경우엔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게 됩니다.
공간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임대가 어려워지기에 경제적 손실은 쌓여만 가죠. 결국 쓸 돈이 없어지면, 관리가 멈춰지고 건물은 지속적이면서도 빠르게 수명을 잃게 됩니다.
그나마 바로 앞에 전시장이 있어, 호텔은 운영이 되고 있었습니다.
저층의 쇼핑몰 공간은 을씨년스럽게 비어있고, 외부엔 관리가 전혀 안 돼서 마감재는 탈피되고 잡초가 자라고 있습니다. 2010년에 완공되었으니 벌써 10년이 훌쩍 넘어버린 건물. 새로운 전략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겠죠. 그냥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으니깐요.
공간은 이용될 때만이 생명력을 갖습니다.
이용객들이 꾸준히 움직여야 하고 머물렀을 때만이 가치를 가집니다. 건물의 크기와 용도는 주변 상권과 경제발전과도 맥을 같이 하기에 무작정 지어놓고 볼 일은 아닌데, 지금껏 중국은 많은 개발상들이 그리해 왔습니다. 그래야 정부의 지원이나 은행으로부터의 자금조달에 유리하니깐요.
이렇게나 많은 갈길을 잃은 건축물들을 바라보면서, 공간 기획의 중요성과 사회 경제적 분석의 중요성을 다시금 새기게 됩니다. 즉 공간마케팅적 접근만이 현대의 많은 건축물들에게 생명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어느덧 위대한 건축가의 시대가 저물고 대중이, 소비자가 공간의 주도권을 갖는 시대가 온 것이죠.
개인적으로 이곳에 무언가를 하려는 기업과 소통하고 있는 중입니다.
앞으로 이 건물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될 듯싶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