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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쏟기 Oct 05. 2024

상하이 후데크건축기행

Hudec 헝가리 건축가의 자취 찾아가기

여행은 뇌를 자극합니다.
집 밖을 나서면 그게 여행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여행을 권하는 모양입니다. 

SNS에 올라오는 주변인들의 화려하고 멋진 경관 사진들을 보자면 비행기나 배를 타고 많은 돈을 들고 떠나야 '멋진 여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우리 주변의 모든 공간들이 좋은 여행지가 될 수 있죠.


이전에 상하이를 만든 외국건축가를 소개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아래참고)


Hudec라는 슬로바키아출신의 헝가리 건축가죠. (拉斯洛·邬达克(Laszlo Hudec,1893~1958))

이 분은 1920~40년대까지 상하이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건축물을 완성시킨 건축가입니다. 

한 외국인이 타국에서 이렇게나 많은 영향을 미친 경우는 드물겠죠. 100여 개가 넘는 건축물들을 완성시켰고 지금도 28개 정도의 건물이 보호건축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본인의 대부분의 건축작품을 상하이에 남겼고, 당시의 건축디자인도 매우 뛰어나면서 도전적인 건축물들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릅니다. 


건축을 둘러보면서 이분의 일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중국의 국경절 연휴를 맞아 HERO역사연구회에서 주최한 'Hudec 건축기행'이었습니다. 오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꼭 참여해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시간이 났네요.


상하이에는 'HERO역사연구회'라는 한국인 모임이 있습니다. 

이 모임은 중국에 있는 한국 청소년들에게 한국역사를 가르치고, 역사기행 및 탐방프로그램을 통해서 한국학생들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도움을 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모임이죠. 히어로(HERO)는 사전적으로 영웅이라는 뜻이지만, 역사공부를 통한 내 마음속의 진정한 영웅을 찾는 모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히어로(HERO)는 HISTORY(역사), EXPLORATION(탐험), RESEARCH(연구), ORGANIZATION(조직)의 약자라네요. 


여러모로 좋은 활동을 하고 있는 모임인데, 중국에 오래 살았어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주로 독립운동에 대한 강의들을 많이 하시는 거 같던데, Hudec건축기행을 한다고 해서 처음엔 좀 의아했었죠. 

당시의 유명 건축들은 당시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었고, 시대적인 사건들과 연관을 맺다 보니 연구회 연구원 중 한 분이 자연스럽게 Hudec 건축에 관심이 생겼었나 봅니다. 어쨌든 그렇게 몇 년 동안 건축기행을 하고 있었고 저도 이번 기회에 참여를 했습니다.


제 나름대로도 Hudec에 대한 관심으로 자료와 관련 내용들을 찾아보거나 정리하고 있었는데요, 이번 건축기행을 통해서도 생소했던 내용들을 좀 더 알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도 매우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중국에 혹은 상하이에 오래 살았다고 해서 모든 곳을 다 알 수는 없죠. 자신의 행동반경이나 관심, 혹은 부지런함에 따라서 경험의 빈도와 영역은 달라지니깐요. 많은 분들이 지나다니면서 상하이의 옛 건물들을 보긴 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역사적 사건이나 의미들을 제대로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맞는 거죠.


이런면으로 봤을 땐 홀로 공부를 해서 여행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가이드를 만나서 '멋진 설명'을 들을 수 있다면 그 또한 비용과 에너지를 절약하는 좋은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껴봤습니다. 세상경험이 많아질수록 돈의 쓰임에 대한 생각을 하곤 합니다. 무조건 아끼는 것이 아닌 적절한 쓰임을 아는 것이 현명하단 생각이 듭니다. 




오전 10시에 'Columbia Circle'이라는 곳의 문 앞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이곳은 여러 입구가 있는데 저희는 番禹路에 위치한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죠. 

이 장소는 중국어로는 '上生·新所'이라 하고 지도에도 이렇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1924년 미국의 푸이부동산에서 컬럼비아 컨트리클럽을 건설하여 주민들의 여가 및 오락 장소로 개발한 곳이었죠. 이와 함께 빌라와 타운 하우스가 근처에 건설되었고, 이곳에 Hudec 본인이 살기 위해서 지은 '孙科别墅 쑨커주택'이 있습니다. 

건물 이름이 쑨커주택이 된 이유는, 건물을 짓는 과정 속에서 재정적으로 문제가 생겼는데 당시 손문의 맏아들인 쑨커가 건물을 인도했기 때문이라죠. 결국 Hudec 본인은 이곳에서 살지 못한 모양입니다. 




자신이 거주하기 위해 설계는 했기에, 그 정밀도와 곳곳의 디자인이 매우 훌륭합니다. 

'上生·新所 상생신소'이곳은 Hudec의 주택이 있는 것 외에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본의 츠타야서점(茑屋书店)이 중국에서 두 번째로 입점된 곳입니다. 전체 단지 개발을 완커라는 유명 부동산 개발업체가 진행했고, OMA라는 유명 네덜란드 건축사무소가 단지 전체의 리노베이션 설계를 진행했기에 그 명성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죠. 

2024년 현재에는 츠타야서점 바로 앞에 코오롱 매장도 들어와 있습니다. 코오롱 기업이 중국사업에 얼마나 적극적인가는 이런 모습으로도 대략 유추할 있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Hudec건축이 주제이기에 겉도는 이야기는 자제하려고 합니다만,  '上生·新所 상생신소' 이곳은 꼭 한번 시간 나실 때 둘러보시기를 권합니다.  중공이 성립 후 2016년까지는 상하이 생물제품연구소가 사용해 왔기에 나름 잘 보존되어 있었고 이를 최근에 완커에서 개발해서 대중에게 공개된 곳이죠. 여러 핫 플레이스들이 있기에 사진 한번 찍고 가시기에 좋은 곳이라 추천드립니다. 

츠타야서점 앞에서 설명중인 가이드
상생신소안의 이전 해군클럽 수영장


쑨커주택은 상생신소라는 곳에 같이 있는 건물이지만, 실제 이곳 내부를 관람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저도 여러 번 이곳을 방문했지만 매번 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죠. 가이드하시는 분께 물어보니 역시나 이번에도 외부만 관람한다는 답변이 오더군요. 상생신소를 한참 둘러보다 쑨커주택 쪽으로 가서 입구 쪽에서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이어폰을 제공해 줘서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는 가이드의 말을 들을 수 있었기에 멀찌감치 있다가 홀로 입구 쪽으로 가봤습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보이고 안내하시는 여성분이 계시더군요. 옆에 표지판이 있어 읽어보니 입장이 가능한가 봅니다. 그래서 자세히 물어보니 국경절 며칠 동안 개방을 하고 큐알코드를 등록하면 입장할 수 있다는 답변이 있더군요. 그래서 표지판 큐알코드 등록 이미지를 사진 찍어 건축기행 단체방에 올리고 가이드에게 알려드렸습니다. 

쑨커주택 정원측 입면
쑨커주택 1층 내부모습


다들 어찌나 반가워하던지... 

실은 제가 더 반가웠죠. 여기를 드디어 들어갈 수 있다니.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쑨커주택의 아름다운 내부와 앞 정원을 둘러보고 다시 두 번째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우리가 들어왔던 입구의 맞은편에 건물에 가려진 Hudec가 살던 집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후에 Hudec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요. 실은 이곳도 제가 여러 번 왔지만 매번 잠긴 문만 확인할 뿐 들어가질 못했습니다. 오전에 모임장소로 이동하면서 이곳을 지나왔는데 어떤 중국인 몇 분들도 이곳에 들어가려다 못 들어가고 발길을 돌리는 모습을 봤었거든요. 

건물에 가려져 있는 Hudec박물관 (바이두지도에서 캡쳐)

우리 일행들도 이곳에 왔지만 그냥 밖에서 설명만 들을 상황이었습니다. 

전 혹시나 싶어 이번에도 입구 가까이에 가서 보니 문이 살짝 열려있고 건너 관리인으로 보이는 분이 보이더군요. 냅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한국인들이 Hudec를 공부하기 위해서 어렵게 왔는데, 혹시 문을 열어줄 수 있느냐 물어봤더니 안된다고 하네요. 박물관이 낡아서 폐쇄되었고 들어갈 수 없다는 반복된 말만 하기에 전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사정을 했습니다. 팔도 잡아보면서 건물 안에는 못 보더라도 바깥쪽만 어떻게 한 번 둘러볼 수 없냐면서 이걸 보려고 한국에서 저렇게 많은 사람이 왔으니 좀 사정을 봐달라고 부탁을 했죠.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만 그럼 잠깐만 와서 둘러보라고 허가를 해줬습니다. 


그렇게 일행을 이곳에 둘러보게 해 드렸는데, 가이드분이 저를 '귀인'이라고 하면서 무척 반겨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저도 매번 발길을 돌리던 곳을 볼 수 있어 기뻤고, 중국생활 좀 했다고 다른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뿌듯하기도 하고 뭐 그런 감정이 들더군요. 어쨌든 Hudec박물관으로 쓰였던 주택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앞의 쑨거주택이 약간의 스페인 스타일이었다면 이 건물은 영국식의 느낌이 강하게 났습니다. 이 분이 설계한 디자인들은 스타일을 넘나드는 다양한 디자인들이 있어서 당시에도 디자인 연구를 많이 한 분이라는 게 느껴지더군요. 

Hudec 박물관의 모습


두 번째 건물을 둘러보고 이번엔 조금 이동을 해서 역시 Hudec가 설계하고 직접 거주했었던 ‘达华公寓’라는 아파트 건물을 보러 갔습니다. 고가도로에 접해있는 건물로 지금은 호텔로 사용하고 있더군요. 1937년 준공된 건물로 Hudec의 네 번째 아파트 건물이라고 합니다. 이 건물의 특징은 당시 유행하던 장식을 최대한 버리고 간결한 디자인을 선택했다는 거죠.  건물은 10층높이에 90개의 객실이 있는데, Hudec가 상하이에 살면서 마지막으로 거주했던 건물이라고 하네요. 

达华公寓 (현재는 호텔로 쓰이고 있음)


이 건물을 짧게 둘러보고 다시 이동을 했습니다. 

이동 중에 가이드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Hudec가 우리와 연관이 굳이 있다고 한다면 목인당(沐恩堂Mu'en Hall)을 이야기할 수 있는데요. 개신교 건물로 1931년 완공됐습니다. 이곳에서 과거 독립운동가들이 국민대표회의를 진행했던 장소이기에 우리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상하이의 가장 유명한 곳의 하나인 난징루 초입에 있는데 나무에 가려져서 많은 분들이 그냥 스쳐 지나가기만 했을 겁니다.  

  

상해 목은당 건물위치 (시장중루 西藏中路 316)


이렇게 다양한 건물을 설계했던 Hudec 이야기 속에는 격동의 상하이를 겪으면서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 자신이 전쟁을 피해서 살기 위해 낯선 상하이에 온 것에서부터 나치를 피해 중국으로 흘러들어온 유대인들을 도운 일이라던가 국민당으로부터의 가택연금, 그리고 중공의 성립으로 상하이를 떠나기까지 한 인물의 일생이 바로 중국의 근대사이기도 한 거죠. 더불어 당시 유명한 건축가였기에 중국 근대사의 주요 인물들의 건물을 설계해 주면서 맺은 인연과 스토리가 바로 중국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동을 해서 건축기행의 마지막 정착지인 '武康大楼 Wukang Mansion 우캉따로'에 도착했습니다.

이 건물은 요새 워낙 유명 해져서 사람들이 미어터지더군요. 

중국의 젊은이들에겐 상해의 핫플레이스가 되어버려서 반드시 들리는 곳으로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이곳은 이 건물만을 보는 건 아니죠. 주변에 조성되어 있는 옛 프랑스조계지의 모습과 곳곳에 숨겨있는 지역색을 띤 맛집과 상점들이 관광객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곳을 검색하기 위해서는 ‘武康路‘라는 검색어를 쓰시면 됩니다. 

국경절이라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우캉따로를 찍는 모습들

우캉따로(참고로 '大楼 따로'라는 표현은 큰 건물을 의미합니다)는 1924년 지어진 상하이 최초의 복도식 아파트 건물입니다. Hudec가 설계했고 프랑스회사 Huafa Company가 건축주였습니다. 당시 프랑스 조계지의 건물들은 프랑스 지역명을 많이 땄는데, 이 건물도 노르망디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었죠. 초기엔 프랑스 상류층들이 거주하다가 일본이 들어서면서 많은 외국인들이 강제수용소나 추방을 당했고, 일본이 물러가고 그런 사이에 다시 많은 중국상류층들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영화관련한 인물들이 많이 거주했다고 하네요. 한국인으로 상하이에서 활동한 영화배우 영화황제 '김염(金焰, 본명 김덕린(金德麟))'의 중국인 아내이며 여배우인 '泰怡친이‘가 이 아파트에서 살았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짧은 건축기행이 끝났습니다.

약 2시간여의 시간을 보냈는데, 건축기행이란 측면에서는 많은 아쉬움이 있는 시간이었네요. 하지만, 평소엔 정말 들어가기 힘든 쑨커주택이나, 후테크박물관 건물을 볼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었네요. 개인적으론 이번 기행을 통해서 좀 더 Hudec에 대해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료조사와 정리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번 Hudec 건축기행 노선


상하이라는 도시는 알면 알수록 매력이 있는 도시입니다.

특히나 정치색을 싹 빼고, 老上海라고 불리는 1920~40년대쯤의 시대상과 변화를 보면 무척 흥미롭죠. 서양과 동양이 혼합되고 다양한 근대문명의 모습들이 형성되는 시기였기 때문이죠. 청나라가 망하고 국민당 그리고 공산당이 들어서는 역사 속에서의 이야기들도 흥미롭습니다. 나라와 민족이 다르고 또 과거라는 지나간 시간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겠지만, 지금 현재의 우리와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종종 느끼게 됩니다. 


옛 건축물을 통해서 엿보는 과거의 이야기들은 알게 모르게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것이 매우 재미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자면, 마지막 건물인 우깡따샤의 경우 중공이 설립되기 전의 바로 전의 소유주가 ‘孔二小姐 공씨 두 번째 공주님’인 '孔令伟‘라는 여성분인데 이분이 중국의 유명한 송씨 세 자매의 맏이인 '宋霭龄쏭칭링'의 딸이라네요. 평소 남장을 하고 다닌 걸로 유명했습니다. 이 분이 이 건물을 매입한 후 중국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럴 때 부동산 소유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지기도 하는데요. 어쨌든 지금은 지역정부 소유로 되어 있습니다. 


역사기행을 하다가 독립운동과 연관이 있는 Hudec 건물을 알게 되었고, 이에 관심을 갖고 공부해서 이렇게 건축기행 가이드를 하게 됐다는 가이드의 말이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같이 공유하고자 개인적인 교류를 더 하자는 말을 전하면서 기행을 마쳤습니다. 

마지막에 별거 아니지만 제가 도움을 주어서 참관을 더 잘하게 되었다고 같이 참여하신 분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뭔가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보람 있는 하루였단 생각입니다. 


여행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의 일상의 공간을 조금은 낯설게 다가서다보면 새로운 여행의 맛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 속에 많은 이야기들이 있으니깐요. 


이번 기행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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