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벌써 20년이 되었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만한 명장면을 많이 연출했고, 액션 영화에 철학을 기똥차게 입힌 그 영화 "매트릭스"말이다. 360도 회전 씬과 총알 피하는 씬이 유명한 영화지만 액션에 걸맞은 명대사도 많이 나왔던 영화다. 영화 패러디가 난무하고 제2의, 제3의 매트릭스라는 자극적인 문구로 광고하는 영화들이 개봉됐다. 그만큼 영향력 있고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킨 영화였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있다. SF적인 상상 말이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여기는 이 사회가 허구이고 진실의 세상은 따로 있다는 그런 상상.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진실된 모습은 이런 모습이 아닐 거라는 그런 상상 말이다. 그런 상상을 화려한 액션과 철학적인 문구로 버무린 영화가 매트릭스였다. 영화의 제목 자체를 깊이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아 이래서 제목이 매트릭스였구나' 했던 기억이 난다.
나름의 명장면과 명대사가 있겠지만 난 가끔 이 영화를 다시 볼 때마다 이 영화의 주제를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이 건전지 장면이 아닐까 한다. 사람이 건전지라면?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거대한 매트릭스 세계관을 완성한 건 아닐까 하는 그 시작점 말이다. 인류가 필요해 만든 기계는 움직이기 위해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를 보관해야 했고 그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정한 규격의 그릇이 필요했다. 이 그릇이 바로 건전지다. 전기를 담아두고 그 전기로 움직이는 기계, 이제 그 기계가 에너지를 얻기 위해 인류를 건전지처럼 사용한다. 영화의 설정상 태양 에너지가 필요한 기계를 없애기 위해 인류가 하늘을 가렸다. 기계는 망하지 않고 대안을 찾은 것이 바로 인간이다. 결국 우리의 과오로 환경이 파괴됐고 그 영향으로 인류가 멸망의 길을 걷게 됐다는 인과관계의 모든 부분에 우리의 잘못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 같다. 영화적 상상에 기반한 것이지만 21세기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건 아닐까?
주제를 이끌어 나가는 키워드로 영화는 "통제"와 "선택"을 보여준다. 개인적인 느낌이었지만 배우들의 대사에서 유독 힘 있게 들리고 또렷이 들리던 단어가 "통제"와 "선택"이었다. 인간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 기계는 살아있는 인간을 멸하려 한다. 인간을 에너지원으로 삼은 순간 기계는 "통제"를 시작했다.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게 아닌 상태로 말이다.
컴퓨터를 하다 보면 '알 수 없는 오류가 뜰 때'가 있다. 영화에서는 이 알 수 없는 오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바로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는 기계에서도 통제를 벗어난 존재가 있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통제를 완벽하게 벗어난 주인공도 등장한다. '단지 인간일 뿐'인 주인공은 매트릭스의 통제를 완벽하게 벗어날 뿐만 아니라 현실세계에서도 그 능력이 발현된다. 말 그대로 선택받은 인간이다.
주인공은 완벽해 보이지만 인간이기에 '선택'을 해야 한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인간이더라도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는 없다. 선택을 위해 고뇌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려한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모두가 동일하다. 자신이 믿고 있는 가치를 위해 선택하는 모습에서 인간이 기계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완벽한 방정식에 의해 최선의 값을 찾아가는 기계와 달리 인간은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 던질 수도 있고,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용기 있는 행동을 한다. 그것을 '선택'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 같다.
'통제'와'선택'이라는 단어로 인간과 기계의 차이를 보여주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계와 인간의 본질을 찾을 수 있게 유도하는 것 같았다. 단순한 SF가 아닌 심오하고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가 바로 매트릭스다.
지금 봐도 어색하지 않은 화려한 액션과 영화에서 던지는 철학적 화두를 같이 고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