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우리 올해 결혼 25주년인데
바이크 타고 제주도 갈까?"
결혼기념일 두어 달 전쯤 뜬금없는 남편의 제안
"바, 바이크를 타고 제주도를 간다고?
......
어...
생각 좀 해볼게"
라고 말했지만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텐덤 바이크(2인용 오토바이)로 가끔 즐기는 드라이브 정도면 모를까
제주도까지 간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결혼 25주년...바이크....제주도...
며칠 동안 이 세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면서
추억도 함께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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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스물한 살에 만났지
둘 다 재수를 하고 천안의 한 대학 국문학과 동기로.
잘 돼야 본전이라는 이른바 캠퍼스 커플 C.C.
그럼 우리 본전은 한 건가
ㅋㅋㅋ
제대로 사귀기 전에
내가 다른 과 남학생들과 미팅이라도 하려면
당신은 천안역에 있는 미팅 장소를 다 돌아다니며 나를 찾았고
그래도 나를 못 찾으면 우리 집이 있는 수원역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잖아
(스토커 아님 주의^^;;)
심드렁한 미팅이 끝나고
늦은 밤 천안에서 기차를 타고 수원역에 내려서
개표구를 빠져나오면
어린 당신이 (지금 생각하면 참 아기였다)
나를 보고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어
그러면 난 또 괜히 좋아서 웃음이 나더라
(좋으면 계속 튕기지나 말지, 그치?)
서울 사는 당신이
우리 집 앞 놀이터에서 나랑 밤새 얘기하다가
막차를 놓치고
근처 아파트 지하에서 잤던 것도 기억나지?
그런 일 없었다고 딱 잡아떼도 소용없습니다!
지금은 당신이 사람들한테
내가 당신을 따라다녔다고 이야기해도 나는 그냥 웃잖아
30년 전에 누가 누구를 따라다닌 게 뭐가 중요해
지금 여전히 당신의 사랑이 충만한데
*스물일곱 살
나는 사회인이었고
당신은 대학교 3학년 학부 복학생으로
중간고사 기간에 우리 결혼했잖아
담당 교수님께 청첩장을 드리며
결혼식 때문에 중간고사를 못 보게 되었다고
선처?를 바랬지
우리 워낙 유명한 커플이라 교수님께서도 크게 놀라지 않으셨고
감사하게 주례까지 서주셨어
중간고사 기간이었는데도 선배, 후배, 동기
수십 명의 대학생들이 결혼식에 와주어서
진풍경을 이룬 재미있는 결혼식.
아직도 기억나네
*연애 7년 만에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부모가 되고
올봄 결혼 25주년
외국에서는 은혼식이라고 25주년을 꽤 기념하는 모양이야
50주년은 금혼식
부부로 50년을 함께 산다는 건 어려운 일 같아
가깝게는 나의 엄마랑 아빠도 50년을 같이 못 사셨지
평균 수명이 늘어나서 함께 한다고 해도
50주년이면 우리 77세야
그래, 결혼 50주년에는
바이크를 못 탈지도 모르니까
지금 가자! 배에 바이크를 싣고 제주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