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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진 May 03. 2022

피지의 언어 이야기


애들 발음 다 버려
애들 데리고 가는데, 가려면 좀 좋은 데 가야지


피지 공립학교의 첫날, 윤아

방학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피지에 간다고 하면 간혹 듣는 말이다. 나라고 그런 걱정이 없었을까. 그런 말을 듣는 날이면 하루 종일 불편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따뜻하고 여유로운 이 섬나라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었기에 그 어떤 말도 나의 의지를 굽히기에 부족했다.


두 아이는 영어 노출이 많았던 편도 아니었고 원어민의 공립학교에서 한마디도 못하고 못 알아듣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후 큰아이 윤아가 현지 학교 수업을 따라감에 문제가 없는 수준이 되고 난 후부터는 더욱 그런 말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아이들을 데리고 방학마다 피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갈수록 강해졌고 계획을 하다 보니 아이들이 현지 아이들과 어울려 이야기하고 노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넘사벽 같은 욕심으로 다가왔다. 그야말로 실전에서 현지인들처럼 영어를 할 수 있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었다.


오세아니아에 위치한 1년 내내 여름인 노을 맛집 피지는 1874년부터 약 백 년 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로 엄밀히 말하자면 영국식 영어를 사용한다. 공식적으로 영어를 사용하기에 학교에서도 피지어나 인디어 사용은 금지되어 있다. TV를 틀면 나오는 뉴스도, 행정적인 업무도, 길거리에 간판도 모두 영어다.  에어비앤비 하우스를 청소해 주던 하우스 걸도 영어를 쓴다. 그들만의 고유의 언어인 피지 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지언들이 영어를 쓰는 모습은 그들의 역사적인 배경이 있었으리라 짐작이 되었다. 하우스 걸은 보통 프라이머리 스쿨에 들어가면서 영어를 배우지만 부모님들이 바깥일을 할 때 영어를 사용하기에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하면 자란다고 했다. 영어를 모르면 버스조차 탈 수 없고 커서는 휴양지인 만큼 관광객을 상대해야 하므로 생계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한다.


공립학교를 찐하게 경험한 후 사립학교로 옮기게 되었다. 학교에서 만난 아이 학교 친구 부모님들과의 언어 이야기를 너무나 자연스러운 시작점이었다. 놀랍게도 아이 친구 부모님들은 대부분 UN, WHO, JICA 등 국제기구에 다니는 분들이셨다. 가장 친하게 지낸 일본인 엄마는 피지 주변의 섬나라들의 기후 변화에 관련된 일을 하는데 아랍어와 영어를 전공하며 UN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출장 간 나라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매우 흥미로웠다. 그중 마셀 제도(Marshll Island)라는 섬나라는 영토 자체가 일자로 길쭉해서 택시를 타고 굽는 길이 없었으며 호텔 방 창문에서는 바다와 맞닿은 땅의 끝이 보인다고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현지인 친구이자 나의 영어 과외 선생님이었던 조(Joe)는 정화 시설이 없어 한쪽 해변에서는 용변을 보고 한쪽에서는 수영을 즐기는 키리바시(Kiribati)라는 나라의 언어를 할 줄 안다. UN에서 정화 시설을 설치하려고 하는데 부족 생활을 하는 그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해야 하므로 언어적 소통이 가능한 사람을 원했고 조는 당당히 합격을 했다. 조는 주변의 300개가 넘는 작은 섬나라들은 각각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고 했다. 피지언 들은 환경적으로 다양한 언어를 자연스럽게 듣고 자라기에 어떤 언어를 들어도 낯설지가 않고 한국어 또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6개월이면 어느 정도 말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한국어만 듣고 자란 우리와 달리 환경에 의해 가진 그들의 말랑말랑한 귀와 언어에 대한 자신감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그것이 어떤 언어라 할지라도 말이다. 

조와 함께 보낸 즐거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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