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교 후 윤아가 핑크색 카드를 들고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한다.
"그게 뭐야?"
"친구 생일 초대받았어."
"우와"
학교에서는 피시 앤 칩스 데이, 밸런타인데이, 마더스 데이 등 작은 파티가 자주 있는 편이었다. 가족 모두가 직접 준비한 음식을 가지고 학교에서 나누어 먹는 작은 파티이다. 처음 피지에 갔을 때 이런 행사가 종종 있다는 것을 알고 차려입을 만한 예쁜 원피스 한 벌은 꼭 준비해서 챙겼다.
처음 아이가 받아 온 생일 초대 카드는 아이보다 내가 더 신기하고 설레어서 보고 또 보았다. 해외여행을 가서 가장 궁금했던 건 현지인들의 집 안은 어떨까, 뭘 먹고살까 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도 친구네 집 안에 들어가 볼 수 있다니 늘 고대하던 순간이 한 발짝 다가온 듯했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라는 어느 광고 문구처럼 현지인들 사이에서 현지인처럼 살아가는 것 같은 순간을 맞이하는 것은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최고의 짜릿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혹여라도 초대를 못 받은 친구가 슬퍼할 수 있으니 학교에 가서 절대로 초대 카드를 받았다고 말하지 말라고 당부한 게 무색하다. A와 B 두 반으로 나누어져 있어도 한 학년 아이가 16명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이다 보니 생일 파티는 반 전체 아이들이 초대받았다. 주말에 있는 개인적인 생일파티에 담임 선생님께서는 참석 가능 여부를 생일자 부모님께 문자로 보내달라는 안내를 며칠 전부터 하셨다. 이곳 또한 사생활을 중요기 여기는데 이런 친절한 안내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택시를 타고 10분 정도 일찍 제이다의 생일파티에 도착했다. 손님은 우리 밖에 없고 테이블 세팅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식탁 위에는 아직 채 요리되지 않은 식재료들이 어지럽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이 오신다고 하면 며칠 전부터 구석구석 청소를 하고 마치 식당처럼 테이블 위 음식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던 나의 생각과 너무 달랐다. 이리저리 구경하느라 정신없을 때쯤 아이 친구와 엄마가 들어오며 반갑게 볼 키스로 인사를 한다. 인사를 마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주방 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아! 저거구나!
함께 먹을 것을 준비하는 지금부터가 파티의 시작이구나!'
나도 얼른 주방으로 가서 제이다의 아빠가 하는 것을 커닝하며 기다란 소시지 빵에 버터를 바르기 시작했다. 아이만 집에 데려다주고 3시간 후에 데리러 오겠다고 인사만 나누고 가는 부모님도 있고 나처럼 생일파티에 함께 하는 부모님도 계셨다. 하나둘씩 모인 아이들은 여기저기에 섞여 놀다가 생일자인 제이다의 이모와 삼촌이 레크리에이션 사회자가 되어 준비한 여러 가지 놀이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댄스타임, 우리의 수건 돌리기와 비슷한데 수건이 아니라 신문지로 5~6겹을 싼 선물을 아이들이 돌아가며 한 겹씩 풀다가 마지막에 걸리는 사람이 가지는 게임, 퀴즈 맞추기, 우리의 그대로 멈춰라 같은 게임 등이었다. 전문 사회자 못지않은 재치 넘치는 진행으로 아이들은 극도로 흥분상태였고 지켜보는 나와 다른 친구들 부모님 역시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방방장에 친한 몇몇 친구들을 초대하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만 놀고, 엄마들은 파티룸 안에서 엄마들끼리만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 사이 갖가지 음식이 준비가 되고 그제야 먹음직스러운 케이크가 준비된 테이블로 모두 모여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이후에도 피지에 갈 때마다 반 친구들의 생일 파티가 이어졌다. 블랜 앤 옐로 배트맨 콘셉트의 아이얀, 축구 콘셉트의 캐메런, 처음으로 윤아만 데려다주고 3시간 후에 온다고 보냈던 시리 등의 생일파티가 이어졌다. 이렇게 즐거운 생일파티에 참여하다 보니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우리 아이들도 친구들을 초대해서 생일파티를 하고 싶다는 원성이 자자해졌다. 사실 그런 말이 언제쯤 나오려나 조마조마했었다. 내 보기에도 반 친구들 모두 초대해서 이런 멋진 생일파티를 하는 아이들이 부러운데 아이들이라고 오죽했으랴. 하지만 그러기에 우리의 숙소인 학교 에어비앤비 하우스는 좁아도 너무 좁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도 학교 아이들도 모두 다 아는 사실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학교 티타임에 케이크를 나누어 먹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것으로 아이들을 달래어 마무리를 했다. 코로나로 인하여 이제는 다시없을 시간일 줄 알았다면 반 친구들과 한 번쯤은 어떻게 해서든 파티를 해줬으면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