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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자 Jan 25. 2023

굿바이, 삼양아파트 그리고 기숙사 2

우리 가족이 말하는 삼양아파트, 삼양라면, 삼양…

설날에 모인 가족들에게 불쑥 삼양아파트, 삼양 공장에 대해 기억나는 게 있는지 물었다. 처음엔 기억이 안 난다고 하다가 나중엔 꽤 많은 이야기를 내놓았다. 여태까지 꺼내 볼 기회가 없었을 뿐이었다.


엄마

나는 라면 튀겨서 먹은 거 기억나.
2층 00 엄마(삼양식품에 다니는 남편을 둔)가 삼양라면 튀겨 왔어. 여기 요 자리(주방 테이블이 있는)에서

이렇게 같이 먹고.


근데 00네는 왜 여기서 산 거지?


엄마

아파트가 안 돼서.


동생

거기가 몇 세대 안 돼.


엄마

그러니까 높은 사람들만 갔었어, 간부급들. 00네는 2층에서 3년 넘게 살다가 갔지.


엄마 

삼양라면 살리기. 라면 살리기 운동한 거는 상관없지?     


그걸 언제 했어?
 

엄마

내가 회사 다닐 때.     


그 얘기 해 봐, 그거 재밌다.
 
아빠
과자도 강매했어. 우리 한번은 삼양 거 강제로 산 적 있어.
 

엄마
그래서 옥상에 사또밥 한 박스랑 짱구랑 많이 사다 놨잖아, 팔아주느라고.
뭘 사야 되는데 라면은 맛이 없지, 그러니까 주로 과자를 샀지, 80년도에.


아빠 

그래가지고 그때 내 기억으로는 (삼양 제품 구매하는 걸) 직급별로 했는데,

내가 한 3만 원에서 5만 원어치(사야 됐어). 강제로다가.
 
엄마
그거 봉급에서 다 까고, 팔아주기 운동했어.


?? 그걸 왜 했어?
 

아빠
그때 우족인가 때문에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어.
 
엄마

삼양이 거의 망할 뻔했다가 일어난 거야.
 

아빠
‘이수회(원주시 기관, 단체장 모임)’라고 있는데, 거기서도 엄청 많이 도와주고.

하여간 우린 출장 갈 때도 라면 줬어, 라면.
그때 우족... 뭐야, 그게. 기름.      


동생

우지 파동.     


아빠

응. 그때 꼴까닥 하는 거야, 삼양라면이. 그래서 원주 시민들이 엄청 팔아줬어.

그래가지고 살아난 거야, 그게.

 

"하루 주가 변동 천 9백 원까지. 우지 파동 (주)삼양식품 화제 만발"
조선일보, 1989.11.17 기사
"전국에「라면 쇼크」. '공업용 우지' 사용 온 국민 개탄 식품 살인"
조선일보, 1989.11.05 기사
"라면업계 선두…'우지 파동'으로 곤욕 화의 신청 삼양식품 어떤 회사인가"

89년 우지 파동을 겪으면서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등 매출이 격감해 40%에 달했던
시장 점유율이 10% 이하로 떨어지는 등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지난해 8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매출은 다소 증가했지만 잃었던 시장 점유율과
매출을 만회하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다.
매일경제, 1998.01.31 기사


엄마
그런 건 사람들이 협조를 참 잘 했어.     


언니

지금 그렇게 하면 난리 나지. 안 그래도 떼는 것도 많은데.     


엄마

사람들이 순수했어, 진짜.

그 이후로 이제 잘 사니까 주민들한테 많이... 불우 이웃 돕기 많이 했지. 지금도 많이 하고 있어.     


아빠 
그리고 또 수해 나고 그러면 삼양에서 차를 큰~차, 대형차로 한 대씩 끌고 시청 오고 그랬어.

라면이랑 과자 수재민들 주려고.
 

언니 

이상하게 삼양아파트는 한 군데만 발코니가 있었어.
 

엄마

그거 제일 부러워했잖아.

거기 진짜 좋아했는데. 쳐다보면서 '저기서 고기 구워 먹으면 좋겠다~~' 이러고.
 


발코니가 1층에만 있었나?
 

언니

한 세대.
 

엄마

어. 딱 길가, 거기.
왜 이렇게, 동그랗게 원형처럼 해가지고...

 


언니는 왜 삼양공장 견학을 안 갔다고 그러지?     


언니

나 견학 안 갔는데? 우린 안 갔어.

아, 나 예전에 '복지마트(삼양에서 운영한 협동조합마켓이라고 동생은 기억한다)'에서

'러닝타임(문구 브랜드 ‘꼬마또래’의 캐릭터)' 핀 샀었다.      


 

거기 그런 거 팔았어? 00(동생)은 오레오 팔았다고 그랬는데?
 

동생
거기가 마트야.   


엄마

엄청 큰 마트였어.     


언니

계산대 앞에 핀 파는 데가 있었어. 난 거기서 '러닝타임' 핀 산 것만 기억나. 두 개 한 세트. 
 

엄마

우리 거기 많이 갔잖아, 주말 되면.     


동생
거기가 쌌어.
 

엄마
거기 진짜 좋았어. 싸고, 물건도 좋고. 근데 쪼끔 하다가 말았지.
 

언니

들어갈 때 신분증 확인을 안 했나?     


엄마

안 했어.     


동생 
거기가 그거야. 우산공단 협동조합 복지마트야.     


언니

어, 맞아 맞아, 그런 거였다.
 

엄마
그래서 우산동 주민은 그냥, 무조건, 그런 거 없이 갔어.     


동생

낭만이 있던 시절이지.







여기까지가 7분 57초 동안 녹음된 기록이다.

설날이라 모처럼 식구들이 다 모여 가능한 대화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가 '삼양'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들겠지. 오늘의 기록을 잘 간직해서 언젠가 또 가족들 앞에 꺼내 놓아야

겠다.

내 머릿속엔 없었던 복지마트의 핀, 삼양라면 살리기 운동, 삼양아파트의 동그란 발코니 같은, 나중에 가선 그들 머릿속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이야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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