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왔음을 실감하게 되는 몇 가지가 있다. 캐럴, 크리스마스, 그리고 요즘은 구경하기 힘들어진 구세군 자선냄비 등등. 어릴 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밀집지역이면 어김없이 구세군의 종소리가 딸랑딸랑 들리고, 사람들이 호주머니에서 꺼낸 꼬깃꼬깃 지폐부터 흰색 봉투까지 다양하게 자선냄비에 기부를 하곤 했다.
꼬맹이였던 나는 그 광경이 신기했는지, 아니면 선뜻 다가가 동전을 넣기는 부끄러웠는지, 그 근처에서 서성이며 그 광경들을 지켜보고 있었고 그러면 이내 곧 아버지 어머니 손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어느 날 아버지와 단둘이 목욕을 갔다가 신발가게에 들러 신발을 구경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어린이용 겨울 부츠가 유행을 했을 때였다. 메칸더 브이와 독수리 오 형제가 그려진 부츠가 굉장히 인기가 있었고, 다른 어린이용 부츠보다 조금 더 값이 나갔었다. 신발을 사지는 못하고 눈치만 보다가 가게를 나서는데, 마침 가게 앞에는 구세군 아저씨가 자선냄비에 모금을 하고 있었다.
종을 딸랑딸랑~ 치는데 뭔가 홀린 듯 한참을 쳐다보고 있던 나는 아버지의 손을 놓친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쫄래쫄래 따라오겠거니 하고 한참을 걷다가 내가 없어진 것을 알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고, 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나는 목놓아 울고야 말았다.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목놓아 펑펑 울고 있었는데 다행히 신발가게 주인아줌마가 울고 있는 나를 가게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께서 나를 찾으러 오셨었다.
훌쩍훌쩍거리며 눈물 닦는 나를 보곤 아버지께서 괜히 내게 미안했는지, 갖고 싶은 부츠를 골라 보라고 하셨다. 어린 마음에 훌쩍거리면서도 그나마 적당한 가격의 부츠를 골랐는데, 아버지께서 웃으시면서 제일 비싼 메칸더 브이 부츠를 골라 계산을 하시는 것 아니겠는가. 아버지의 눈에는 훤히 다 보였던 것이다.
훌쩍거리던 눈물 콧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나는 입가에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울다가 웃으면 궁둥이에 털 나는데 집에 가서 확인해봐야겠네' 라며 나를 놀리셨고, 나는 한 손은 매칸더 브이 부츠를 꼭 움켜쥔 채 , 한 손은 아버지의 손을 꼭 잡은 채 발걸음을 옮겼다. 차가운 공기가 스치면 떠오르는 그 시절 그 겨울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