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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배

[15매]

by 이한얼






나는 나를 포장하는 일에 약하다. 모든 방면의 포장에 약하지는 않다. 나를 많이 포장하며 살지만, 특정 부분에만 주력하고 특정 부분은 거의 내버려두는 식이다. 내가 가장 포장에 노력을 쏟는 부분은 생각이다. 나아가 가치관이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삶을 이끌어가고 있을까. 나는 스스로를 긍지 있게 여기고 싶다. 자긍심을 가진 스스로를 존중하고 싶다. 자긍심과 자존감을 가진 채로 말끔한 자기애를 가지고 싶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타인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싶다. 의존이나 구속을 애정이라 속이고 싶지 않고, 질투나 결핍을 사랑이라 포장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으로서, 마찬가지로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각자 혼자 살아도 되지만 둘이면 더 좋을 것 같아 함께 살고 싶다. 함께 지내야 하니 혼자 살 때 누리던 자유나 결정에 영향을 받겠지만 그것을 침해라 여기지 않고 합의라고 생각하고 싶다. 더불어 혼자 살 때는 결코 충족할 수 없던 것들을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그리고 우리가 우리에게 선물해줄 수 있는 관계이고 싶다. 물론 타인과 몸과 영혼을 한 뼘쯤 겹친 채 보폭을 맞춰 걷는 일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 평생 다르게 살아온 둘이 같은 방향을 보며 공통의 가치를 추구하는 일은 그 방법의 다양성만큼 각자 최선이라 생각하는 바도 매순간 다를 것이다. 허나 중요한 것은 우리는 둘 다 자긍심과 자존감과 자기애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사고체계를 신뢰하고 그만큼 상대의 사고체계도 존중한다. 거의 대부분의 이견은 나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신뢰하는 사고체계에서 파생된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사랑하고, 그 기준에 맞춰 평생을 긍지 있게 살아왔기에 나와 다른들 상대 삶의 궤적 역시 존중할 수 있다. 긍지 있게 살아온 이가 존중하는 대상은 자신만이 아니다. 쉽지 않은 과정임을 스스로 겪어왔기에 다른 자긍심이 걸어온 길 또한 인정하고 경탄하고 찬사를 보낼 수 있다. 자신이 존귀한 만큼 상대 역시 그럴 수밖에 없다.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살아온 상대가, 무엇보다 많고 많은 사람들 중 자신의 기준으로 고른 상대가 존귀하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상대는 나처럼 잘못에는 담백한 인정과 반성을, 잘함에는 말끔한 끄덕임과 칭찬을 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네 일이 내 일로 되었다고 입장을 손바닥처럼 뒤집지 않을 것이고, 내 일이 네 일로 변했다고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지도 않을 것이다. 상대에게 할 수 있는 만큼만 받기를 요구할 것이고, 내가 받고 싶은 것이 있다면 먼저 상대에게 할 것이며, 내가 이것을 좋아하면 상대도 좋아하고 내가 싫어하는 일이면 상대 역시 싫어할 것이라 여긴다. 내로남불을 혐오하고, 달삼쓰뱉을 천박하게 여기며, 책임 없는 행위와 이기주의적 선택 장애를 경계할 것이다. 내가 잘못했을 때 용서받고 싶은 절실함만큼, 상대가 잘못했을 때도 불쑥 화부터 내기보다 상대 입장을 먼저 생각해 볼 것이다. 내가 지금껏 너에게 용서받아온 만큼 앞으로 너를 용서할 것이다. 용서받은 일이 없다면 앞으로 용서받을 거라 믿으면서 내가 먼저 너를 용서할 것이다. 당신의 하루를 오롯이 지켜보고, 이야기를 듣고, 너의 눈을 주시하면서, 불꽃이 일렁이는 이 생명이 내 앞에서 살아 숨 쉬고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을 수 있어서 감사한다. 나 역시 너에게 삶의 등불, 달도 없이 어두운 밤 밝게 빛나는 별무리, 세찬 눈보라가 치는 산길에 저 멀리 안개를 뚫고 빛나는 모닥불이기를 바란다. 당신에게 잡히는 내 손이 언제나 깨끗하기를 바란다. 내 입술이 닿는 당신의 정수리가 늘 떳떳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이 세상에 내가 아닌데 나처럼 여길 이가 있고, 그를 무사히 만나 함께 할 수 있다는 행운에 감사하며 살고 싶다. 잘했어. 괜찮아. 고마워. 내가 보고 있어. 잘 자. 하루 중 이 다섯 단어를 가장 많이 주고받는 우리였으면 좋겠다.

둘이든 혼자든 나는 여전히 살아갈 것이다. 변할 것 없이, 다를 바 없이, 내가 살고자 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다. 머리가 아주 단정하지는 않을 수 있다. 눈썹 정리가 덜 됐을 수도 있다. 깨끗이 세탁한 옷이지만 조금 헤졌을 수도 있고, 손톱 자르는 일을 깜빡했을 수도 있다. 구두가 정갈하지 않을 수도, 머무는 자리 구석에 약간의 먼지가 있을 수도, 옆구리살이 나오거나 목에 주름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요령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 다른 쪽으로는 나를 좀 더 보기 좋게 포장하기 어렵다. 첫 만남에 눈길이 갈 만한 사람도, 말 한 마디 하지 않고도 호감을 가질 만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나도 잘하는 포장이 있다. 내 사고체계가 제법이라는 포장. 나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포장. 내가 훌륭한 가치관을 가졌다는 포장. 그러기 위해 생각 하나 하나를 껍질이 얇아 상처 나기 쉬운 과일을 다루듯 곱게 포장한다. 분명 처음은 근거 없는 만용에 가까운 과대 포장이었을 테지만 중요한 것은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점이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에 절반 이상을 나는 스스로를 포장하며 살았다는 점이다. 그렇게 살지 않았던 기간보다 그리 살았던 기간이 길어진 어느 날, 문득 열어본 곰돌이 모양 포장 안에는 실제 곰돌이 모양으로 자란 배가 있었다. 네모 모양의 사과도, 원통 모양의 수박도 있었다. 대단하고 훌륭한 인간으로 태어나지는 않았다. 여전히 대단하고 훌륭한 인간은 아닐 수도 있다. 허나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속 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대단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꾸준히 기어가고 있다. 어느 선, 어떤 사건을 기점으로 그리 불러야 할지 모르니 나는 이미 예전부터 스스로를 대단하고 훌륭한 사람이라 자칭했다. 설령 지금 그렇지 않은들 어때, 과대포장일 수도 있다 한들 어때. 나는 그렇게 태어났기에 이름표를 받은 이가 아니라, 미리 이름표부터 붙여놓고 그러기 위해 자라온 이인데. 대단한 사람인 것도, 사상가인 것도, 함께 걸어갈 좋은 동반자인 것도 모두 그렇다. 포장에서 시작된 나는 계속 이렇게 걸어갈 테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런 나를 긍정할 너를 끝내 만날 수 있을지 뿐이다.


이쯤이면, 나는 이제 너를 만날 준비가 되었을까.





25. 0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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