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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ssion fruit Jun 21. 2024

흐림 2

Fire! (동료의 퇴사를 바라보며)


"오늘 미팅이 왜 이렇지? 왜 나만 따로 미팅을 하고 다른 팀원들은 나중에 미팅을 하지?"


나의 가장 친한 동료 B가 묻는다. 홍콩에 와서 지난 2년가 가장 친해진 동료다. 바로 맞은편에 앉아 있어서 얘기도 많이 하거니와, 내가 힘들 때, 또 그 친구가 힘들 때 서로 응원도 하고 도우며 지냈다. 그러다 보니 금세 친해졌다.


"매니저가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보지."


그냥 이렇게 얘기했는데, B는 계속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뭔가 이상하단다. 나는 그날 저녁에 개인적인 일이 있었다. 마침 매니저가 오늘은 일찍 퇴근할 것을 권유했다. 팀 미팅을 집에서 참여하기로 하고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으로 갔다.


"팅얐낀!" (광둥어로 "내일 봐")


B에게 인사하고 서둘러 집으로 갔다. 그리고 참여한 팀 미팅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B는 오늘부로 퇴사하고 앞으로 볼 수 없다고 한다. 이유는 해당 포지션이 없어졌다는 것. 팀원들 모두 얼어붙은 얼굴로 말이 없다. 애써 괜찮은 척하려 하지만, 나도 할 말을 잃었다.




B는 매니저와의 미팅 전, 화장실을 갔다. 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카드키가 작동하지 않았다. 순간 B는 알아차렸다고 한다. 사무실의 동료가 문을 열어줬고 자리로 갔다. 매니저와 인사부 담당자가 노트북, 핸드폰, ID카드와 개인 소지품을 챙겨서 미팅룸으로 이동할 것을 권했다. 퇴사의 이유, 앞으로 한 달간 회사의 직원으로서는 인정되지만, 사무실 또는 회사의 어떤 정보에도 접근은 불가하다는 사실, 그리고 향후 퇴사자에 대한 지원사항 등의 설명을 듣는데 1시간 조금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노트북과 ID카드를 반납하고 나갔다. 이것이 사무실에서의 마지막이었다.  


다음날, 매니저는 모든 직원들과 one on one 미팅을 진행하며 퇴사시켜야 했던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다른 모든 직원들을 안심시키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팀원들은 동요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 팀뿐만이 아니라 사무실의 많은 홍콩 직원들도 적잖이 불편해하고 분노하기도 했다. 직원에 대한 인사 결정은 매니저를 포함한 사측에서 한다. 때로는 매니저도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은 안다. 그래서 인사 결정 자체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동안 수고해 온 직원에 대한 존중 없이 수치스럽게 퇴사시킨 그 과정에 있었다. 하지만 어느 직원도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홍콩에서는 이러한 퇴사 절차가 가능하다. 저성과도 퇴사의 이유가 되는곳이다. 회사에서는 절차상 의무를 - 1달간의 직원 신분 유지, 급여 및 퇴직금 제공, 구직활동 지원 - 을 다 제공했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직원들의 마음에 남은 '누구에게나 이런 일은 또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 뿐이다.




업계에서 한 때는 Regional office를 거치는 것이 승진의 확고한 징검다리로 여겨졌다. Region 만 갔다 오면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업계 전반적으로 성장이 정체되었고, 대부분의 회사들은 비용 절감을 위한 여러 가지 노력들을 실행했다. 본사와 말단 지사의 사이에 있는 Regional office는 비용절감의 단골 표적이 되곤 했다. 그 이후부터 많은 사람들이 승진하려다 목 날아간다며 regional role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한국이나 홍콩이나 결론은 다 치킨집이에요."


홍콩의 한인 교회에서 알게 된 한 집사님께서는 약 1년 전 돈가스 집을 오픈하셨다. 직장생활을 계속하시다가, 그 끝을 직감하시고 미리 준비를 시작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한국식 돈가스 집을 여셨는데 지금은 자리를 잘 잡았다. 전세계 맥도날드 매장보다 많다는 한국의 치킨집. 결론은 치킨집이라는 말은 우리의 형님들, 그리고 우리 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인정하고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직업(職業)이란 자리를 뜻하는 職과 일을 뜻하는 業의 합성어다. 대한민국 많은 회사원들의 직업은 사실 職에 가깝다. 결국은 業을 찾아야 하는데, 職에만 매달려 일이십 년을 달려온 사람들이 業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선뜻 무엇을 해야 할지 헤매게 된다. 나도 미리 준비를 하려고 퇴사학교에 기웃거린 적도 있었다.


"그게 참 힘들어. 00 과장이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내 나이 되면 이해할 거야."


한창 의욕적이고 자신만만했던 30대 중반에 40대 중반이었던 한 영업부 지점장님이 해 주었던 말이다. 이 분은 회사에서도 그리 인정받지 못했고, 상사에게도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지만 끝까지 버텼다.


'이 말은 더 노력하지 않고, 더 준비하지 않은 패배자가 하는 말이다. 나는 그럴 일 없을 거다. 나는 열심히 준비해 나가리라.'


라고 속으로.다짐했었다. 그때는 이 말이 와닿지 않았고 인정되지도 않았다. 그랬었는데, 처자식이 생기고 부모님까지 지탱해야 하는 40 중반이 되어서야 그 말의 무게를 느낀다.




B의 사건이 있은 후, 1년이 채 안되어, 다른 동료가 또 퇴사했다. 공식적으로는 자발적 퇴사. 하지만 실상은 리포트 라인의 변경이 있은 후 새 상사가 퇴사를 권유한 것이다.


"그래도 나는 화장실 갔다 올 때 키는 작동했어. 회사가 많이 관대하게 대해준 거지. 하하하"


이 친구는 인수인계를 위한 일주일을 받았다.


"너 출입키 작동은 되니? 노트북 로그인 되니?"


B의 사건 이후 우리는 종종 이런 농담을 하곤 했다. 웃으며 지나가지만 마음 한편에는 언제든지 잘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놓여 있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인 나에게 이런 부담은 더 크게 다가온다.


정서 예측(affective forecasting)이라는 심리학의 연구분야가 있다. (프레임 - 최인철, 2007) 우리의 마음에는 극심한 스트레스상황에 처하게 되면 이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주는 심리적 면역체계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제로 어려운 일에 당면했을 때 생각보다 잘 대처하고 극복해 낸다. 하지만 스트레스 상황에 처하지 않은 지금의 시점에서 미래의 스트레스 상황을 상상할 때에는 그 면역체계가 작동할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부정적인 사건의 충격을 과대하게 예측한다는 것이 정서 예측이다.


나를 포함한 팀원들은 B의 퇴사 후 며칠 뒤 점심식사를 함께했다. B는 의외로 담담하다.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B에게는 심리적 면역체계가 작동한 것 같다. 오히려 더 불안해하는 것은 면쳑체계가 작동하지 않은 우리였을 것이다.


"남아있으려는 사람은 내보내려고 하고, 나가려는 사람은 붙잡는 곳이 회사다."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직장 선배가 준 책에서 읽었던 문장이다. 살면서 언뜻언뜻 보거나 들은 얘기들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들이 있는데 나에게는 이 문장이 그중 하나다. 그래서 늘 다음을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 몸에 베였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적극적으로 이직을 해 왔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지금 나는 외국인 노동자다. 나이도 많고 이직도 쉽지 않다. 그러면 이 끝은 결국은 치킨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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