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한낮의 거리에서 이스라엘 사람을 만났다더운 날씨이지만 운동되라고부지런히 앞만 보고 열심을 내며걷다가이내목적지가 가까워졌음을 깨닫고 서서히 속도를 늦추려던참이었다
평소 주위를 살피며 걷는 습관 덕에, 우연히 내 옆에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 사람은 외국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한국인처럼 보였다 잠시 동안 그들을 지켜보는데,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는 듯싶어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말쑥한 차림의 여성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유럽계 외국 여성이었고 반대쪽에는 캐주얼 차림의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국 남성이 서 있었다 그녀는 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서서는 그 옆 남성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보여주며 재차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시계를 내려다보니 이제 12시가 거의 다 된 시간이었고 그녀는 다급한 나머지 연신 그 분과 자신의 시계를 번갈아 쳐다보며 빨리 일을 해결하고 어디로 금방 떠나야 한다는 표정을 내비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남자분은 여자분이 설명하는 바를 정확히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무언가를 알려주고 싶은데 알지 못해 나오는 답답한 표정이 이미만면에 가득했다 아무래도 외국 사람이다 보니 어쩌지 못하고 끝까지 이야기를 듣고 해결을 해주려는 것 같아 보였다
심각한 표정으로 눈썹을 찡그렸다 폈다를 반복하며 혼잣말로 뭐라 뭐라 하시는데, 마치 나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곳이 어디인지 모르겠어요 라는 대답 같았다 추측건대 그 남성분도 초행길을 지나가다 외국인을 만난 게 분명해 보였다 나중에 자초지종을 알고 보니 여자분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코너를 돌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보이는 곳 바로 우리 교회였기 때문이었다
살며시 다가가 인사말을 건넸다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찰나, 외국 여성이 나를 향해 불쑥 이렇게 말을 걸어온다
혹시 여기 알아요? 결혼식이 12시거든요
예상치 못한 한국말을 듣고 당황한 나는 묻는 질문에 즉답을 하기 위해 핸드폰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목적지는 바로 내가 향하고 있는 곳, 바로 우리 교회 지하 예배당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는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하려고 서울 반대쪽에서 먼 길을 온 듯했다 때마침 내가 같은 목적지 교회에 가고 있으니 나를 따라오면 된다는 말을 건네며 그녀를 에스코트해서 지하 예배당까지 배웅을 해드렸다
그녀가 한국말이 서툴다는 것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척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바로 다음 질문을 이어나갔기 때문이었다
"너는 크리스천이에요? 교회 간다고 했잖아요" "네..?"
아까는 존대어를 들었는데 지금은 어린아이 같은 말투로 어색해하며 망설이듯 질문을 한다 분명 한국말이 아직 어려운 게 틀림없어 보였다
"네 크리스천이에요 한국말 참 배우기 어렵죠? 영어로 할까요? 그나저나 한국말 배운 지 얼마 되셨어요? "
"1년 좀 넘었는데 아직도 어려워요 아 그러면 혹시 영어로 말하고 싶어요? 아니면 한국말로 계속 말하고 싶어요?"
"한국말을 배워야 해서 한국말을 하고 싶기는 한데 어렵네요 영어가 편해서 영어로 대화하기로 해요"
"네~ 그럼 영어로 편하게 대화하시지요"
그렇게 5분가량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녀의 이름은 나아마, 처음 듣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이스라엘 사람인만큼 성경에 나오는 이름을 가지고 있겠다 싶었는데, 나오미가 아니라 나아마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 낯설었다 나아마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다고 하니 노아의 방주를 지었던 노아 아내 이름이 나아마라는 설명을 덧붙여 자신을 소개했다 그녀는 자신을 유대종교를 믿는 유대인이라 설명하면서 이스라엘에서 한국어를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의 자녀 결혼식에 참여하기 위해 식장에 왔다고 했다 이미 12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에 얼른 예식장으로 들어가라고 말하고순식간에바로 헤어지게 되었다
십 분의 짧은 만남을 통해 그녀의 이름만이 내게 남았다 집에 와서 나아마라는 이름의 기원을 찾아보면서 노아의 아내 이름이 성경에 나와 있는지도 다시 한번 찾아볼 수 있었다 성경에는 노아 아내의 이름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없으나 탈무드에는 노아의 아내 이름을 나아마로 소개한다는 새로운 사실을알게 되었다
이스라엘에 있을 때 자신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준 고마운 선생님을 기억하고, 한국에 직접 와서 제대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열정적인 이스라엘 여인 나아마, 그녀의 밝은 에너지를 잠시 동안 선물로 받을 수 있어 감사했고, 선생님의 자녀 결혼식까지 찾아와 직접 축하를 하는 모습도 멋지다 생각했다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관계를 맺었는데 다시 그 먼 거리를 건너와존경하는 선생님의 잔칫날에 함께 참여하는 제자의 모습이 내겐퍽 감동적이었다 그 선생님에 그 제자라고나 할까? 가는 정이 고우니 오는 정도 고운 것이겠지
그녀가 보여준 사진 속에 선생님은 온화한 미소를 만면에 머금고 계셨는데, 이제 두 신랑신부의 시어머니 혹은 장모님이 되시는 그분을묘사하며 시종일관 웃고 있는 나아마의 얼굴도 같이 빛나보였다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소개하는 그 자신의모습이 얼마나 멋진지 알려주고 싶을 만큼,
보는 것만으로도 유쾌하고 본이 되는 만남이란 생각이 들었다결혼식장에 도착하니 이미 결혼식은한창 진행되고 있어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웨딩홀로 들여보내고 손 인사를 끝으로 조용히 문을 빠져나와야했다 언젠가 다시 만날 기회가 오면 좋고 아니라면 어디에서나 잘 살아가기를 바란다
오히려 아무 말 없이 서로 반갑게 마지막 눈인사를 나눈 게 더 멋진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나는 순전히 눈인사를 나누며 감사한 마음을 서로에게 표현했던 그 짧은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감사한 마음을 이곳에남기기로 마음먹었다 8월 내내 폭염으로 에어컨 없이 여름 나기가 유난히 힘들었던 올해 8월의 마지막 날 감사했던 일이 이밖에도 여럿 있었지만 나아마를 만나, 십 분 동안의 대화를 나눈 이 순간이 가장 특별한 추억으로 남았다
한국에서 석사공부까지 시작하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던 그녀에게 앞으로도 좋은 선생님들과 좋은 만남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모두가 누군가 필요한 순간에 그 상황에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는 게 이상할 것 없이 자연스러운 우리나라가 되기를 희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