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는 은행엘 갔다. 점심도 거르고 간 은행에서 나는 친절한 행원을 만났다. 명패에는 김 누구누구 계장이라고 써있었다. 나는 준비해 간 서류를 차곡차곡 모아 두 손으로 건네고, 되돌아오는 빼곡한 종이에 싸인을 하고, 묻는 말에는 또박또박 답했다. 웬일로 순탄하나 하던 찰나 서류 하나에서 큰 오류가 보였다. '이거 좀 이상한데요.' 말하는 김 계장님에게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럼 어떡해야 하냐고 되묻는 것밖엔 할 수가 없었다. 애교머리가 동그랗게 말린 김 계장님은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짚어주었다. 행여나 우리 둘 사이에 놓인 투명 아크릴판에 목소리가 막힐까 손짓을 해가며.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김 계장님 유치원 선생님 해도 잘 하셨겠다. 나는 관절 인형처럼 고갤 끄덕이는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분명 내가 가져간 한 뭉치의 서류들 속에서 마냥 어리다고만은 할 수 없는 내 나이도 보았을 텐데. 김 계장님은 내가 일어나는 순간까지 어린 아이에게 처음 슈퍼 가는 걸 가르치는 어른처럼 당부를 거듭했다. '부동산에 이거 이거 해서 언제까지 저한테 주세요, 이렇게 얘기해서 서류 받아요. 저기 이것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이런 식으로 말하지 말고. 알았죠? 당당하게 말해도 되는 거예요. 응?' 나는 마치 기대에 부응하듯 어린 아이처럼 낭랑히 답했다. 네!
그리고도 김 계장님은 수차례 나에게 전화를 해주었고 결국 난 계장님이 말한대로 서류를 받아내 다시 은행엘 갈 수 있었다. 계장님은 나에게 잘 했다고 해주었다. 나는 뭐랄까, 심부름에 성공한 아이가 된 마음으로 뿌듯하게 웃어보였다. 감사합니다. 말하곤 쑥스럽기 그지없게 작은 젤리 봉지를 주머니에서 꺼내 계장님의 창구 구멍으로 쏙 밀어넣었다. 안녕히 계세요! 그 오후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은행을 나선 건 어떤 것을 어떻게 당당히 말해야 할지를 알게 된 나였다. 김 계장님 덕분에. 그날 나는 기분이 좋아 가족들에게 얘기를 늘어놓았다. 있잖아. 나 은행에서 엄청 친절한 행원을 만났다?
김 계장님 같은 사람들. 내게 친절한 사람들이 종종 내 앞에 나타난다. 나를 모르고, 내 이름을, 내가 하는 일을, 내 삶을 잘 모르지만 그저 남에게 친절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내 하루를 꾸려주고, 피로에서 건져주고, 또 내 마음의 어떤 조각을 완성시켜준다. 아주 잠시 스치더라도 내게 친절한 사람들을 나는 모조리 기억한다. 그때의 시간, 장소, 그 사람의 부스스하던 머리칼, 또는 안경테, 높거나 낮았던 목소리. 내가 마주친 사람 중엔 친절하기를 타고 난 이도 있을 것이다. 혹은 나의 상황과 그이의 상황이 맞물려 화학 반응처럼 순간의 친절함이 생겨날 때 내가 거기에 우연히 존재했던 일도 있을테다. 나는 그 우연한 친절들을 마주치는 날엔 꼭 말이나 글로 기억하고 기록한다. 그 우연들이 나를 키울 것임을 알기 때문에.
내게 친절한 사람들이 나를 키웠다.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순간의 친절을 베푼 사람들이, 그 기억들이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었다. 다시 만날 일 없을 나에게 친절했던 어른들이 신기하다.
얼마 전 동창과 오랜만에 모교 근처의 길을 따라 산책할 일이 있었다. 야, 그거 기억 나? 정말이지 입을 쉬지 못 했다. 한 걸음마다 모두 추억이었다. 지금보다 빼빼했던 내가 교복 치마를 입고 돌아다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온 땅이 내 것인마냥 여기저기 당당히 내 추억을 맡겨두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나는 새삼 신기했다. 떠오르는 모든 기억에는 내게 친절했던 어른들이 있었다. 그때는 고마운 줄 몰랐던 어른들. 내게는 아침마다 갓 구운 토스트에 잼을 발라 종이에 싸주던 학교 앞 작은 커피가게 사장님이 있었다. 작은 길 한켠에 그림들을 내놓고 팔던 것이 신기해 왜 여기서 그림을 그리냐며 대뜸 묻던 내게 평생의 이야길 들려준 할아버지 화가가 있었다. 좀 더 컸던 때에도, 그리고 심지어는 외국에서도 내게는 친절한 사람들이 있었다. 스페인의 한 작은 도시의 숙소 주인장은 내게 병따개 하나를 구해다주려 백발을 날리며 돌아다녔다. 유스호스텔의 윗 침대를 쓰던 언니는 자고 있던 내 머리 맡에 내가 못 먹어봐서 아쉽다고 한 하몽을 사다 놓고는 새벽 기차를 타고 떠났다. 그리고도 또 수많은 친절의 얼굴들.
나는 그 사람들의 얼굴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문득 씻으며, 밥을 먹을 때, 버스를 타고 익숙한 길을 지나면서 그 얼굴들이 떠오른다. 그들을 마주친 순간마다 나는 쑥쑥 자랐다. 타인이 타인에게 대가 없는 친절을 얼마고 베푼다는 것은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물리적 증명이 가능한 실례라는 걸 목격하며. 그 순간들을 겪은 나로 인해 인간 사회의 가장 순수한 명제는 경험 당사자가 존재하는 사실이 된다. 사람이 사람을 도울 수 있다. 그것도 아무것도 바람 없이. 삶의 장면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사람이 사람을 돕고 타인이 타인에게 친절할 수 있다. 나는 그 모든 걸 생각하고 문득 깜짝 놀란다. 나는 그걸 겪으며 커 온 사람이구나. 그 경험들이 없었다면, 분명 나는 지금의 나와는 정말로 다른 사람이었겠구나.
나와는 아무런 연도 없으면서 (지연, 학연, 혈연 - 갖다붙일 수 있는 모든 인연은 다 통틀어서), 잔스포츠 가방 하나 덜렁 들고 다니던 학생에게 되돌려받을 것은 무엇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에게 친절했던 어른들이 나를 키웠다. 엄마가, 아빠가 집에서 나를 키울 때 집밖에서 나를 키운 사람들은 이런 어른들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어른들, 혹은 겨우 한두살 더 많고도 내게 어른이었던 사람들. 이해타산이나 편리 따윈 채 헤아릴 생각조차 못 하고 그저 친절했던 어른들. 사람이 사람에게 다가가는 길은 오로지 친절한 마음뿐이라고 굳게 믿는 듯 한 사람들. 친절이 친절인지 몰라 생색 낼 줄도 모르는 사람들. 배운 게 오직 친절뿐인 사람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도저히 멈출 수 없이 계속 나이를 먹고 있다. 그럼에도 영원히 누군가보다는 어리고 또 누군가에겐 너무 어리다. 그렇기에 내게 친절한 어른들 역시 여전히, 있다. 그 순간들을 나는 전부 기억한다. 가끔은 잊더라도 그 기억들은 꼭 내게 계절의 바람처럼 돌아온다.
처음 독립하고 나서 제대로 된 밥을 못 챙겨먹을 때가 있었다. 그때 퇴근 후 들른 마트에서 김치 매대의 판매원에게 나는 김치부침개를 혼자 해먹을 거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그 분은 작은 키로 높은 매대를 한참 뒤져가며 가장 신선한 제조일자의 김치를 내게 전해주고, 꼭 맛있을 거라고 웃어주었다.
어느날은 늦잠 잔 출근길에 만난 택시 아저씨로부터 미국에서 40년 살다 온 이야기를 들었다. 아저씨는 다크서클을 가득 묻힌 내게 봄은 금방 지나가니 봄 바람을 맞아보라고 창문을 열어주었다.
발이 아파 정형외과를 찾은 가을의 기억도 있다. 나이가 지긋한 간호사는 아가에게 하듯 따뜻하고 고운 수건을 내 배와 눈에 올려놔주었다. 그리곤 밥벌이를 하느라 고생이 얼마나 많냐며 눈을 붙이라고 했다. 그렇게 수액을 맞는 동안 쿨쿨 잠든 수고밖에 안 한 내게 아이나 먹을법한 과자와 음료수를 쥐어주었다.
나는 그날 김치의 사진을, 택시 차창 밖 사진을, 또 간호사 선생님이 쥐어준 간식 사진을 모두 남겨놨다.
그리고 가끔은 그걸 찾아 본다. 그렇게 기억을 떠올리다 보면 나는 문득 내 입에서 나오는 말에 놀라고 만다. 사는 게 너무 아름다워. 내게 친절한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내게 선물해주는 순간들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주 우울하고 종종 슬퍼하고 때로 비관하는 것이 습관인 내가 하는 생각치고는 너무나 밝지만, 그렇다고 절대 거짓이 될 수는 없는 말. 세상에, 사는 데 너무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지 않니?
스치는 사람들의 스치듯 짧은 기억들이 영원히 나를 키운다. 나는 멍하니 멈춰있다가도 그런 순간들을 마주하면 산다는 게 뭔지를 살갗으로 느낀다. 소름이 돋는 피부로 삶을 느낀다. 더 나은 어른이 될 힘은 그런 데서 나온다. 세상엔 무관심과 냉소와 계산보다 훨씬 더 나은 것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힘. 눈 한번 깜빡이는 새의 일일지라도 영원히 기억되는 건 강함보다는 다정함이다. 다정함은 곧 친절함이고, 친절은 낭만이 되고, 낭만은 절대로 약해질 수가 없다. 고로 나는 강한 어른이 된다는 게 뭔지 경험으로 깨닫고 있는 중이다.
나는 앞으로도 이 과분한 친절들을 절대 놓치지 않고 살아갈 거다. 그리고 기록할 거다. 나는 얼마나 나이를 먹든 그 친절들을 날름 날름 받아먹으며, 나도 모르게 친절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을 거다. 다른 사람에게,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적은 사람에게, 나보다 등이 굽었거나 또는 꼿꼿한 사람에게. 내가 궁색치 않고 언제까지나 퍼내어 줄 수 있는 건 친절뿐이라는 듯이.
친절한 사람들이 여전히 나를 키운다. 언제까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