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화 Aug 13. 2021

누군가는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을 이야기 (1)

페미니스트가 될 줄이야

 나는 페미니스트다.


 나는 완전무결한 사람이 아니고, 완벽에 가까울 정도까지 사상이 견고하지 않으며, 어떤 때는 틀리기도 한다. 어쩌면 엄청 많이 틀릴 수도 있다. 보는 눈에 따라선  틀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틀림없이 이런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을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쓴다. 나는 '내가 잘하고 있는지' 의심하고  그 의심에 무척이나 지친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지금 나는 내가 잘하고 있는지 의심하고 있으며,  무척 지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극히 사소하기만  개인의 경험을 나열한 글이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의 경험은 아닐 것이라 감히 자신을 한다.


 가장 처음 페미니즘과 대면했을 때는 내가 21살 때다. 내 나이가 서른이니, 9년이나 더 된 일이다. 교양과목인 <여성학> 수업을 들었는데, 듣고 싶어서 들었던 건 아니고 친구와 시간표를 맞추다 보니 ‘듣게 됐다’. 그때의 나는 여권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때였지만, 무슨 수업이든 열심히 듣는 학생이었다. 유리천장이나 성의 상품화 같은 굵직굵직한 사회 현상들을 들으면서 막연히 그렇구나, 맞는 얘기인 것 같다, 집에 가고 싶다.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고학년이 되었을 때, 사회학과 전공수업인 성(性) 관련 사회학 수업을 들었다. 몇 년도인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고 계산하기 귀찮다. ‘메르스’라는 전염병이 유행하여 이에 대한 공포심이 조성되고 있었고, 메르스 갤러리에서 파생된 ‘메갈리아’라는 사이트가 막 생겨난 때이기도 했다.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페미니스트로 살아갈 거라는 것을 직감하게 해 준 사건은, 바로 사회학과 교수님이 메갈리아에 대해 알아오라고 과제를 내준 것이었다. 다시 한번 어필해본다. 나는 교수님 말을 잘 듣고, 수업을 열심히 듣는 학생이었다. 처음 사이트에 접속했을 때에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거센 워딩과 필터링이 없는 단어 선택들에 거부감이 들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들이 ‘일베’의 언어들과 무척이나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미러링이라는 단어를 여기에서 처음 배웠다. 미러링의 취지는 일베가 너무도 만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혐오적 표현을 같은 방식으로 뺏어오자는 것이었다. 무척 단순했다. 내가 생각하기엔 이 정도로 도식화할 수 있을 것 같다.



명품 밝히고 허영심에 절어있는 한국 된장녀 김치녀들.


 한국 여자 서양 백마나 흑마들에 비해 가슴 제일 작다.


스시녀들은 개념녀라서 다 더치페이함.



양남 최고.


한국 남자 고추 평균 6.9cm 세상에서 제일 작다.


양남들은 데이트 비용 다 자기가 냄.



 남자들이 사용하는 여성 혐오적 표현들은 몹시 낯익었는데, 반대로 남성 혐오적 표현들은 무척 낯설었다. 혐오에 혐오로 되받아 치다니! 천박하다! 이렇게 욕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고백하자면 솔직히 그 신박한 발상이 조금 통쾌했다.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다. 거칠어서 거북했고, 속이 좀 시원했다.


 혐오가  시원하다고? 인성에 문제가 있는  아니냐고 인상을 쓰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에는 광고에서도 공공연하게 김치녀, 된장녀, 강남녀 같은 단어를 만연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인성을 운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여성을 정의 내리고 비꼬는 단어들은  없이 생겨나는데,  그때는 혐오에 맞서 주지 않았냐고. 왜 동조하고 묵인하면서, 여성 혐오를 즐겼었냐고.


  거기에 대해 똑같이 받아칠 생각을 하지  했을까.  받아칠 생각을 하지 않고, 나를 검열하고,  다른 여자를 검열했을까.


 부끄럽지만, 이 당시 나는 일기장에 ‘남자친구가 나더러 된장녀가 아니라서 고맙다고 얘기했다. 된장녀가 되지는 말아야지.’라고 쓰는 개념녀가 되고 싶은 여자였다. 나는 김치녀가 되는 오인을 살까봐 늘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서양 사람들처럼 큰 가슴을 갖길 열망했고, 야무지게 데이트 통장도 했었다.


 내 연애는 좋았던 때도 있고 나빴던 때도 있다. 나빴던 때를 지금 주제와 연관해서 좀 얘기해보는 것도 좋겠다. 남자친구가 친구들에게 배워 온 일베 말투를 종종 따라해서 싸웠다. 남자친구의 친구들은 장난으로 일베 손 모양을 하고 사진을 찍기를 즐겼다. 남자친구는 내가 이에 대해 지적할 때 마다 내가 너무 예민하다는 말로만 몰아세웠다. 또 내가 인터넷에서 이상한 글을 너무 많이 본다며, 무조건 일베가 나쁘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존나게 가스라이팅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이것이 가스라이팅이라고 전혀 느끼지  했던 이유는 따로 있다.  주변에 흔히 있는 거의 모든 남자들이 비슷했다. 일베 논란이 있을만한 언행이나 행동을 하고( 지어내는  아니냐고 의심할까봐 노파심에  써본다. 페이스북에 ‘-’, ‘이기야’, ‘운지같은  남자애들끼리 주고받기. 단체 사진이나 다른 사진 찍을  은근슬쩍 일베 손모양 하고 찍거나 찍힌 다음 장난이라고 얘기하기. 맥락도 서론도 없이 다짜고짜 임산부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군가산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하고 물어보면서 의도가 빤히 보이도록 대놓고 사상검열하기 ), 장난인데 예민하게  그래. 라는 말로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성질이나 기질이 이상하고 특이한 것처럼 몰아가는 것이었다. 예시로  내용들은 믿지  하거나 혹은 있는 힘을 다해 믿기 싫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모두 내가 겪은 일이고, 주변의 친구들에게도  정도는 정말 일상처럼 만연한 일이었다.


 이후, 나는 그 사회학과 수업에 좀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교수님은 늘 수업을 시작하면서 “남자들도 정말 힘들어요. 남자들도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부당하다고 느끼고, 남자로 살기에 참 고된 부분이 있습니다.”라고 운을 띄웠는데, 나는 이제야 왜 교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 것도 같다. 한 학기동안 나는 페미니즘에 대해서 꽤 심도 깊게 배웠고, 팀 과제와 시험을 준비하면서 페미니즘 관련된 책도 정말 많이 찾아봤다. 정말로 매일 겪고 있는 사회현상을 수업시간에 얘기할 수 있다는 게, 특히 재밌었다. 우리 과수업에서는 그런 토론이 없으니까 더 그렇게 느꼈다. 어느 정도로 재밌었냐면, 국문학과 학생이 사회학과 전공수업을 A+받을 정도로.


 나는 여성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남자친구에게 하기 시작했다. 그 남자가 그 당시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기 때문에, 내 관심사를 공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나를 이해하지 못 했다. 어쩌면 당연하다. 된장녀가 아닌 상화에게 고마웠고 또 그런 상화를 좋아했는데, 뜬금없이 페미니즘이라니. 내가 남자친구였어도 당황스럽긴 했을 거다. 그래서인지 남자친구는 내게 ‘아무 문제없이 여태 잘 살아왔는데, 뭐가 불공평하다는 거야?’, ‘너 하나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사회가 바뀌진 않아.’, ‘쓸 데 없는 불평불만인 것 같아.’, ‘반대로, 너도 여자라서 받은 혜택을 무시할 수는 없잖아?’, ‘자기랑 이런 얘기하는 게 좀 지치는 것 같아.’ 이런 소리를 자주했고, 어떤 날에 가끔가다 한 번씩은 내 말에 자기도 동의한다고 했다.


 한 번 무척 심하게 싸운 적이 있다. 개그맨 장동민씨의 여성혐오적 발언 때문이었다. 이 발언에 대한 것은 ‘장동민 여혐 발언’이라고 검색한 후, 2015년 쯔음의 기사를 읽으면 된다. 같은 사건을 놓고 나는 장동민씨를 무척 싫어하는 여자가 됐고, 남자친구는 별 것 아닌 걸로 예민하게 구는 여자친구를 둔 남자가 됐다. 이 때 헤어졌어야 했지만, 우린 너무 오래 만났고 아직까지 나는 그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다. 사랑사랑, 누가 말했냐면, 그 때의 나..


 도대체 이 정도로 지독한 사랑을 해놓고, 왜, 무슨 이유로, 어떻게 헤어졌냐면. (다음 글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내 연상의 동거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