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엄마가 만만했다.
엄마는 객관적으로 봐도 다재다능했다.
한때 역사 선생님으로 학교에서 일했고, 한문 1급의 소유자이며, 불교대학 이수 후 포교사 자격까지 얻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사춘기가 올 무렵 엄마를 자주 무시했다. 엄마는 과거 내가 초등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자 과외 선생님 역할을 자처했다. 가족끼리 가르쳐주고 배우는 관계가 되면 꼭 싸운다는 말은 정답이었다.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시키는 엄마가 얄미웠다. 그래서 반항했고, 엄마는 화를 냈다.
“너는 엄마가 만만하지?”
엄마를 만만하게 보고자 했다. 지금 이러지 않아도 나는 엄마를 이길 수 있다고 여겼다. 어린 날의 객기는 커서도 엄마를 적대시하는 상황을 만들곤 했다. 특히 엄마가 내게 엄마가 아닌 아픈 사람으로 확 다가오는 그런 순간에 그랬다. 그렇게 거의 남인 것처럼 보낸 사람이, 자꾸 이상한 상황에서 생각났다.
엄마는 사학과 전공이었다. 그래서 한국사 이야기를 할 때면 엄마가 꽤 멋있어 보였다.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부족한 부분은 옆에서 바로바로 야사까지 끼워 넣으며 설명해줬다. 엄마가 떠나고 나자 이제 그렇게 부가적인 부분을 채워줄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은 친구와 문학관에 갔다가 근처에 연산군의 묘를 보게 되었다. 폭군이라는 것 말고는 연산군이 정확히 어떤 사건을 일으켰는지 알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이야기하는데, 다른 가족들도 한국사를 깊이 공부하지 않았기에 이야기하다가 서로 답답해했다. 그때 아빠가 말했다.
“엄마가 있었으면 바로 옆에서 얘기 다 해줬을 텐데. 그렇지?”
듣고 있던 언니와 나는 맞다며 아빠의 말에 웃고 공감했다. 웃음 뒤에 씁쓸한 마음이었다. 처음으로 아쉽다는 기분이 드는 순간이었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고, 엄마 없이도 엄마를 필요로 하지 않고 떳떳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뜻하지 않은 순간에 빈자리를 느꼈다.
그 자리를 아예 치우고 없었던 것처럼 살고 싶은 마음도 사실 있었다. 빈 공간을 보면 생각이 났다. 그런데 그때의 감정은 앞서 계속 밝혔다시피 그리움이나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도 요리를 하려다가 레시피가 생각 안 나 문득, 역사 프로그램을 보다가 궁금하게 생길 때 문득, 자취방에 지워도 남아있는 곰팡이 흔적에 스트레스받을 때 문득, 엄마가 생각났고 당신이 있을 때 배우지 못한 게 아쉽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가 이런저런 기억이 엮이면 다시 엄마를 미워했고 금방 머릿속에서 잊으려 노력했다.
엄마를 사랑했든 그렇지 않든 내게 있어 너무 큰 감정 소모가 지속되었다. 그 존재만으로도, 단순히 생각만으로도 감정을 소모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아쉬운 마음도 ‘아, 아쉽네.’ 정도가 아닌 ‘왜 그때 배워둘 생각도 못하고 지금 와서 이래?’까지 날 밀어붙이고 나서야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