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의 방패였던 날

엄마 울지 마

by 정그믐

의외로 나는 외모가 엄마를 더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언니는 아빠를 닮았고 나는 엄마를 닮았다고. 언니와 아빠는 까무잡잡한 피부를 자랑했고, 나와 엄마는 흰 편이었다. 나는 아랫니 중 하나가 안으로 말려 들어 간 것조차 엄마를 닮았다. 그러나 엄마와 아빠가 싸우면 나는 항상 아빠를 달래주러, 언니는 항상 엄마를 달래주러 갔다. 언제부터인가 그게 자연스러운 사후 행동이 되었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아빠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우리 집에 불화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시기부터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지금도 꾸는 어린 날의 꿈이 있다.


엄마가 무릎에 나를 앉혀놓고 할머니에게 시집살이를 당하는 건지 혼나는 꿈이었다. 그때 나는 아주 어린 나이였지만 엄마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몸을 돌려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엄마 울지 마. 내가 있잖아.”


그 꿈이 정말 있었던 일인지, 각색된 일인지, 아니면 아예 허구인지 이제 영영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 어렸을 때는 내가 엄마의 방패였고, 엄마는 나의 방패였다. 모든 상황에 수긍하고 사는 언니는 어른들의 어떠한 말에도 반항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내키는 대로 말하고 살았다. 물론 그게 엄마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간 날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엄마가 딸만 둘 낳았다고 무시당하는 상황에서 나는 표정으로나마 기분 나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던 날 무척 울었다고 했다. 감동 때문이 아니라 둘째인 나조차 ‘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어쩌면 엄마는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날 마음에 안 들어 했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한때는 내가 딸이라는 사실이 미안하기도 했다. 엄마에게 전해 듣는 서러움은 나도 감당이 안 될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엄마는 몰랐겠지만, 나는 지금도 집안의 모든 사람과 벽을 두고 있다. 어린아이의 힘으로는 대적할 수 없어, 그냥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내가 그렇게 소극적인 방패가 될 때, 엄마는 분명 적극적인 방패가 되어주었다.


나는 어릴 적 아빠가 엄해 자주 혼났다. 아침에 밥을 남기면 혼났기 때문에 헛구역질하면서 밥을 먹었고, 아빠의 바둑알을 제자리에 두지 않았다면 이리저리 집안에 흩어진 바둑알이 한 알씩 나올 때마다 자로 맞았다. 열이 나도 학교에 가서 죽으라는 교육관 때문에 엄마와 아빠는 자주 싸웠다. 바둑알 때문에 체벌로 혼나고 있었을 때도 엄마는 외출했다 돌아와 우리를 감싸주었다. 밥을 남겨 몇십 분씩 혼나고 있을 때도 엄마는 내 편을 들어주었다. 그땐 엄마가 무척 커 보였다. 비록 경제력을 가진 아빠를 이길 수 없다는 건 어릴 때 눈치로도 알 수 있었지만, 엄마만이 아빠와 큰 소리로 싸울 수 있는 인물이었다. 엄마도 알고 있었다. 당장 당신이 남편을 이길 순 없지만, 자식에게 그늘쯤은 되어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엄마는 내가 다 큰 다음 당신의 적극적인 방패가 되어 줄 거라 기대했을까. 그래서 방패는커녕 당신을 피해 다니는 딸에게 실망했을까.


지금 아빠는 나이가 들었다. 오히려 나와 언니의 큰소리에 먼저 의견을 굽히는 날도 생겼다. 그렇게 서로를 경멸하더니 아빠는 종종 먼저 엄마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나는 이제 그 누구의 방패도 아니다. 그래서 그런 아빠의 태도 변화를 그저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다. 나는 전의를 상실했다. 엄마가 정말 내게 그런 역할을 기대했던 거라면, 난 해내지 못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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