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쓰레기통이 아니었다고

엄마와 아빠는 자주 싸웠다.

by 정그믐

엄마와 아빠는 자주 싸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는 정면돌파형이었고 아빠는 회피형인 사람이었다.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고 나를 낳고 길렀다. 그 과정은 여느 집처럼 마냥 순탄치는 않았다. 다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여느 집보다 심했다. 남들이 듣기에는 으레 있을 부부싸움이었어도 내게는 매번 이 전쟁이고, 휴전의 연속이었다. 자녀가 어릴 때 부부싸움을 하면, 그 자녀에게는 전쟁과 같은 공포를 심어준다는 사실도 비교적 최근에야 알았다. 그래서 여전히 내가 원망하는 감정이 있는 데에는 그런 부부 전쟁이 한몫했을 것이란 추측도 최근에야 하게 됐다.


아빠는 싸움 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리를 질렀고 엄마와 일절 대화를 하지 않은 채 방문을 쾅 쾅 닫았다. 그래서 본가의 아빠 방은 문틀이 그 충격들 때문인지 약간 비틀어져 있다. 어릴 적부터 그런 모습을 보이는 아빠가 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그런 아빠가 답답했는지 자꾸만 대화를 시도했다. 엄마는 자꾸만 몰랐다. 내가 누누이 엄마와 아빠는 성격이 다르다, 엄마는 바로바로 털어놓는 타입이라면 아빠는 혼자 삭히는 타입이라고 말했으나 엄마는 알겠다고 하면서도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내가 보기엔 서로가 나 먼저 이해해달라고 고집을 부리는 것 같았다. 크고 나서도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던 엄마와 아빠의 부부싸움은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걸 걱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가정의 불화는 자녀를 지치게 만든다. 그리고 포기하게 만든다. 나는 변명하자면 집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제력을 쥐고 있던 아빠를 그냥 내버려 두라고 엄마를 설득한 경우가 많았다. 그게 미웠을까, 어느 날 엄마는 내게 친척 집 이야기를 꺼냈다.


“그 집은 엄마랑 아빠랑 싸워서 꽁한 거 같으면 애들이 먼저 와서 왜 그러냐고 풀라고 싹싹하게 군다더라.”

“...?”

“너는 왜 못 그러니?”


엄마는 당신이 싸우는 걸 보면서 아무 생각도 안 드느냐고, 내게 묻고 있었다. 많은 생각이 들긴 했다. 말려야 하나, 누구 편을 들어서라도 뜯어말려야 했나, 그럼 멈췄을까. 자신들보다 30살 넘게 어린 자녀의 이야기를, 핏대 세우며 싸우던 중에 귀담아 들어주긴 했을까.


너는 왜 못 그러니


이 말은 내게 죄책감과 반항심을 동시에 주었다. 그리고 머리가 커지면서 반항심의 비중이 더 크게 남았다. 나는 왜 싹싹하게 애교 부리며 부모님의 불화를 잠식시키지 못했나. 적어도 엄마와 아빠의 싸움엔 내 탓이 없다는 걸 알고도 나는 삐뚤어졌다. 점점 엄마와 아빠에게 차갑게 말하기 시작했고 남의 일처럼 대꾸했다. 깊이 생각해도 답이 없는 문제를 엄마와 아빠가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그 시기 삐뚤어지고 싶은 명분을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뒤로 종종 엄마는 내게 넌 왜 그렇게 냉정하니? 라는 식의 질타를 보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당장의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어물쩍 넘어가긴 했으나 속으로는 대답했다. 그럼 내 앞에서 싸우지를 말던가.


아빠는 엄마가 떠난 후 내가 엄마에게 들었을 때는 싸웠던 것 같은 상황도 추억으로 이야기했다. 물론 정말 두 사람 다 추억이었던 이야기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럴 때 그냥 듣고만 있다. 아빠는 그렇게 함으로써 엄마에 대한 미안함을 덜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 방법으로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도, 원망도 덜어낼 수 없었다. 그런 포장 사이로 서로 고함치던 우리 가족의 모습이 비집고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 말을 해줬다면, 엄마는 스트레스받지 않고 더 오래 살았을까. 나는 엄마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서로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라고. 적어도 그 점에 대해서는 미안하다고.


내가 엄마에게 이 말을 해줬더라면, 우리는 서로를 끊임없이 찾으며 마지막 7시간을 보냈을까. 사실은 너무 힘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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