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끓여놓은 국 한 솥
아유 우리 00이 어디 놀러 가는 거 좋아했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아이고...
엄마의 화장 날, 친척의 곡소리에는 드문드문 엄마가 뭘 좋아했는지 나열돼 있었다. 내가 몰랐던 건 엄마가 그렇게 여행을 좋아했다는 사실이었다.
안 가본 절이 없다고 했다.
어쩌다 불교 신자가 되었는지 따로 물어본 적도 없었다. 그렇지만 엄마가 절에 가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선명히 기억난다. 갑자기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다며 내가 중학생일 때부터 불교대학에 입학하고 포교사 자격도 얻던 사람이었다. 어떤 점이 엄마의 믿음을 강하게 만들었는지 이젠 물어볼 수가 없으나 불교에 대한, 정확히는 사찰에 대한 애정은 젊은 시절부터 강했다고 했다. 그래서 대학교 재학 시절 이곳저곳 전국의 절이란 절은 거의 다 방문해봤었다고, TV에 절 풍경이 나올 때마다 저곳은 뭐가 예쁘고, 또 저곳은 언제 가봤고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엄마가 가끔 불교 채널을 틀고 감상에 젖을 때면 나는 그러려니 했다. 그냥 대학교 때 절 탐방을 다녔던 게 잠시 생각나서 추억여행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딱 거기까지인 줄 알았다. 절에 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엄마가 다녔던 불교대학에서는 간간이 학생들을 모아 여행을 다녀왔다. 정확히 어디로 갔다 왔는지는 모른다. 궁금하지도 않았고, 엄마의 자랑에도 귀담아들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여행 전날 엄마는 정말 교복 입던 그 시절 그때로 돌아간 듯 들떠있었다. 주로 새벽 시간대에 출발하는 여행이었는데도 피곤한 기색 없이 일어나 룰루랄라 집을 나섰다. 그리고 다녀오면 그날 저녁 식탁은 엄마의 여행담으로 가득 찼다. 버스를 탈 때 누구랑 같이 짝을 지어 앉았다니, 사진을 다른 사람 휴대폰으로 찍어서 받아야 한다느니, 신나서 이야기하는 엄마가 귀엽게 보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내 귀에는 불교대학에 다니는 주부들의 소풍으로 들렸고, 그땐 흥미롭게 들리지 않았다. 그때 내가 충분히 맞장구는 쳐주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의 그런 이야기보따리가 단순히 절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집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넘쳐났다는 걸 알아채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서울로 대학을 간 뒤에 엄마가 서울 구경을 하고 싶다는 뜻을 넌지시 내비친 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빠에게 놀러 갔다가 자고 내려갈 수 있으니 서울에 자취방 좀 얻어주자고 설득하다가 싸운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엄마는 여행을 좋아했다. 그런데 내 기억 속 엄마는 여행을 떠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적어도 내가 태어난 이후로 집을 떠난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엄마는 내가 몇 학년 때 현장학습으로 어디를 다녀왔는지 다 알았다. 시간이 지나 이야기해도 먼저 기억을 소환해 이야기했다. 엄마는 다 알았고, 나는 다 몰랐다. 나는 서울살이를 시작할 때 미련 없이 짐을 싸 들고 떠났다. 그러나 엄마는 국을 한 솥 끓여놓고도 1박 2일이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쿨하게 돌아와 엄마가 건네는 인사는 고정적이었다.
엄마 없이 밥 안 굶고 잘 먹나 걱정되더라.
그래서 친척의 곡소리는 사실 아주 부끄러웠다. 그 순간에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운구를 도와주는 학과 친구들, 발인까지 곁을 지켜준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곳에서 나는 쥐구멍을 찾았다. 굳이 나 들으라는 듯이 말하는 친척이 미웠다. 당신이 뭘 아냐고 따지고 싶었다. 이미 화장장까지 온 상황에 뭘 더 어떡하라고. 나더러 어떡하라고. 가정불화로 고통스러워한 내 심정을 조목조목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만 하다 관두었다. 그제야 알았지만, 상복을 입은 사람들은 그날 다 죄인이었다. 더 해주지 못한 것들만 생각나서 미안함에 몸부림치는 죄인들이었다.
여행을 좋아했던 엄마는 이승에서 아무도 여행을 시켜주지 않자 미웠는지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버렸다. 다시 잡지도 못하게 아주 먼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