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되는데, 글을 쓰고 싶은데, 내일은 꼭 글을 써야지."
라고 말하면서 글쓰기를 얼마나 미뤘는지. 마지막으로 글을 썼던 날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다. 일주일 중에 가장 소중하다는 토요일을 통째로 글쓰기에 투자하던 내가, 글쓰기를 그만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왜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게 됐을까.
1. 본업을 더 잘하고 싶은 욕심
나는 IT 회사에서 서비스 기획이라는 일을 하고 있다. 매일 연차는 하루씩 늘어나지만 실력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날이면 동료들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바보가 된 것 같았다. 나는 하고 있는 일을 더 잘 해내고 싶었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토요일을 글 쓰는 날에서 공부하는 날로 변경했다. 주중에 해내지 못했던 일을 마무리하고, IT 관련 서적들을 읽는데 토요일을 사용했다. 한 동안은 "ㅇㅇㅇ님이 댓글을 남겼습니다." "ㅇㅇㅇ님이 라이킷했습니다." "ㅇㅇㅇ님이 내 브런치를 구독합니다." 같은 응원의 알림이 울리지 않아서 왠지 모를 허전함을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허전함 마저도 덤덤해졌다. 오히려 토요일에 공부를 하는 것이 본업을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 같아 뿌듯했다.
그렇게 나는 점점 글쓰기로부터 멀어져 갔고, 일만 보고 사는 사람이 되어갔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일할 시간이 이번 주밖에 남지 않은 사람처럼 매일을 절박하게 살았다. 그렇다고 내가 맡고 있는 모든 프로젝트가 잘 되는 것은 아니었다. 글 쓰는 토요일을 보내던 날처럼 어떤 프로젝트는 잘되고, 어떤 프로젝트는 잘 되지 않았다. 내 모든 것을 걸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변하지 않는 내 실력을 보고 있자니 나 자신이 더욱 실망스러워졌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노력했고 결국엔 내 모든 것이 타고 없어졌다. 사람들이 말하는 번아웃이 찾아오고 나서야,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프로젝트가 잘 되지 않는 것은 애초에 나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는 동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어떻게 문제의 원인이 나에게만 있을 수 있을까. 그동안 나는 남들에게는 친절하고, 나에게는 엄격한. 내가 그토록 경멸하던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다른 하나는 글쓰기가 내가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돕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서비스 기획을 하다가 힘들고, 지치면 도망갈 수 있는 곳이 바로 글쓰기였다. 글을 쓰면서 그리고 내가 쓴 글에 대한 독자들의 공감과 응원, 의견을 보면서 나는 다시 본업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고 있었다. 즉, 글쓰기는 내가 본업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게소였던 것이다.
2. 몸이 아프니 좀 쉬어도 괜찮겠지
한국에서 하루에 8,000명씩 걸린다는 전염병인 코로나에 걸렸었다. 언론에서 말하듯 감기처럼 지나가는 사람이었으면 좋았으련만, 나는 폐렴까지 앓아서 15일이나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스테로이드는 염증 반응을 억제하는 약물로, 추후에 몸에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지만 그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몸에 퍼진 염증 수치가 일반 사람의 20배 이상이라고 하니 말이다. 문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던 폐쇄병동에서 혼자 쓸쓸히 죽어가고 싶지 않았던 나는, 코로나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 중에 <아침에 피아노>라는 책이 있다. 김진영 작가가 죽음을 얼마 남기지 않고 썼던 글들을 엮어서 만든 산문집인데, 이 산문집을 읽고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다면 꼭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런데, 막상 죽을 수도 있는 사람이 되니 글쓰기는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오늘보다 내일은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침대에 누워 호흡에 집중하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매일 밤, 백예린의 산책을 들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과 바깥세상의 아름다움을 상상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정말로 다행인 것은 스테로이드 치료가 부작용 없이 잘 되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나는 입원한 지 25일이 지나고 나서야 퇴원을 할 수 있었다.
물론 퇴원을 하고 나서도 폐렴을 치료하기 위해서 한 달 동안 통원치료를 받았다. 병원에 있을 때보다는 비교적 활기와 에너지가 생겨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회사로 복귀해서 일을 잘하고 있을 만큼 회복했다. 그러니까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글을 쓸 수 있지만, "괜히 무리했다가 다시 아프면 안 되니까, 조금만 더 쉬자."라는 핑계로 어제까지도 글쓰기를 포기하고 있었다.
3. 인생의 순간을 기록해서 간직하는 방법
토요일인 오늘도 동네 카페에서 주중에 밀린 업무를 보고 있었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는데, 넓은 통창 너머로 올해 처음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첫눈치고는 제법 많이 내려서, 지나가는 사람들 오토바이들 차들이 눈에 뒤집혀서 뒤뚱뒤뚱거렸다.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고 있는 눈을 보고 있으니 내 마음도 왠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카페 안에 있는 사람들도 나랑 비슷한 기분이었는지 다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용하던 카페 분위기도 즐거운 대화가 오고 가는 소란스러운 분위기로 바뀌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던 일은 좀 미뤄두고, 나도 첫눈을 즐기기로 마음먹고 눈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요즘 방영하고 있는 <그해, 우리는>에서 나온 대사가 떠올랐다.
"내 일상을 영상으로 다시 볼 수 있게 되면, 내 인생에서 순간을 기록해 간직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값진 건지 알 수 있어." 방송사 PD가 친구를 만나, 청춘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에 출연시키기 위해 설득하던 말이다. 오늘 카페에서 올해 내리는 첫 번째 눈을 가만히 보면서, 이 아름다운 일상을 그냥 흘려보내기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위의 대사에서 영상을 글로 바꿔서 다시 읽어보았다. 내 일상을 글로 다시 볼 수 있게 되면, 내 인생에서 순간을 기록해 간직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값진 건지 알 수 있어. 입으로 이 문장들을 뱉고 나니 정말로 글이 다시 쓰고 싶어졌다.
4. 비대면 시대에 글쓰기란
요즘은 정말로 사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다. 근무도 재택근무를 해서 사람을 대면할 일도 없고, 화상회의를 한다고 해도 일과 관련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근무뿐만 아니라 친구들과의 만남도 상당히 줄었다. 코로나 때문에 집 밖에서 만나긴 무섭고, 그렇다고 집 안에서 만나기는 민망하니 말이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내가 후회하고 있는 건 무엇인지. 나에 대해 그리고 사람들의 생각을 주고받을 일이 없어졌다. 자연스럽게 나라는 사람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러니, 오랜만에 친구들, 동료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힘들어졌다. 나에 대한 질문을 해도 대답하는데 제법 긴 버퍼링이 필요했고, 오래 고민해서 말한 대답도 영 시원치가 않았다. 요즘 같은 비대면 시대에 나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 가장 쉬운 방법은 단연 글쓰기다.
5. 차를 사기 위해 글을 쓴다
책을 출판해서 그 인세로 차를 사겠다는 말은 아니다. 책을 출판하면 나에게 주는 보상으로 차를 사주겠다는 말이다. 사람도 만날 수 없고, 도통 재미가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터라 최근에 소비를 많이 했다. 돈을 버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돈을 쓰는 일은 모든 고통을 잠시 잊어버릴 정도로 행복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소비를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하다가는 불투명한 미래가 아예 깜깜해져 안 보일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래서 단순 소비를 줄이고 성과에 대한 보상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오늘 하루 목표한 일을 모두 수행하면 치킨을 배달시킬 수 있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료했다면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모션 데스크를 살 수 있는 자율(스스로 정한 규칙)이다 . 12월을 맞이해 내년에 목표할 성과와 보상들을 정해보았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책을 출판하면 보상으로 첫차를 사주는 것이다. 내가 사고 싶은 첫차는 레이라는 경차로, 내 인생 로망 중 하나인 차박을 실현할 수 있다. 내가 이룬 성과를 내가 보상해주는 것이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내 생각은 완전히 반대다. 내가 한 일에 대해 내가 스스로 보상해주는 것이야 말로 정말로 중요하고,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글쓰기를 그만둔 이유, 그리고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 이유에 대해 길게 쓰긴 했지만. 사실 이 내용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사람마다 그 이유가 다를 수도 있고, 누구에게 큰 영향을 준 이유가, 누구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이유로든 내가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덕분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다시 연결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 글쓰기가 가지는 가치의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