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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우 Dec 03. 2022

비웃음의 미학

대학 다니면서 웬만한 잡생각은 다 해봤기 때문에, 어떤 고발적인 사실을 들이밀어도 별로 놀랍지 않은 멘탈리티가 길러져 있다. 인간이 부와 권력 앞에서 쉽게 추해질 수 있다는 간단한 사실, 그러나 한 줌 도덕으로도 희망과 절망을 왔다 갔다 할 감수성이 어디 구석에라도 처박혀 있다는 사실 등, 언어로 정리하기엔 까다롭지만 뇌리에 박혀 있는 인간관 같은 게 형성되었으니 헛산 건 아닐 것이다.


모든 게 부족한 시절을 지나며 모든 것을 사회적으로 생각하던 시기도 있었으나, '사회'라는 것이 얼마간 추상적이고 얼마간 상상에 의존하며 얼마나 쉽게 폭력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 차츰 깨닫고, 다수의 횡포라는 간단한 사실이 어떤 집단에나 존재한다는 것, 더불어 다수에 빙의한 개인이 얼마나 포악하고 흉포해질 수 있는지 알 때, 정의나 평등 같은 추상적 개념이 얼마나 허구적인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무지성 자유주의자들만큼 뇌 빼고 살기에는 그만큼 세상이 마냥 재밌지 않으나, 자족적인 인간들을 쓸데없이 반성시키면서 쾌감을 느끼는 도덕적 우월론자들만큼 역겨운 게 없으니, 그 사이의 균형이라는 게 중요할 것이다. 왜 도덕 과학을 먼저 공부한 사람들이 글을 빡세게 쓰는지는, 믿을 수 있는 거는 인간밖에 없지만, 그 인간이라는 게 당최 믿을 만한 것들인지에 대해 알기가 어렵다는 비참한 실존적 사실 때문이겠다.


회의주의자들이 모였을 때, 글쓰기는 얼마나 거칠어지는지... 물론 모든 것을 회의한다면 한 마디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말과 글 자체를 회의해버린다면, 해체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고, 더 나아간 자들은 해체주의마저 해체하고, 비언어 혹은 무언어의 세계로 침잠하겠지.


어쨌든 인간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걸 좋아하고, 그런 여러 복잡한 장치들조차 일종의 위안 요소에 불과하게끔 소화한다. 나는 오브제 자체를 objective하게 보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그런 시선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귀한 영혼의 소유자라고 생각한다.


관습주의자들은 세계는 바꾸기 어려운 관성으로 이어진다고 보겠고, 어느 것 하나 새로울 게 없으니 인간의 행위도 새로운 구석 하나 없다고 조소하겠지만, 그런 도덕주의적 관성이야말로 역사적 유물론과 공산주의의 징후이니, 열심히 비웃을수록 비웃는 대상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이처럼 철학적 차원에서 진보와 보수는 종이 한 장, 텍스트 기표 하나 차이에 불과하다. 기호논리학자들의 엄밀함의 승리다. 재미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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