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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Mar 26. 2023

한 달 늦은 크로스핏 오픈 2023 장문의 후기

[크로스핏의 맛] 16. 크로스핏 오픈 2023

지난 3월 6일, 크로스핏 오픈 2023 온라인 예선이 끝났다.


올해도 전 세계 크로스피터들이 참여하는 축제의 장-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 표현이라 써놓고도 민망한 기분이 들지만-인 크로스핏 오픈 2023이 찾아왔다. 올해로 3번째 참가인데, 매번 할 때마다 수능을 치르는 느낌이어서 그런가 오픈을 앞둔 2월 즈음부터는 괜스레 더 긴장한 상태였다. 지난 해보다 못하면 어쩌나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고, 내심 작년에 비해서 조금이라도 성장하지 않았을까 기대도 들고. 여러모로 뒤숭숭하다고 해야 할까.


평소에 입버릇처럼 남들과 비교하지 말자고 이야기하곤 했지만, 아무래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뜻대로 되지 않아서 작년의 나보다 잘하는 건 너무 당연한 전제쯤으로 여기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거기에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잘하고 싶다는 욕심까지 더해지니 즐긴다는 마음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23.1 오픈 맛보기

첫 번째 와드로 공개된 21.1은 남자 Rxd 기준 그렇게 무겁지 않은 무게에 고난도 체조 동작이 적절히 섞인 와드였다. 20분 안에 최대한 많은 횟수를 수행해야 하므로 심폐지구력도 뛰어나야 하고 여러모로 밸런스가 필요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두 번밖에 측정하지 못했는데, 첫 번째 기록이 더 좋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하는 게 낫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단순히 내 전략의 문제였을 수도 있고.


그래도 도저히 못하겠다. 힘들어죽겠다.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이제는 거의 한 달이 지나서, 희미한 기억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인가 다른 와드에 비해서 쓸 말도 거의 없다. 한 가지 있다면 링 머슬업까지 가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거나 한번 링 머슬업을 시도하면 최대한 많이 수행하는 게 관건이 아니었을지. 링 머슬업이 가능하더라도 평소에 다른 동작들과 함게 해보지 않았고 링 머슬업도 꾸준히 하지 않았던 게 패착이었다.


23.2 약점을 마주하다

두 번째 와드는 왕복 달리기에 버피 테스트와 턱걸이가 혼합된 동작을 최대한 많이 수행해야 하는, 그야말로 체력 승부였다. 연이어 주어진 5분 안에 최대한 무겁게 1번 쓰러스터를 들어야 하는데 여기까지 가는 일 자체가 너무 버거워서, 쓰러스터는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왕복 달리기와 버피, 단순하기 그지없는 동작들 2개가 조합된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들 수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첫 번째 기록은 예상보다 너무 형편없었다.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평소에도 왕복 달리기에 약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는데 약한 수준을 넘어서서 형편없는 쪽에 가까웠던 것 같다. 내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최고조에 달한 건 두 번째 측정 때였다. 1개 차이긴 했지만 첫 번째보다 기록은 더 나빠졌고, 심지어 힘들기는 체감상 첫 번째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23.1도 재측정했을 때 기록이 나빠진 채로 끝나서, 나의 마음가짐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회의감이 들었다. 그런데 두 번째 와드도 똑같은 수순을 밟아버리다니.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어서 와드를 앞두고 나름대로 분석까지 해봤다. 대체 어느 구간에서 이렇게까지 시간이 밀린 건지. 각 구간별로 소요된 시간을 일일이 시트에 기입한 후 계산해 보았다.


계산을 해보니 의외의 결과와 마주할 수 있었다. 셔틀런이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문제인 쪽은 버피 풀업이었다. 버피 풀업 1개를 약 5초 페이스로 수행하면 와드 후반의 30개 구간에서 상당한 개수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버피 풀업 1개당 6초 후반이 걸렸다. 초반 5개와 10개를 5초보다 약간 빠르게 끝내긴 했만, 15개부터 느려지기 시작해서 20개부터는 거의 6초 아니 7초까지 쳐지고 있었다.


아마 15개도 초반은 6초에 간신히 따라붙다가 뒤로 갈수록 거의 7초나 8초에 가까워지는 게 아니었을지 추측해 본다. 그러니 25개를 겨우 끝내고 30개째에 들어가면 몇 개 하지도 못 했던 것이었다. 이걸 엑셀 표로 정리해서 어느 구간에서 좀 더 속도를 내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선 버피 풀업 동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Youtube와 인스타그램의 크로스핏 오픈 후기와 팁을 뒤적였다. 이런 자신을 보면서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마음 한 편에는 부담감도 있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3번째에도 기록이 나빠지거나 그대로라면? 받아들여야겠지만 결코 속이 편하지는 않을 거란 예상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Box 한편에 적혀있는 문구를 보면서 한 가지 다짐했다. 진짜 와드 도중에 너무 힘들어서 그대로 포기하고 싶어지면 내가 왜 이걸 시작했는지를 떠올리자자. 그렇게 3번째 측정을 시작했다.



세 번째 측정을 하고 있던 그 순간에는 이게 맞는 건가 싶었다. 버피 풀업 5개나 10개까지는 할만했다. 15개부터 슬슬 호흡을 유지하기가 벅차온다. 20개부터 진짜 시작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페이스를 늦춰선 안 된다. 사이사이에 포함된 왕복 달리기도 마찬가지. 편도에 얼마나 걸리는지 걸음수는 대략 8걸음. 보폭을 고려하면서 최대한 템포를 늦추지 않으려고 했다.


옆에서 코치님이 계속 끌어주지 않으셨다면 더 늦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25개를 끝내고 마지막 30개 때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숨이 차서 도저히 못할 것 같았는데, 꾸역꾸역 끝냈다. 기록은 138. 세 번의 측정 중 가장 좋은 기록이었지만 잘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기록이었다. 끝나고 나니 1개만이라도 더할 걸 아쉬웠다. 하지만 머리가 식은 지금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다시 한다고 해서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나는 정말 23.2에 한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나의 능력, 가용 가능한 전략과 방법에 대해서 고민한 끝에 내놓은 최선의 결과가 138이라는 숫자였다. 후회도 되지만 그렇다면 담담히 받아들일 수밖에. 다음번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평소에 훈련을 해두자고 결심했다.


23.3 요행과 훈련

마침내 23.3. 다행스럽게도 심폐지구력을 다른 와드만큼 요하지 않는 와드였다. 본인의 실력에 따라 짧으면 6분, 길어도 12분 안이면 끝나는 구성이었다. 벽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동작인 월 워크, 그리고 이단줄넘기를 끝낸 후 스내치를 수행하는 방식이었다. 점점 더 무거워지는 스내치가 이 와드의 가장 큰 문턱이었다. 바로 185파운드 스내치.


스내치 개수가 줄어드는 게 그나마 다행이지만, 95파운드에서 135파운드로 갑자기 무거워지는 데다가, 간신히 135파운드까지 6분 안에 끝낸다고 하더라도 무반동 물구나무 서서 팔굽혀펴기가 기다리고 있다. 그다음도 만만치 않다. 185파운드 스내치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럼 남아있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봐야 1분 40초에서 1분 남짓. 나의 목표는 남은 1분 안에 단 1개라도 185파운드 스내치를 들어보는 것이었다.


첫 번째 측정 때는 어떤 와드인지 맛보기로 진행해 봤고, 두 번째 측정 때는 좀 더 쉬는 시간을 가진 후에 185를 시도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첫 번째 때만 해도 데드리프트 동작까지만 했을 뿐인데도 그 무게에 놀라서 놓쳐버렸다. 두 번째는 조금 적응이 됐지만 어김없이 실패. 와드가 짧아서 대미지가 아주 심하지는 않아서 세 번째 측정까지도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대미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고, 하루에 2번이나 할 수 있을 만큼 녹록지는 않았다.


결국 기록 제출 당일 새벽에 체육관을 찾아가서 4번째 도전까지 시도했지만 단 한 번도 들지 못했다. 185파운드 스내치를 들어보려고 그렇게 기를 써봤지만 연습 때나 들 수 있는 무게를 와드 때 든다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1개를 드는 데 성공하고 만약 시간이 허락해서 2개를 든다면 얼마나 기쁠지를 상상하면서 그 짜릿한 기분을 글로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희망적인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는데 망상은 망상으로 끝이 났다.


크로스핏 오픈 2023의 끝

23.3을 마지막으로 크로스핏 오픈 2023이 마무리되었다. 최종 성적은 전 세계 상위 84%, 그리고 아시아 86%, 한국 85%. 지난해 기록인 81%보다 3% 상승해서 운동을 아주 대충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나 이번 오픈에서는 나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알 수 있었고-왕복달리기 그리고 풀업과 스트렝스, 이러면 전부 다 부족한 거 아닌가?-, 전략적인 관점에서 와드를 바라보게 될 수 있었다. 특히나 후자의 전략적인 관점은 큰 수확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다고 내가 선수를 할 것도 아니고 크로스핏은 어디까지나 취미에 불과하지만 크로스핏이란 운동을 좀 더 진심으로 대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다.


내년 오픈은 또 어떻게 될는지. 내 목표를 평생 운동하는 것으로 삼은 만큼 2024년에도 오픈 후기를 작성하고 있을 거라 기대해본다. 작년에도 결과가 무척이나 못마땅했다고 글을 남겼는데 올해도 아쉬움 가득이다. 언제나 운동을 잘할 수는 없다는 걸 알지만, 마음을 편하게 먹는 게 잘 안 된다. 아무래도 크로스핏이 기록 경쟁 운동이다보니, 애초에 운동을 시작한 목적을 자꾸만 망각하게 된다.


나는 몸을 움직이고 싶어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헬스를 포함해서 다른 어떤 대중적인 운동들보다 크로스핏이 나와 가장 잘 맞았고, 평생토록 운동하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 크로스핏을 계속하고 있다. 크로스핏 오픈 같은 대회 참여, 평상시의 기록 경쟁도 중요하지만 어디까지나 동기 부여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대충 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최선은 다하겠지만 수단에 빠져서 목적을 망각해서는 곤란하지 말자는 정도.




이번 오픈을 하면서 나는 내가 왜 운동을 하는지 돌아보았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걸까. 어쩌면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순간에 도파민이 쏟아져 나오는 그 감각 때문에 나 자신을 혹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때도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지금의 운동 강도와 볼륨을 유지하지 못하면 그때도 크로스핏을 즐길 수 있을지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운동을 하는 이유.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건강하게 살고 싶으니까. 그리고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면서 단 한순간이라도 머리로만 사는 시간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으니까. 그 이유들을 곱씹으며 운동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 또한 새롭게 다져본다. 경쟁을 앞에 둔 상황에서 최선은 다하겠지만, 운동을 시작한 목표를 망각하지 말자고.


그리고 운동을 좋아하는 또 한 가지 이유. 어쩌면 평상시에 지나치고 말았을 깨달음의 순간들이 불쑥 찾아온다는 것. 단순히 운동에서 내가 어떤 점이 부족한가 뿐만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잘 알 수 있었다. 평소에도 연습하지 않았던 동작은 결코 늘지 않으며, 또한 갑자기 잘하게 되는 경우도 없다. 자신이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착각하지 말 것. 스스로의 노력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능력 이상의 극적인 결과를 바라거나 자기 자신을 향한 연민이나 동정에 빠지지 말자.


어쨌거나, 정말로 크로스핏 오픈 2023은 끝났다. 누군가는 쿼터 파이널로 향했고, 누군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 역시 다시 평소처럼 회사에 나가고, 퇴근해서 운동을 하는 나날로 돌아왔다. 내년에는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 위해, 그리고 내가 원하는 바 -그놈의 플란체!-를 이루기 위해서 다시 달려야 할 시간이다. 물론 잠깐 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어김없이 운동을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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