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오징어 시점
"내 이름은 오징어. 따듯한 동쪽 바다 깊은 곳에 살고 있지. 어젯밤엔 무서운 일을 당했는데 내 얘기 한 번 들어볼래? 글쎄, 어제는 밤바다를 누비며 유유자적 춤을 추고 있었는데 말이야 수면 위로 보름달같이 밝은 빛이 보이더라고. 내가 또 호기심이 많아서 불빛이라면 사족을 못 쓰잖아? 불빛을 따라 내려오는 동아줄을 덥썩 잡았지. 그랬더니 몸이 '쑥'하고 빨려서 금세 물 밖으로 내동댕이 쳐지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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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릴새도 없이 작은 웅덩이에 옮겨졌어. 거긴 나처럼 신기한 경험을 한 친구들이 많더라고. 그런데 이게 웬걸. 사방에 몸을 부딪혀도 나갈 곳이 없는 거야. 당황함과 두려움에 넋을 놓고 있었더니. 어느새 달빛 보다 뜨겁고 밝은 하늘이 펼쳐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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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벅적한 소리에 일어나 보니 나는 시뻘건 다라에 옮겨지고 있었어. 처음 보는 생명체들은 나를 보며 말다툼을 벌이 듯 하염없이 열변을 토하고 있고. 그중에는 냄새나는 하얀 연기를 공기 중에 태우기도 하더라. 여러 생명체의 몸을 거친 나는 다시 웅덩이에 빠졌어. 이번엔 아까보다 더 작은 곳이야. 고인 공간이었지만 다행히 쾌적한 산소는 나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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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임거림이 심하던데, 투명한 벽 너머로는 내가 물속에서 다니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어. 온통 신비하고 놀라운 풍경의 연속이던데. 도데체 나는 어디로 끌려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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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오징어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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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김민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