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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정연 Jan 09. 2019

원치 않는 부모님 투자에 부담을 느끼는 아이들

원치 않는 부모님 투자에 부담을 느끼는 아이들

“성적에 대한 잔소리가 모두 나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가 성적을 올리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과외를 받고, 영양 보충제를 먹는 등 이런 행위들이 부모님이 나에게 투자를 하는 것으로 느껴 부담된다. 가끔 내 자식 잘 크라고 하는 뜻이 아니라 투자를 하고 나중에 잘 되면 효도 받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느껴지는 부러움과 인정을 위함인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물론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걸 알지만 꼬일 대로 꼬여버린 생각이 나에게 더 큰 부담을 준다. 그러므로 난 무서웠고, 겁을 먹었고,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한 걱정들로 가득해서 10대라는 아름다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여학생이 상담 중에 적어낸 글이다. 이 학생은 행실이 반듯하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미루지 않으며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는 모범학생이다. 처음에 이 여학생을 만났을 때는 쾌활하고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말수가 적어지고 쾌활함이라는 것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 이유가 평소 궁금했는데, 이 글을 보고 어느 정도 이해를 하였다.

한 남학생도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아빠가 저에게 계속 돈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싫어요. 솔직히 과외를 다녀도 자주 째고 놀러 다니는데 가뜩이나 돈이 없어 말씀하실 때마다 짜증 나고 그래요. 부모님은 제가 잘되기 위해 동생 대신 저에게 투자한다고 하실 때마다 미치겠어요. 차라리 그럴 바에 모든 걸 그만두고 싶어요. 엄마는 제가 학원이라도 다녀야 어느 정도 성적을 유지하는 거로 생각하시면서 학원비 주실 때마다 받기가 싫어요. 나는 그게 아니라 어차피 다녀도 제가 부담돼서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이런 생각을 하는 학생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부모님이 이렇게까지 나에게 해주시는데 좋은 대학교에 가지 못해 기대를 충족시켜 드리지 못하면 어떻게 할지?’라는 두려움이다. 더구나 요즈음 아이들은 그런 환경에 익숙해 있다 보니 돈에 대해 민감하다. 비싼 대학등록금을 내고 졸업하면 과연 그만한 대가가 있을지 의심을 한다. 학생들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음을 이해한다.

한편 부모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이 못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다. 주었으면 주었지 덜 주는 마음이 아니다. 상담하면서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 거의 ‘다 자기 잘되라고 그러는 거지. 괜히 그러겠어요! 부모 마음을 너무나 모르네요.’라고 말씀하신다.

먼저 이런 점에 대해서는 부모님과 학생이 서로 이해하고 인정할 부분은 인정해야 한다.

학생들은 ‘투자’라는 생각을 지워야만 한다. 투자라는 개념은 ‘불확실성이 수반된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하여 시간과 정성 그리고 자본을 주는’ 의미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 자신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재능이 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므로 불확실성이 수반된 이익이 아니다. 즉 보장된 확실한 이익이다. 부모님은 미래에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성인들과 대화하면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 “부모님이 나에게 조금만 더 해주었으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텐데.”

생각의 관점을 바꿔야만 한다. 어떤 학생들은 “부모님이 이렇게 해주는 것은 다 자기들을 위한 거예요.”라고 말한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신이 ‘삶의 주체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부모님이 주시는 모든 것들은 자녀들이 자신의 앞길을 잘 헤쳐나갈 방법을 터득하고, 앞으로 혼자서 잘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더 주는 거지 결코 부모님이 이득을 보기 위한 것은 아니다. 만약 부모님이 해주시는 것들이 자신의 꿈과 다른 길이라면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투자라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때 자신의 꿈은 한결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부모님들도 인정해줘야 할 것은 있다.

‘공부가 쉽다고 생각하시는 부모님. 공부 어려운 것을 이해 못 해주세요.’

‘성적에 집착하는 의미 없는 잔소리가 너무 많으세요.’

‘중학교 때까지는 집에서 가족과 다 같이 밥을 먹고 나서 과일 깎아 먹는 시간이 많이 행복했다. ‘집’이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느낄 수 있는 안정감이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그런 안정감이 없어 그립기만 하다.’

상담해보면 학생들은 너무 지쳐있다. 체력보다는 정신적인 면에서 너무 지쳐 몸은 여기 있는데 정신은 계속 방황해 종종 이름을 불러도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 대부분 부모님이 어디가 좋은 학원인지 엄마들 정보를 통해 알아내 아이에게 무조건 다니라고만 하시는데 이런 결정을 내릴 때 과연 아이의 의견을 물어보았는지 궁금하다. 단순한 의견이 아닌 마음에 있는 깊은 의견을 말하는 것이다. 자신 스스로 부족한 과목을 알고 학원에 다닌다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만 나타난다. 설령 아이가 다니기 싫다고 하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자세히 들어보고 거기를 왜 다녀야 하는지 아이가 받아들이도록 이해시켜야만 한다.

‘집’은 재충전해주는 휴식처와 같은 편안함 마음이 들게 해야 한다. ‘부모님에게 바라는 사항들’이라는 항목에서 10명 중의 6명은 ‘솔직히 집이 싫다’라고 작성되어 있다. 위에서 어느 학생의 답변에 집이라는 단어 자체가 안정감이 들지 않아서 그립다고 언급한 학생들이 우리가 알지 못할 정도로 많다는 것이다.

역사 다시 보기 ‘천일야史’ 프로에서 신선로에 대한 방송이 있었다.

신선로를 개발한 정희량은 장원 급제한 인재 중의 인재다. 항상 자만심이 넘쳤지만 정희량 어머니는 겸손을 강조했다. 하지만 문인 김종직의 역모에 연루되어 그의 제자였던 정희량은 역모죄로 곤장 백 대와 3년의 유배형에 처하게 된다. 정희량 어머니는 입맛이 까다로운 아들을 위해 유배지까지 가서 밥상을 차려준다. 유배지에서도 어머니께 반찬 투정하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어머니 이제 그만 하세요. 솔직히 어머니의 그런 조언들 저한테 부담이에요. 꼭 자식을 통해 행복해지려는 것 같잖아요.” 그런데 그날이 어머님을 마지막으로 본 날이었다. 유배지에서 어머니의 비보를 듣고 정희량은 슬퍼하면서 유배지에 밥을 차려준 날을 후회하며 슬픔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정희량은 어머니의 조언을 떠오르게 된다.

“음식의 맛은 여러 상황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서 생기는 것이야. 배가 고픈 상황이 첫 번째 조화요. 각각의 재료들이 어우러진 것이 두 번째 조화야. 마지막으로 조금은 여유가 생긴 네 심정이 세 번째 조화란다. 우리네 인생도 이 음식처럼 조화롭게 살아야지 않겠어. 지금 같은 불운 뒤에는 분명 행운이 올 거야. 그게 조화니까 말이다”

정희량은 평소 어머님의 조언과 자신을 위한 마음이 부담되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자신의 잘못된 마음을 깨닫게 되었다. 정희량은 유배지에서 적적할까 봐 남겨두고 간 ‘주역’을 읽으며 물과 불의 조화를 깨닫고 신선로를 만들어 지금까지 대표적인 궁중요리를 전해주었다.

부모와 자녀 사이는 어떻게 보면 갈등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희량의 어머님의 말씀처럼 배가 고픈 상황, 재료들의 어우러짐, 그리고 조금은 여유가 생긴 세 번째 조화처럼 부모와 자녀의 서로 다른 어려운 상황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조화가 생길 것이다.

“나는 이미 큰 선물을 받아서 너를 원망할 수도 없는 것을……. 너는 날 엄마로 만들어줬잖아. 누가 뭐라 하든 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이야. 넌 나한테 있어서 시들지 않은 꽃이자 꺼지지 않는 화로라고~”

정희량 어머님의 마음이 담긴 말씀처럼 모든 부모님의 마음은 똑같다. 부모님이 ‘투자’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 자신의 꿈을 위해서 내가 직접 ‘투자’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인생은 부모님이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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