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가던 날
10년간 내 아내 같은 집을 떠나며...
이사 가던 날 뒷집 아이 돌이는
각시 되어 놀던 나와 헤어지기 싫어서
장독대에 숨어서 하루를 울었고
탱자나무 꽃잎만 흔들었다네
지난 버린 어린 시절 그 어릴 적 추억은
탱자나무 울타리에 피어오른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이사 가던 날'이다.
아들과 거의 10년을 살았던 집에서 나왔다. 포장이사였지만 하루 전부터 이삿짐을 정리했다. 아들은 멀리 떠나 있어 혼자 이삿짐을 정리하며 10년을 되돌아보았다.
늘 하던 습관처럼 아침 일찍 창문을 열고 백운산의 일출을 보며 아늑하고, 행복했고, 고맙고, 감사했던 나의 집에서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17평의 크지 않은 아파트였지만 나와 나의 아들에게는 늘 평온한 인식처였다. 그 집에서 나는 꿈을 꾸고 꿈을 이루기도 했다. 그 집에서 밤을 새우며 공부했고, 미친 듯이 제안서를 썼고, 책도 1권 집필하였다.
또한 사랑하는 아들이 혼돈의 청소년기를 보내며 나를 울게 했고, 힘들게 했던 추억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집이다.
집이란 무엇일까? 안식처가 아닐까?
너무 힘들어 푹 주저앉고 싶을 때, 땅을 밟고 있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때 나를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었던 나의 집.
아들이 학창 시절 나와 작은 식탁에 앉아 아침과 저녁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었던 나의 집.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아픔을 같이 해 주었고, 그래서 내 아픔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의 집.
아내가 없는 나는 그 집이 내 아내였다. '집' 사람...
아주 단출한 이사 짐을 싸며 눈물이 났던 것은 이제 다시는 내 집으로 돌아올 수 없는 애틋함 허전함 때문이리라...
웃음이 났던 것은 힘들고 행복했던 추억 때문이리라...
마지막 현관문을 닫으며 다짐했다. 지난 10년 나의 집에서의 아픔, 희망, 행복을 기억할 것이라고...
그리고 새로이 이사 가는 곳에서도 지난 10년 나의 집에서처럼 아픔은 이기고, 희망을 품고, 행복을 나누기를 기도하고 기도했다.
지난 10년 내 아내처럼 늘 같이 해준 나의 집, 사랑한다는 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