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주일에 예배하면서 늘 엄마를 위해 기도해 “주님, 사랑하는 우리 엄마 더는 몸도 마음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 데려가 주세요”
내가 교회 찬양대원이야. 지난주 찬송은 '내가 너를 도우리라'였는데 가사 중에 엄마가 생각나는 부분이 있어 더 우렁차게 불렀어.
“세상 일에 실패했어도 너는 절망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다시 일어서게 하리라,
질병으로 고통당해도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다시 일어서게 하리라”
하나님께 기도하고, 원주에서 강릉 1시간 30분을 달려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갔는데 엄마는 먼 거리를 달려간 내가 반가운지 환하게 웃으며 “둘째 왔냐? 바쁜데 뭣 하러 오냐?”라며 늘 하던 말 그대로였어. 그럼 나는 “아들이 엄마 보러 오는데 바빠도 와야지.”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지.
엄마, 아프면 병원에 바로 가자. 골반뼈에 금이 갔으면 병원에 가야지. 침대에서 꼼짝달싹 못하고 3일을 버티니 좋아? 엄마 때문에 3일 동안 아빠도 많이 힘들었고, 엄마가 버티는 바람에 결국 서울에서 형과 형수, 누나, 동생 다 왔다 갔잖아.
엄마, 혹시 오 남매 보고 싶어 그런 것 아니지?
엄마의 그 고집으로 엄마가 그렇게 존경하는 엄마의 남편이 너무 힘들잖아. 엄마 병간호로 아빠도 요즘 힘들어 보여. 그러니, 자식들 말은 안 들어도 되니 엄마가 좋아하는 아빠말씀 좀 듣자.
엄마의 고집을 꺾으려고 아빠가 다 우리를 호출한 거야. 난 너무 멀리 있어 하는 수 없이 늦게 간 거니까 너무 서운해하지 말고...
엄마, 병원비 걱정해? 우리 오 남매 그 정도 돈은 있어.
엄마, 우리 오 남매 불효자식 만들고 싶은 것 아니지?
엄마, 요양병원 가라는 이야기 안 하잖아. 아빠도 엄마 요양병원 가시는 것 반대하셔. 아프시면 병원에 가 치료는 받아야지. 그래야 아빠가 덜 힘들어. 엄마는 아빠 힘든 것 싫어하잖아. 엄마의 남자 아빠를 위해...
월요일은 눈이 많이 와 터벅터벅 걸어 병원에 갔어. 병원 가면서 내 어릴 적 엄마가 눈 오는 날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물을 길어 오시던 생각이 났어. 눈이 오는 날이면 왜 아직도 그 기억이 그리 선명한지 모르겠어. 아마, 애틋함일 거야. 아마, 고마움일 거야.
일요일 병원에서 엄마가 나보고 “둘째야 너도 많이 늙었다.”라고 했지. 엄마가 늙는 동안 나도 그만큼 늙었지. 엄마, 그래도 나는 엄마 덕분에 잘 살았고, 앞으로도 잘 살 거야. 엄마가 살아오신 것처럼 살면 되잖아.
엄마, 엄마가 잘 키운 오 남매 봤지? 엄마 아프다고 득달같이 내려와 엄마 병원 입원시키고, 며칠간 병원에서 엄마 챙기고, 아빠 반찬까지 다 챙겨 놓았어. 우리 집 기둥인 맏며느리 형수님이 가장 고생이 많아. 누나도 매형도 동생도 애썼어. 엄마가 잘 키운 덕분이야.
엄마, 엄마가 늘 그랬지. “우리 오 남매 나쁜 짓 안 하고, 남 마음 아프게 안 하고 잘 커 줘서 늘 고맙다고”
어제 집에서 아빠랑 둘이서 점심을 먹었어. 형수와 누나가 해온 반찬으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부자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 아빠도 나도 집에 엄마가 없으니 허전한 생각이 들었어. 엄마가 늘 있던 그 자리에 없으니 집이 텅 빈 것 같아.
이제 아빠도 나도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 엄마가 없는 시간을 차분하게 준비하고 있어.
사랑도, 이별도 모두 늘 우리 곁에 있는 거잖아. 엄마와의 이별은 분명 아프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추억이 있잖아. 난 엄마와 추억이 많아 엄마가 내 곁을 떠나도 늘 내 곁에 있을 것 같아.
강릉에서 태안 안면도로 올라오는 내내 눈이 왔어. 5시간 동안 운전하면서 노래를 흥얼거렸어. 엄마도 알지 내가 엄마랑 서울 병원 갈 때 불러드린 노래 “모정의 세월”, “고향역”, “전선야곡”, “바람의 노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엄마랑 같이해온 지난 56년은 나에게 대하드라마고 대서사야 그런 멋진 삶을 만들어 준 엄마에게 늘 감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