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가 삶에 일부로 자리 잡으면서 특별한 날이면 달리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렸다. 케이크에 초를 꽂고 둘러앉아 박수치는 거창한 축하 대신 달리며 오늘을 온전히 생각하는 방식으로 축하했다. 특별한 날에 맞게 의미 있는 숫자만큼 달렸다.
크리스마스 아침. 근처 공원에서 2.5km 달렸다. 크리스마스이브날 밤사이에 다녀간 산타에게 선물 받은 RC를 들고 나온 아이가 공원을 누비고 있었다. 그 사이를 유유히 뛰었다.
올해가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지나온 시간을 회상했다. 코로나19는 내 삶을 완전히 바꿨다. 부정적인 시나리오를 모른척하며 지나갈 거라는 희망은 몇 달 뒤 완전히 사라졌다. 병에 붙은 라벨처럼 떼려고 해도 떼어지지 않는 질병이었다. 그런 1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면서 출퇴근 시간에 운동을 할 수 있었다.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던 건 변화로 생겨난 시간적 여유도 큰 몫을 했다.
처음 1분 동안 달렸을 때 160 bpm으로 이완과 수축을 반복했던 심장을 기억한다. 존재감이 없었던 심장이 요동쳤다. '진짜 8주 후 30분을 뛸까?' 하는 의심은 현실이 되었고 7개월이 지났을 때 7km를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됐다. 망연자실 멈춰 있지 않고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달리기를 하면서 한해 성실하게 살았구나 싶었다.
1월 1일에는 새로 부여받은 내 나이만큼 달렸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텅 빈 공원을 달렸다. 달리는 동안 올해 이뤘으면 하는 목표를 생각했다. 3가지 공식적인 목표와 2개의 비공식 목표를 정하고 핸드폰 위젯에 써두었다.
어느새 나이 먹는 일이 무감해졌다. 10대와 20대의 경계에서는 설레었고 20대에서 30대의 경계에서는 걱정이 앞섰다. 30대에서 40대의 경계를 넘을 때 나는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까. 한 해가 바뀐다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아는 지금에 나로서는 해가 바뀌었다고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다.
점심으로 떡국을 먹으며 한 해의 시작을 실감했다. 오늘도 달리기 일기에 짧은 소감을 남겨 흘러갈 오늘을 박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