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쓴 Jan 07. 2021

달리기 일기의 가치

달리기 일기는 얼마나 달릴 수 있게 됐는지,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고 싶어서 남겼다. 런데이 앱에 찍힌 오늘의 달린 기록의 스크린 샷을 남겼고 애플 와치를 사고 나서는 피트니스 기록을 남겼다. 밖에서 달리는 날이 많아지고 나이키 런 클럽 앱을 사용하게 되면서 그 날의 풍경과 기록을 같이 남겼다. 지금을 주로 발 사진을 남긴다.


2020년 마지막 날 휴가를 내고 오후 저녁쯤 지인에게 안부 문자를 보냈다. 코로나19로 못 본 지 한참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안부를 물을 겸 카카오톡으로 짧은 문자를 남겼다. 남은 올해 잘 보내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짧은 내용이었다. 그 문자로 이야기의 물꼬가 트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너도 잘 보내라면 짧은 답장을 받기도 했다.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하며 인스타 친구 한 명은 달리기 일기를 잘 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덧붙여 자신도 가끔 달린다는 이야기와 에피소드를 말했다. 한 친구는 "내년부터 저도 달리기 해보려고요."라는 각오를 고백했다. 또 다른 친구는 여러모로 자극받고 있다는 말을 했다.

예상치 못한 달리기 일기의 반응을 들으며 가치를 생각다.


사실 무엇에 가치가 있는가?를 물어보게 된 계기에는 더 이전의 사건이 있었다.

5년 전쯤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었다.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었다. 이 사이트가 과연 오픈은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당시에는 지겹고 재미없는 그래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끝내 그 서비스가 오픈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이후 그 서비스가 오픈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까맣게 잊고 지내던 날. 작년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면서 배워야 하는 프로그램 언어가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런데 그 사이트에 관련 강좌가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무료로. 코로나19로 오프라인 교육이 힘든 시기에 너무 좋은 서비스였다. 강좌를 따라 하면서 학습할 수 있었고 업무에도 바로 써먹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도움받기 어렵고 고가의 강좌를 듣기 부담스러운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 그제야 그 프로젝트의 가치를 알게 됐다.

한편으로 왜 그때는 이런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을까 싶었다. 그 프로젝트를 하면서 한 번도 그 서비스가 사용자에게 줄 가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걸 알았다. 미리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마냥 괴롭고 피하고 싶은 일로 남지 않았겠다 하는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달리기 일기는 달릴 생각이 없던 친구를 밖으로 나가 달리게 했다. 그로 인해 친구가 조금 건강해지고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면 그로써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치를 지게 된다. 나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고 그 사실을 내가 알았을 때 나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신기하게도. 그리고 나 역시도 한 작가님이 남긴 달리기 일지를 읽으며 달릴 결심을 하게 됐다.

하는 일이 별 볼 일 없이 느껴지거나, 내가 하는 일이 땅 파는 일처럼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그 가치를 생각해보면 의외로 꽤 쓸모 있는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움직이고 그 사람으로 나도 움직이는 멋진 일처럼 말이다. 사람의 의지라는 게 스스로 일으켜 세우기 힘들지만 가끔은 주변 누군가에 의해 쉽게 일으켜 세워지기도 다.




매거진의 이전글 왼발이 오른쪽보다 크고 넓은 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