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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쓴 Jan 24. 2021

러너스 블루

평소 도무지 운동이란 걸 하지 않다가 해서 주 3회 달리기만 했는데도 저절로 다이어트가 됐다. 앞자리가 바뀌고 체력도 꽤나 좋아졌음이 몸으로 느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나가면서 체력적인 변화는 서서히 감소했다. 노력만큼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시기를 견디는 일은 어렵다. 먼지만큼 아주 작은 보상이라도 있어야 그 일을 계속할 동기가 된다. 나에게 그 보상은 성장이었다. 건강해졌다는 변화가 있거나 달리는 속도가 빨라졌거나 하는 나아짐이 필요했다. 이렇다 할 변화 없는 한 달이 지나자 달리기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11월과 12월을 비교해보면 12월 월등히 달린 날이 저조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러너스 블루'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나와 '달리는 일' 사이에는 그처럼 서서히 권태가 찾아오고 있었다.
거기에는 지불한 만큼의 노력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는 실망감이 있었고, 열려 있어야 할 문이 어느 사이 닫혀버린 듯한 폐쇄감이 있었다.
그것을 나는 '러너스 블루'라고 이름 붙였다.


몇 년 동안 달리기를 한 것도 아닌데, 느닷없이 권태기를 맞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어젖히고 떠지지 않은 눈으로 하늘을 살피며 미세먼지가 어떤 상태인지 확인했던 때와 비교해보면, 밖에 날씨가 좋지 않으면 그 핑계로 나가지 않으려 나와 마주했고 그런 나를 설득해야 했다. 러너스 블루를 겪으며 성실함과 인내심은 다른 말이라는 걸 알았다. 성실함은 하고 싶은 일에 정성을 다하는 종류였다면 인내심은 하기 싫은 일을 단념하기 않고 이어나가야 하는 고단함이 포함되어 있다. 끈기가 필요한 시간이다. 


권태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마음을 재정비하고 미래의 목표를 세워 벗어나고 있다. 올해 하프 마라톤에 도전해 볼 예정이다. '성장'은 내가 이 만큼 노력했으니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의 결과였다. 그 기대가 꺾이니 당연 실망했다. 그런데 가만 뜯어보니 실망에는 조급함이 섞여있었다. 어떤 노력의 결과는 시간이 필요한데 바로 빠른 결과를 바라다보니 금세 실망하게 됐다. 작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실망을 최대한 유해하는 방법으로, 조급하지 않게 평생 할 운동으로 받아들였다. 사는 동안 계속할 텐데 당장 기대만큼 안 나와도 어떤가. 또 해보고 다르게 해 보고 그러다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오겠지. 이제 8개월 차 러너일 뿐인데. 명언 제조기 유노윤호님도 이런 말을 했다. '슬럼프가 오는 건 자기 인생에 최선을 다한 것 것'이라고... 우연히 시작한 달리기였지만 꽤 진심으로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러너스 블루를 겪는 것이라고 되려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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