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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쓴 Oct 02. 2020

9월, 가을의 문턱

#달리기 #북바인딩 #회사교육 #아무튼언니



#달리기

9월에도 달렸다. 주 3일 달리기는 유지하려고 했다. 달린 흔적을 남기려고 달릴 때마다 발 사진을 남겼다. 한두 장 찍을 때는 몰랐는데 자주 찍다 보니 바닥도 매일 같지 않다는 걸 발견했다. 날씨에 따라 젖은 바닥, 메마른 바닥, 눅눅한 바닥 등 상태가 달랐다. 아침이냐 저녁이냐 또는 해질 무렵이냐에 따라 반사된 색도 달랐다.

여름이 지나가고 쌀쌀해진 계절을 실감하며 긴팔 운동복을 꺼냈다. 아직 반바지에 긴팔이지만 조만간 긴바지에 긴팔을 입고 뛸 날이 올 것이다. 습관처럼 달리기를 하다 보니 감흥이 떨어졌다. 성취감도 느낄 수 없었다. 경기도 국제 마라톤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마라톤도 버츄얼 마라톤으로 바뀐다는 안내 문자를 받았다. 앞으로 함께 달리는 마라톤 대회는 이렇게 각자 달리고 인증하면 매달을 주는 방식으로 바뀔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달린 거리와 속도를 기록해주고 알려주는 앱들이 많아졌으니 굳이 모여서 달리지 않아도 된다. 친구의 추천으로 10KM 마라톤 대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이 역시도 버츄얼 마라톤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대회를 목표로 한 달간 운동하려고 마음먹었다. 기념품이 나이키 용품들이어서 더 마음에 든다.


#북바인딩

오프라인으로 꼭 듣고 싶었던 북바인딩 교육이 있었다. 클래스 101에서 얼리버드 이벤트를 하길래 주저 없이 등록했다. 강좌가 열리기 전 꼼꼼하게 포장된  재료들을 받았다. 퇴근하고 영상을 보면서 나만의 노트를 만드는 일은 즐거웠다. 예전부터 운동화 박스로 노트를 만들고 싶어서 묵혀둔 박스를 꺼내 나만의 북바인딩을 했다.


#회사교육

출근을 하루도 하지 않았다. 2단계보다 더 강력한 2.5단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전사 재택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회의도 온라인으로 진행하라는 강력한 지침이 내려오고 나서 더욱더 갈 일이 없었다.

5일 동안 온라인으로 회사 교육을 받았다. 올해 새로 입사한 300여 명의 경력 사원들을 온라인으로 만났다. 진행방식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줌을 활용하면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알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화면으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각자 영상으로 공부한 내용을 퀴즈로 풀고 유익한 강좌를 들으며 하루가 짧게 느껴질 만큼 몰입도가 좋았다.

인원이 5명도 안 되는 작은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나로서는 대규모의 집합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남들은 피하고 싶다는 회사 집합 교육에 로망 같은 게 있었다. 회사의 방향을 공유받는 시간을 갖고 입사를 환영하는 분위기를 느끼며 '이 회사에 일원이 되었구나.' 하는 소속감을 갖는데 도움이 되었다. 경력으로 입사해서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고민을 나누며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라는 안도감도 느꼈다. 회사에서 경력으로 입사한 사람에게 회사에 흡수되기보다 기존에 다른 문화를 퍼트리는 역할을 기대한다는 말도 움츠려 드는 이방인에게 용기를 주었다. '앞으로 어떻게 일해야겠구나.'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좋았다.


#아무튼, 언니

책의 작가는 여성 경찰관이다. 이 책은 그녀가 인생을 살아오며 만난 언니들에 관한 이야기 책이었다. 남자 직원이 절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는 직업. 그리고 짧은 머리로 인한 에피소드를 읽으며 많이 공감했다. 나 역시 남자 비율이 높은 IT업에서 일하고 머리고 짧기 때문이다.

짧은 머리 스타일이라는 이유로 여자냐 남자냐를 되묻는 무례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그 말들에 지쳐서 약간은 머리를 길렀다는 그 마음도 100%로 이해한다.


난 나에게 남자냐 여자냐 묻는 사람들이, 정말 내 성별이 궁금해서 묻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여자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 모습이 정말 키 작은 남자로 보였다면 그런 무례한 질문을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을 거다. 어라, 넌 여자인데 머리가 짧네? 평범하지 않아. 너는 잘못됐어. 왜 너 혼자 그러고 돌아다니냐. 너 진짜 이상하게 보여. 질문에 가려진 그들의 본심을 내가 모를 리 없다.


IT업에서 여성 엔지니어의 비중이 적다. 특히 연차가 높은 여성 엔지니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직까지 내 나이 또래의 여성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양육을 하게 되면 그만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 선배를 일하다가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 직업을 갖기 위해서 많은 공부를 하고 경력을 쌓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을 시간들이 결혼을 하고 양육을 해야 할 시기가 되면 포기되어야 하는 현실이 나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바람은 가능한 이 업계에서 오래 일하고 싶다. 멋진 여자 선배까지는 아니더라도 반가워할 수 있는 여자 선배 한 명은 될 수 있을테니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내 이름으로 된 책상 하나 갖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학생 땐 널리고 널린 게 책상이었고 싫으나 좋으나 짐을 두고 앉을 자리가 있었는데, 그토록 지긋지긋했던 내 책상 하나를 얻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해야만 하는지.



한 달이 넘게 3 자릿수를 기록하던 확진자 수가 최근에는 2 자릿수에서 다시 3 자릿수가 늘고 줄고를 반복하고 있다. 아직 확실하게 줄었다고 하기엔 불안한 수치다. 날이 차가워지고 있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면 감기와 코로나가 섞여있는 또 다른 펜데믹이 올 거라는 염려들이 나오고 있다. 올해는 이렇게 결국 지나갈 일. 남은 3개월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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