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작은 숲. 아주 심기. 힐링 공간
리틀 포레스트 영화를 본 사람들은 '내 집이 있다'는 사실과 혜원의 '공간'에 부러움을 느낀 적 있을 것이다. 난 공간에 대한 집착이 있는 편이다. 내 공간, 내가 쉴 수 있는 곳,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원 없이 할 수 있는 곳.
아쉽게도 아직 부모님 옆에 빌붙어 기생하는 입장에서는 내 공간을 마냥 주장하고 바꿀 형편은 되지 않지만 그래서 내가 더 카페에 집착을 하고 로망을 그리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나도 아직 명확히 내 길을 걷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 혜원의 마음을 공감하면서도 적어도 저런 친구들이 있고, 저런 공간과 함께 혜원의 입장에서는 괴로웠을 1년일 수도 충만했을 수도 있었던 그 1년이 참 부러웠다.
가을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
사계절, 어느 계절 하나 서로에게 뒤처지지 않는 매력과 함께 이유가 있다.
그중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 불리며, 겨우내 모아 둔 힘을 피워내기 시작하는 봄과 무럭무럭 영양을 흡수하며 자라는 여름을 지나 1년의 시간을 보여주는 계절일 것이다.
어느 곳보다 바쁠 농촌의 가을은 일손 하나라도 더 보태기 위해 열심히다. 과수원을 운영하는 재하는 혜원에게 손이나 보태라 하지만, 바쁘다 거절하는 혜원에게 던진다.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
아, 스트라이크.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었고, 피하고 싶어 바쁘게 산다는 이유로 정신없이 보내던 혜원에게 그 말만큼 힘든 게 무엇일까.
근데 저 말은 마치 우리에게 하는 거 같다. 우리는 바쁘다. 정말 바쁘다. 아니 바쁘게 지낸다. 약속을 잡고, 해야 할 것을 잔뜩 만들며 바쁘면 안 되는 사람들처럼 바쁘게 산다. 그리고는 힐링, 여유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 sns에 올리고 쉼 없이 나를 만든다.
그리고는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지친다고 힐링이 필요하다고.
나한테 혜원의 리틀 포레스트 생활이 더욱 부럽고, 힐링으로 다가오며 충만해 보인 것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살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자신을 위한 끼니를 준비하고, 정성을 다하며 하루를 충실한다. 그 순간에 충실한 것이다. 본인은 힘든 농촌 생활과 뭔가 뒤쳐져 돌아온, 자신의 실패에 낙심하고 우울하고 괴로웠겠지만, 그 어떤 시간보다 충만해 보였다. 자연스레 자신을 생각할 시간은 늘어났고, 좀 더 자신을 살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여유는 정말 중요하다. 하는 일에 동력을 주기도 하지만 적절한 쉼을 제공함으로써 지치고 흐트러진 마음을 재정비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그런 시간 없이 달리기만 한다면, 아무리 올곧은 목표를 세우고 달려도 자세가 망가지거나 돌부리를 보지 못해 넘어지거나 혹은 중간에 있는 중요한 표지판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시간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리틀 포레스트', 작은 숲. 내 공간이다.
이 태풍에도 안 떨이 지고 끝까지 버티더라
태풍이 불고, 긴 시간 일궈온 사과들이 떨어지고 수확만을 남겨둔 벼들이 쓰러져 한숨이 나올 때 모든 사람들이 허무해진 시간에 허탈하고 마음이 아프지만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저 '하늘이 하는 일을 무슨 수로 대적하겠냐'며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하늘의 일이니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원망하고 슬픔에 잠겨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있으나, 그게 해결책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그 안에서 또 하나를 배운다.
그 태풍에도 견디고 남은 사과를 보며 다시금 일어날 수 있는 힘을 배운다.
견디고만 있었을 뿐이었다.
견디는 건 정말 어렵다.
하지만, 그 순간을 버티는 것만이 답일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이 아닌 주변의 기대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 것을 보며 가고 있다. 그게 내게 맞는지는 우선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버티는 경우가 많다. 다들 버티는 거라며
하지만 견디는 것만이 정말로 답 일가? 때로는 놓을 줄 아는 것이 용기이며 기회가 될 수 있다. 주변의 조언이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고 차마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해 줄 수는 있지만 그 거 하나만이 답이 아님은 꼭 새겨둬야 할 것이다.
심고 뿌리내릴 수 있는 곳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할 까. 지친 몸을 둘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큰 행운 일 것이다.
혜원은 어릴 적에는 싫기만 했던 이 곳이 엄마의 큰 뜻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이 자라고 사라지지 않고 있는 그곳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곳이자 안식처이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곳이었다.
흔들리다가도 다시금 바로 설 수 있는 곳. 나의 숲.
겨울
아주심기
아주심기는 더욱 튼튼히 자라도록 자리를 바꾸어 심는 것이라고 한다. 양파 모종을 키운 후 아주심기를 하게 되면 겨울은 견딘 양파는 더욱 단단하고 맛있게 자란다.
자신이 어디에서 꽃을 피울지 결정하는 건 각자의 몫.
어떤 영양을 담뿍 받고 자란 묘목이 어떤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신을 뽐낼지 가능성을 두며 리틀 포레스트는 끝난다.
분명, 자리를 고르고 뿌리를 내리는 일은 어렵고 쉽지 않겠지만 분명 잘해나가겠지.
이미 영양 가득한 '리틀 포레스트'에서
다시금 위로가 보고 싶을 때, 그저 마음이 편해지는 영화를 보고 싶을 때.
아마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보지 않을까 싶은 영화. 나한테도 작은 숲이 생겼을 때, 아마 이 영화를 다시 한번 보지 않을까 싶다.